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소금 항아리를 찾아서
신비한 소금 항아리를 찾아서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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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41

▲ 소금항아리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이은희 씨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

가을빛이 깊어 가는 요즈음, 이 산골에는 매일 매일 가을걷이가 한창이어서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바쁜 하루하루에 쫓기다 문득 가을빛이 고운 산하를 하루쯤 온전히 즐겨 보고 싶어 아는 분들과 염장봉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산으로 산행을 나섰습니다.

예전부터 이름이 특이해서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인데다, 마을 뒷산에 자리한 해발 668m의 높이가 매력적이었죠. 이만하면 편안한 가을 나들이 장소로는 따라올 곳이 없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산행도 읍내에서 점심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지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산책삼아 염장봉 정상에 올라 커피 한잔 마시고 내려온다는 계획으로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 소금항아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마금숙 씨.
그러나 산행 들머리를 잘못 찾아 정말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올라야 하는 신세가 된 일행들. 분명 산책로 같은 소나무 숲길을 조금만 걸어 오르면 된다고 했는데, 가파른 사면은 올라도 올라도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면 중간의 된비알에서 차 한잔 마시며 쉬기로 했지요. 잠깐의 휴식시간에 동네주민 이은희 씨에게 염장봉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전설을 듣게 됩니다.

아주 먼 옛날 도승이 여량을 지나다가 이곳 산세를 보고 산 모양이 화(火)자 모양을 닮아 불이 자주 일어나는 재앙이 있을 것이라 예언을 했답니다. 그러자 주민들은 재앙을 막고자 도승을 졸라 비책을 물었더니 도승이 “저 산봉우리에 간수(소금)를 묻어 바다의 기운으로 불을 다스리라”는 비책을 일러 주었다는군요. 덕분에 여량면 염장봉 산꼭대기 어딘가에 소금 항아리가 묻혀 있다는 전설이 생기게 된 거죠.

그런데 1955년 초겨울, 난데없이 마을 집 근처에 쌓아둔 짚가리나 불쏘시개로 쓰는 갈비(솔가리 : 말라서 땅에 떨어진 솔잎) 더미에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이 달려들어 불을 끄면 금세 꺼졌으나, 또 여기저기 불이 났답니다. 사람 사는 가옥에는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짚가리나 갈비더미에만 붙는 불이 이상해서, 주민들이 산에 올라가 소금 단지를 열어보니 소금이 말라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소금을 감추는 산이라 하여 소금 염(鹽), 감출 장(藏)을 써 염장봉(鹽藏峯. 668m)이라 불리게 된 것이지요.

▲ 정상 인증을 위한 정상석 앞에서 기념사진은 필수. 맨 왼쪽 이은희 씨, 그리고 가운데 마금숙 씨, 그리고 임복녀 씨.
그후, 지금으로부터 35여 년 전 여량면사무소가 불에 타고, 하루에 7번이나 화재가 발생하자 주민들은 대책을 논의하다 염장봉에 올라 소금단지를 찾아보니 이번엔 소금항아리가 깨져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소금 항아리를 묻고 제를 올렸구요. 덕분에 아직까지도 해마다 정월 대보름이면 마을에서는 염장봉 정상에 있는 소금 항아리에 소금을 채우는 행사를 하고 있답니다.

그 소금 항아리가 묻힌 곳을 보고자 오르는 길, 끝이 없을 것 같은 사면을 어느 정도 치고 능선으로 오르자 아주 예쁜 소나무 오솔길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10여분쯤 오르자 염장봉 정상,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정상에 3군데 은밀하게 돌로 눌러 놓은 소금 항아리 자리가 눈에 띄었습니다. 열어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함께한 동네 분들이 “돌 위에 물건도 올려 두지 말라”며 손사레를 치며 말렸습니다.

“내가 대보름마다 제사 지낼 때 따라 올라 오는데, 여자라고 얼매나 눈치들을 주는지 말도 못했어”.

▲ 아름다운 여량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하산 길.

그래도 소금이 들었는가 궁금해 열어 보고 싶었지만 꾹 참습니다. 대신 돌 밑으로 생긴 틈으로 소금 단지 뚜껑이 보이는 걸 확인하는 걸로 궁금증을 눌러 봅니다.

옛날이야기가 있어서 더 행복한 가을 나들이, 지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 내내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주었던 자연은 다시 아름다운 단풍이라는 새로운 옷을 보여주며 열심히 겨울맞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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