트레일러닝|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 ②
트레일러닝|칠레 아타카마 사막 레이스 ②
  • 글 사진 유지성 본지 아웃도어 자문위원·오지레이서
  • 승인 2013.05.3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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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그랜드슬램 두 번 달성

▲ 소금호수 위를 달리는 레이서들.

치열했던 지난 3일째 밤하늘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빛의 향연이었다. 이토록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별과 은하수를 마음껏 감상 할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었다. 이런 별의 기운을 받아 남아있는 4일간의 레이스를 잘 마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넷째 날, 생사를 건 여정
대회 넷째 날은 소금사막 지역을 관통하는 아주 험한 코스다. 여전히 고도는 해발 2400mm에서 변동이 없고 코스 총 길이는 44.2km며 악마의 발톱이라 불리는 소금사막 구간 14km를 쉬지 않고 가야 한다. 가장 힘든 구간을 쉬지 않는 이유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복사열과 소금기 때문에 힘들어도 쉬지 않고 길을 가는 게 오히려 낫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아주 건조한 지역이라 수시로 물 공급이 필요하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물을 공급받을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게 핵심이다. 한국 참가자들은 모두 여기저기 아프고 잔부상들이 있지만 이날만 버티면 후반부로 넘어가기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

▲ 온 몸과 신발이 하얀 소금으로 뒤덮였다.

▲ 앞서 간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 놓았다.
출발하자마자 언덕을 넘고 오르락내리락 모래지역을 달리니 힘이 빠졌다. 가끔 나타나는 절벽 구간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읽을 수 있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모래와 암석 지대를 통과하니 어느 순간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가 나타났다. 잠시 지나왔던 마을의 경계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마치 여기부터는 죽음의 땅이라는 이정표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곳부터 이어지는 소금 벌판의 열기는 바로 옆에서 커다란 화로를 피우는 것처럼 느껴졌다.

날씨가 더울 경우 주최측에서는 제한 급수를 풀어 참가자들에게 충분한 물을 공급해준다. 넷째 날이 바로 그 시점이었다. 적어도 물은 여유가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들고 다니느냐다. 어떤 이는 무게가 부담스러워 그냥 가기도 하고 누구는 속도를 줄이는 대신 물을 최대한 많이 담아가기도 한다. 사막에선 정답이 없다. 각자의 생존 방식을 믿을 뿐이다. 험한 길을 헤치고 왔더니 다쳤던 아킬레스건의 통증은 점점 심해져만 갔다. 아직까지 아킬레스건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로 왼발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다섯째 날, 제한 시간과의 싸움
이날은 롱데이(Long-day)라 불리고 다음날까지 제한시간 27시간 안에 75km를 가야 한다. 정상적인 몸 상태라면 별 문제 없는 거리와 시간이다. 하지만 모두 이미 정상임은 포기한 상태라 한발 한발 가야 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날은 특별한 코스를 몇 개 지나는데, 먼저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같은 소금 호수 위를 스치듯 달려야 한다. 처음엔 물속으로 첨벙첨벙 뛰어가지만 어느 순간 하늘과 땅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을 만나게 된다. 하얀 소금 위를 달릴 때에는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황홀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시. 곧이어 신발과 다리, 옷 등이 온통 소금 범벅이 돼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물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은 더욱 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고 돌처럼 딱딱한 신발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굳어 버린 상태 그대로 주인을 맞이했다.

▲ 아침이 밝아오면 새로운 기분으로 다시 뛰기 시작한다.

▲ 소금사막 지역을 달리는 참가자들.

소금 호수 지역을 벗어나니 본격적 불볕더위가 시작됐다. 피곤한 몸 상태에 건조한 날씨까지 더해져 갑자기 코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더운 날씨에 코피까지 흐르니 숨 쉬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모래사막 지역을 통과 중이었는데 발자국 대신 핏자국만 남기는 것 같았다. 한 시간 정도 지혈을 해 코피는 멈췄지만 곧이어 아킬레스건의 통증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때부터 브라질에서 온 알렉스·블라드미 팀과 꽤 오랜 시간 함께 길을 갔다. 나와 동갑내기였던 블라드미는 20대에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알렉스는 그의 도우미였는데 둘 다 마라톤 풀코스를 3시간 이내에 달린(Sub-3) 상당한 실력자였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며 사막에서의 달리기를 즐겼다.

▲ 한국 참가자들과 함께.

▲ 건조한 날씨와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코피를 쏟기도 했다.

곧이어 달의 계곡을 만났다. 이곳은 달과 유사한 지형으로 미국 NASA에서 우주장비를 실험하는 장소라 한다. 울긋불긋 솟아난 기암괴석 덕에 낯선 혹성에 던져진 기분이 들게 한다. 그래서 아타카마를 가면 외계의 혹성을 달린다는 말들을 하는데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달의 계곡을 벗어나 다음 체크포인트에 도착하니 서서히 밤이 시작됐다.

무서웠다. 간당간당하게 붙어있는 나의 아킬레스건이 언제 어떻게 끊어질지 몰랐기 때문이다. 정상 9부 능선에서 주저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또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막한 기분도 들이닥쳤다. 하지만 힘을 냈다. 어차피 걸어도 뛰어도 아픈 건 마찬가지. 체크포인트 5부터 7까지 미친 듯이 달렸다.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면 한 발로도 간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결국 도착했다. 상태가 나빴던 아킬레스건도 끊어지지 않고 버텨냈다.

▲ 지구가 아닌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랜드 슬램은 사하라·고비·아타카마·남극대륙
마지막 날은 사막지역에서 산 페드로 광장까지 9km를 달리는 이벤트 코스였다. 주최측에서는 탈락했어도 달리고 싶은 참가자들을 함께 달릴 수 있도록 해줬다. 모두가 함께하는 축제의 장을 만들기 위한 작은 배려였다.

마지막 골인점을 향해 우리는 콜라, 맥주, 피자를 노래 부르며 달렸다. 마을주민과 관광객들은 거지 몰골로 소리치며 달리는 우리를 놀라며 쳐다봤다. 하지만 이내 우리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축하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내줬다. 첫날부터 망가졌지만 끝까지 버텨준 아킬레스건, 세계 최초 그랜드슬램 2회 달성을 위해 응원해준 모든 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완주한 한국팀, 후원해준 르까프 등등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계속 흘렀다. 인고의 시간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고 어려움을 극복한 에너지는 다른 이에게 긍정의 에너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번 아타카마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실히 깨달았다. 아디오스, 아타카마.

▲ 힘든 레이스지만 풍경만큼은 최고다.

▲ 극한의 상황이지만 장난으로 피로를 풀기도 한다.

▲ 5일차를 완주하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 세계 최초로 오지 레이스 그랜드슬램을 2회 달성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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