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분지에 울려 퍼지는 맑고 우렁찬 동편제 소리
고원분지에 울려 퍼지는 맑고 우렁찬 동편제 소리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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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지리산둘레길 ① 주천~운봉~인월

▲ 주천~운봉 구간의 노치마을을 향해 걷는다. 가을 추수를 마친 논두렁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뜻이 담긴 지리산(智異山). 그 둘레 산자락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을까. 이 둘레길에는 우리 할머니들이 장보러 다니던 옛길, 고갯길, 숲길, 그리고 강변길, 논둑길 등이 뒤엉켜 있다. 지금까지 개통된 5개의 코스를 전북 남원의 주천~운봉~인월 구간,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인월~금계 구간, 그리고 경남 함양과 산청의 금계~동강~수철 구간 이렇게 3개 구간으로 나눠 소개한다.

아무것도 깨어나지 않은 컴컴한 새벽. 주천면사무소를 지나 내송마을 흙길 위에 올랐다. 랜턴 하나로는 어둠을 가릴 수가 없지만 행여나 단잠에 빠진 이가 깨어날까,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구룡치 넘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긴장을 쓸어주려는 건가.

▲ 인월장을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갑자기 떨어지는 빗방울로 짧은 인사밖에 하지 못했지만. 왜, 언제나 시골 오일장은 정겨운 것일까?
우선, 주천에서 운봉까지 갈 예정이다. 그리고는 운봉에서 인월로 향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새벽부터 걸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월장이니 말이다. 인월버스터미널 근처에 서는 인월장은 4~5시면 파장이라 하니 부지런히 걸어야 할 게다.

지리산둘레길을 찾는 대부분의 둘레꾼들은 기자와 달리 인월에서 운봉을 거쳐 주천으로 가는 방향을 선택하는데, 그 이유는 교통상의 이점 말고도 주천~운봉 구간의 구룡치 때문이다. ‘아홉 마리 용이 구슬 하나를 희롱하며 놀던 고개’라는 뜻의 구룡치는 구등치라고도 불리는데,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만만찮은 고갯길이다.

지리산둘레길 공식 홈페이지 댓글들을 살피다 보면 “왜 지리산둘레길이 산길이냐고 얘기해 주지 않았느냐”는 원망 섞인 내용들이 보이곤 하는데, 그 원인으로 첫손에 꼽히는 것이 바로 주천에서 운봉 방향의 구룡치다. 운봉에서 주천 방면으로 걸을 때는 “남원 주천면으로 넘어가는 완만한 구등 고갯길이 특히 아름답다”고들 하지만, 주천에서 운봉으로 향할 때는 해발이 낮은 주천(170m)에서 가파른 구룡치(580m)를 넘어야 하기 때문에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산골 오일장’ 구경이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장으로 첫손에 꼽는 화개장 못지 않은 장이 바로 인월장”이란 말을 들으니 더더욱 애가 닳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월은 옛날부터 지리산 북부 교통의 핵심 교차로였다. 경남 함양에서 같은 함양의 마천으로 가려 해도 전북에 속하는 인월을 지나야 했으니 말이다. 교통이 좋으니 당연 사람들이 몰려들었을 터이고, 장은 점점 커져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넘는 이 고개를 어떤 누군가는 설레는 마음으로, 떨리는 마음으로 건넜을 것이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장터 가려고 밤을 새서 걷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주먹만한 눈깔사탕 이야기에 침이 꼴깍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수십 년 뒤에, 이렇게 어둠을 뚫고 인월장을 향해 걸어가게 되리라고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마을사람들이 장에 가려고 넘던 구룡치
구룡치를 넘어갈 무렵,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빛을 머금으면서 깨어나는 구룡치의 소나무숲이 얼굴을 드러냈다. 향긋한 비목나무와 지리산오갈피나무, 장금나무, 닥나무 등도 보인다. 잘 뻗은 소나무와 참나무에 안겨 보드라운 흙길을 걷는 기분이 제법 괜찮다.

▲ 덕산저수지를 지나 가장마을로 향하는 길.
길이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을까. 작은 돌탑들 옆으로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사무락다무락’ 표지판과 함께 서 있다. ‘사무락’은 바람을 뜻하는 ‘소망’이 변한 말이고 다무락은 여기말로 ‘담벼락’을 뜻한다니, ‘소망을 비는 돌담’쯤 되겠지. 걷는 내내 날이 맑기를, 그리고 무사귀환을 빌어본다. 날씨야 마고여신에게 몇 번이고 당부해 두었지만, 한번 더 빌어두면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길게 뻗은 내리막이 드디어 회덕마을에 닿는다. 마을길로 이어지는 곳에 주민이 하는 쉼터가 있어 “할머니~” 하고 살짝 부르자, 할머니가 손을 흔들며 오신다. 밥은 안 되고, 국수나 전, 그리고 막걸리 등을 마실 수 있단다. 물을 두 병 산다. 몇 시간 만에 아스팔트 길 위로 올라서니 벼 말리기가 한창이다. 이미 추수가 끝난 곳이 제법 많다. 말린 벼를 보러 나온 어르신들이 벼의 껍질을 까서 쌀알을 보여주신다.

곳곳에 가을걷이를 마친 지리산 자락의 마을은 완연한 가을을 품고 있었다. 황금색으로 물든 벼 사이로 삐죽 솟은 억새집이 보인다. 일반 초가집과 달리 지붕이 뾰족한 삼각형이다. 덕분에 억새집은 눈이나 빗물이 지붕에 고이지 않아 한번 지붕을 이으면 30년은 족히 간단다. 논이 적어, 지리산 자락에서 자생하는 억새풀을 이용해 지붕을 이은 억새집은 예전에는 흔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 회덕마을에 들어서면 키가 껑충한 억새집을 볼 수 있다.

억새집을 지나 1km쯤 더 걸어 노치마을에 닿는다. 노치마을은 지리산둘레길과 백두대간 길이 만나는 곳으로 정령치(1172m)와 여원치(477m) 중간에 자리하고 있다. 노치는 갈대가 많은 고개, 즉 갈재라는 뜻이다. 백두대간과 둘레길을 찾은 이들은 시원한 노치샘의 물을 마시며 몸을 추스른다.

양 갈래 길이 나오자 마을 안쪽으로 향한 길바닥에는 ‘X’가, 바깥 아스팔트로 향한 길에는 ‘둘레길→’라고 적혀있다. 아마도 마을로 이어지는 길을 걷는 둘레꾼들의 호기심 때문이리라. 찾는 이들이 워낙 많다보니 둘레꾼들의 장난이나 호기심 등이 농작물을 재배하는 주민들에게는 타격(?)이 클 수밖에. 이는 때때로 둘레길의 루트가 변경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단다.

서어나무숲에는 춘향이 대신 맘씨 좋은 아낙들이
덕산저수지와 논길을 따라 가장마을을 지나 2.4km 걸으면 드디어 행정마을에 닿는다. 마을 담벼락마다 알록달록 그림이 그려진 행정마을에서 만난 이점순 할머니가 “쩌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으로 쭉 들어가아~” 하고 서어나무숲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 영화 <춘향뎐>의 촬영장소이자 몽룡이 춘향에게 한눈에 반해 버린 서어나무숲. 그 앞에는 상추밭이 있다는 사실!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을 촬영한 곳으로 춘향이와 몽룡도령이 처음 찌릿하고 전기가 통한, 그 장소다. 조선시대 몽룡은 근육질의 서어나무숲 그네에서 나비처럼 사뿐히 뛰노는 열여섯 춘향을 보고 한눈에 반하고, 21세기 기자는 그넷줄만 만지작거리다 바로 앞 상추밭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친다.

“이것 좀 들어요.”

새참으로 챙겨온 빵과 시원한 보리차를 냉큼 받아 들며 ‘고랭지 상추’ 재배 장면을 구경한다. 할머니 두 분은 아예 엉덩이에 간이용 의자를 매달아 두었다. 일어섰다 앉았다 하는 모습 뒤로 2000년에 ‘아름다운 마을숲’으로 뽑힌 서어나무들이 버티고 있다. 저 숲은 처음에는 지리산둘레길 코스에 속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이 다녀가는 바람에 제외됐다고 한다.

행정교 바로 앞에서 좌측으로 난 길을 따라 100m 쯤 가면 서어나무숲을 만날 수 있는데, 구경하고는 다시 그 길을 되돌아 나와 행정교를 건너 지리산둘레길로 합류해야 한다. 서어나무숲으로 이어진 길가에는 오미자며 사과며, 상추까지 다양한 농작물이 자라고 있다.

▲ 경운기에 볏단을 싣고 달리는 아저씨. 행정마을 서어나무숲으로 향하는 길에 자리한 오미자 나무. 달디 단 새참시간에 잠시 끼어들었다. 가을걷이를 끝내고 누런 속살을 드러낸 논밭 옆으로 깨 털이가 한창이다.

돌아 나오는 길, 숲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열심히 오미자를 따던 이들이 잠시 쉬고 있다. 아까는 상추밭이 새참시간이었는데, 이번에는 오미자 하우스의 새참시간인가 보다. 숲으로 들어갈 때 인사를 해둔 덕분일까. 할머니 한 분이 “포도 좀 먹고가라”며 붙잡는다. 포도보다는 그 옆에 놓인 시원한 맥주가 간절하다.

“혼자 먹기 심심한데 한잔 할려?”

서어나무숲의 잔상이 채 가시기도 전, 시원한 맥주 한 모금에 춘향이도 부럽지가 않다. 할머니들이 포도며, 사과며 가면서 먹으라고 챙겨주시는 것을 넙죽 감사하다고 받아든다.

할머니들에게 받은 마음 덕분에 든든하다. 동이 트기 전부터 걸었으니 지칠만도 한데, 말짱한 것은 아마 이곳의 공기가 너무 좋았거나, 마을 주민들의 호의 덕분이리라. 우측으로 논자락을 두고 좌측으로는 남천(濫川) 줄기인 듯한 물줄기를 두고 걷는다. 얼마나 걸었을까. 운봉읍에 속한 양묘사업장에 닿는다. 양묘사업장은 국유림이나 가로수로 쓸, 그러니까 나라에서 쓸 나무의 묘목을 키우는 곳이다. 미리 연락하면 전문가의 해설도 들을 수 있다니, 아이들 체험학습에 좋을 것 같다.

▲ 남천을 따라 걷는 운봉~인월 구간의 우측 풍경.

▲ 운봉으로 들어서면 곧 만날 수 있는 서림공원의 돌장승. 툭 튀어나온 눈이며 푹 퍼진 코하며 결코 잘생기진 않았으나, 고원분지인 운봉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전설’을 지녔다.
남천 물줄기 따라 걸으며 마을 구경
전설에 따르면, 옛날 옛적 전북 남원 운봉땅은 호수였다고 한다. 큰 배를 매어두었던 말뚝(고리봉)이 지금도 산꼭대기에 남아있고, 배가 넘어온 고개(배너미재)도 남아있단다. 여기에 큰배를 댄 자리가 마을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게 바로 운봉이다.

운봉 읍내로 들어서자 곧 서림공원의 돌장승 둘과 맞닥뜨린다. 툭 튀어나온 눈에 뭉툭코. 아무리 후하게 점수를 줘도 ‘잘생겼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생긴 것과는 또 다르게 무게만큼이나 듬직해 뵈는 이 돌장승들은 운봉이라는 큰 배가 떠나지 못하도록, 기운을 보하기 위해 그 배 한가운데인 이곳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름 역시 그에 걸맞게 하나는 북쪽의 방어대장군, 하나는 남쪽의 진서대장군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남천을 따라 강둑길을 걷는다. 가을 갈대와 억새가 사이좋게 함께 피어올라 살랑거린다. 지금이야 걷기 참 좋은 길인데 바람이 거세진 겨울이나 한여름 뙤약볕에서는 무리지 않을까. 사방이 훤하게 뚫려있는데다, 바로 옆으로는 남천 물줄기가 흐르는 강둑길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리산 둘레의 ‘산마을’만 경험하다 이런 평평한 ‘들마을’을 만나니 퍽 반갑다. 또 이 길이 바로 조선시대 관로의 하나인 통영에서 한양을 잇던 ‘통영별로’와 겹쳐진다니 느낌이 남다르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앞으로는 황산(697m), 우측으로는 병풍처럼 둘러싼 높다란 지리산 서북능선, 좌측으로는 백두대간이 펼쳐진다. 눈앞의 산이 바로 그 유명한 황산대첩의 ‘황산’이란 말인가.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전략적으로 중요했던 운봉분지에서 황산은 덕두산과 함께 남원 동부에서 서부로 넘어오는 외적을 막았던 목이었다. 황산 남사면과 덕두산 사이는 폭이 좁은 데다 남천이 흘러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 왜소한 몸으로 본인 덩치만한 볏단을 옮기는 할머니. 산자락 마을의 가을 풍경은 이런 장면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이곳이 황산대첩의 현장이다. 고려말 1380년(우왕 6), 금강 어귀에 출몰한 왜구들은 퇴로가 막히자 육지로 상륙해 충청도를 거쳐 함양까지 들어갔다가 다시 지리산을 넘어 이곳 운봉 인월면에 주둔했다. 이때 삼도순찰사인 이성계가 군대를 이끌고 왜장 아지발도를 비롯한 왜구를 섬멸시켰다.
1577년(선조 10) 건립된 황산대첩비(사적 제104호)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어, 1957년 중건했다. 원래의 비석은 깨진 채 새로 만들어진 황산대첩비 우측에 자리하고 있다.

이성계가 왜군 크게 무찌른 전투의 현장
황산교를 건너 진행 방향과 반대로 100m쯤 가면 황산대첩비를 품은 비전마을이다. 운봉~인월 구간을 ‘역사와 문화가 깃든 길’로 소개하는 이유가 지금부터 펼쳐진다. 우선 이름부터 살펴보자. ‘비전마을’은 말 그대로 ‘비석 앞 동네’라는 뜻이다. 비석은 바로 이성계의 황산대첩비를 말한다. 황산대첩비를 관리하려고 관원과 식솔들이 터를 잡으면서 마을이 생겨났단다. 또 바로 옆 전촌마을의 이름 역시 ‘황산대첩비가 있는 앞의 마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우리말로 풀면 앞마을쯤 되지 않을까.

▲ 아지발도가 이끄는 왜군들을 격파한 이성계의 승리를 기록해 둔 황산대첩비.
황산대첩비 바로 옆으로 가왕 송흥록(1801~1863)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국창 박초월(1917~1983)이 자란 곳이기도 한 비전마을은 판소리 동편제로도 이름이 높다. 판소리 다섯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가 되었던 운봉에 ‘국악의 성지’ 전시관이 들어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군화마을을 지나자 대덕리조트가 보인다. 화수교를 건너 옥계호 방향으로 들어서자 임도가 시작된다. 바닥 자갈에 발이 조금은 괴롭지만 옥계호를 바라보며 걸을 만하다. 부지런히 내달려 흥부골자연휴양림에서 다시 아스팔트 길로 내려서는가 싶더니 덕두교를 건넌 후 좌회전, 다시 산길로 올라선다.

15분쯤 부드러운 흙길을 지나자 얼마 되지 않은 듯한 뺀질뺀질한 지붕들이 보인다. 최근 ‘달오름 마을’로 이름을 바꾼 월평마을이다.

월평마을을 빠져나와 구인월교를 건너자마자 우측으로 가면 지리산둘레길 안내센터가 있고, 직진하며 인월장이다. 부푼 마음으로 오매불망 그리던 인월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굵은 빗방울들이 떨어진다. 지나가는 소나기라 여겼으나 민박집의 처마 밑에서도 빗소리는 계속되었다. 밤새도록. 낮 동안 비를 참아준 마고여신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한번 더 기원한다. 부디, 내일 동이 트기 전까지는 이 비를 멈추어 달라고. 

사단법인 ‘숲길’ 박무열 팀장
“산청, 하동 구간 개통 눈앞에…
산청과 구례에도 안내센터 개장 예정”

“2008년에는 ‘숲길’에서 지리산둘레길을 기획부터 조성까지 했는데 2009년부터 사업 방향이 바뀌면서 직접적인 길 조성은 각 지자체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산청과 하동 구간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개통하지 않을까 싶어요. 길을 정비하면서 표지판도 만들고, 지도도 만들고 해야 하니까, 시간이 꽤 걸리는 거죠.

10월에서 11월 사이에 지금까지 개통한 70km 구간에 대해 새로 일러스트 작업한 지도가 나올 거예요. 지도를 보내달라고 민원이 들어오곤 하는데, 현재까지는 인월 안내센터에서만 배부하는 것을 고수하고 있어요.

앞으로 나머지 구간 개통에 맞춰 산청과 구례에도 안내센터를 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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