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ILKROAD ㅣ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BEYOND SILKROAD ㅣ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
  • 글 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2.10.1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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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참평화 없어라

▲ 칸다하르 비행장 인근의 고철들

미군의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직후 어수선한 틈을 타 아프간 제2의 도시인 칸다하르에 입성했다. 칸다하르는 아프간 남쪽의 파키스탄 국경과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자리한 탈레반 정권의 심장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지역이다. 탈레반은 주로 강성파인 파슈툰족으로 대단히 호전적인 부족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들은 지금도 미군과 대항하면서 아프간 정권 탈환을 위해 싸우고 있다.

▲ 사막을 건너는 집시들

▲ 라쉬카르에 있는 실크로드의 흔적

당시 아프간 어디를 가나 도로 사정이 엉망이라 카불에서 칸다하르까지 가는 길은 총알택시로 14시간이나 걸리는, 그야말로 먼지투성이의 지옥행이나 다름없었다. 탈레반 중심지라 그런지 그 어느 지역보다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사람들 또한 거칠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거리 어딜 가나 보기 드문 외국인이 나타났다고 해서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나를 에워쌌다. 그야말로 동물원 원숭이가 된 꼴이다.

▲ 부서진 건물에 나부끼는 깃발

▲ 여기저기에 방치되어 있는 포탄들

어디로 이동하려면 마치 여왕벌을 따라다니는 벌떼들처럼 달라붙어서 무엇 하나 제대로 구경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러다가 신경질이라도 부리는 기색을 하면 어디선가 돌멩이가 날아왔다. 이에 반응을 보이면 더 많은 돌멩이가 날아왔다. 위험하다 싶어 어렵사리 빠져 나오니 누군가가 다가와 영어로 말했다. 거리에서는 위험하니 빨리 호텔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 골목에서 만난 노인

▲ 칸다하르 시내

▲ 시장에서 거래되는 한국산 88담배

생각다 못해 이곳 여인들이 입고 다니는 부르카를 샀다. 몸 전체는 물론 얼굴까지도 몽땅 가리고 다니는 칸다하르의 전통 옷이다. 모기장처럼 작은 구멍들이 뚫려 있는 곳으로 앞을 보며 다닐 수 있게 되어 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방인이라는 존재를 감추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생각해낸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도 별 효력이 없었다. 신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는데도 옷을 입는 맵시가 달라서인지 신통하게도 구별해 내곤 했으니까. 그렇지만 이 옷을 입고 시장에 나가 환전을 해오는 것은 일단 성공했다.

▲ 칸다하르의 어느 학교 교장실
▲ 칸다하르의 소년

변두리에 비행장이 있어 찾아갔는데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당연히 내부에 들어가는 것은 절차가 복잡해 포기하고 한 병사가 안내해준 곳으로 따라갔다. 그 병사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도 동두천에 근무했었다고 하면서 서툰 한국말 몇 마디로 반가워했다. 안내를 받은 곳은 각종 고철들을 수북하게 쌓아둔 곳이었다. 탱크도 있고 헬리콥터도 모양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곳이다. 마치 폭격으로 파손된 현장을 보는 듯했다.

▲ 총탄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는 벽

칸다하르 지역은 탈레반 정권하에서 아편산업이 성행했던 곳이다. 파키스탄 국경이 그다지 멀지 않는 곳에 대규모 양귀비 밭이 있다. 그곳에서 생산된 엄청난 아편이 탈레반 정권의 큰 자금줄이었던 것이다. 탈레반이 서구 세력들의 눈엣가시에다가 타도의 대상으로 지목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렇듯 칸다하르는 겉으로 봐도 항상 긴장이 흐르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여행을 하기엔 여간 조심스러운 곳이 아니다.

▲ 수확한 곡식을 싣고 가는 트랙터

밤중에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밖이 소란스럽더니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검문검색이었다. 여권을 보더니 다소 놀란 눈치다. 이 소란스러운 시국에 외국인이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이것저것 묻고는 나가면서 조심하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누군가 이곳에서 좀 떨어져 있는 리쉬케시에 가보라고 했다. 실크로드와 관계된 지역이라고 한다. 택시로 찾아가는 도중에 어딘가로 이동 중인 집시 무리를 만났다. 그들도 사막 저 건너에 있는 리쉬케시로 가고 있는 듯했다. 벌어지고 있는 전쟁 같은 것은 알 바 아니라는 듯 오늘을 사는 그 자체가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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