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나라 프랑스를 두 발로 달리다
낭만의 나라 프랑스를 두 발로 달리다
  • 글 사진·안병식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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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l 2010 Transe Gaule 1150km

▲ 프랑스 북쪽 끝 마을 로스코프는 바닷가 마을이다. 대회 첫날 새벽, 로스코프 항구의 평화로운 모습.

프랑스 종단하는 1150km 코스…18일간의 지옥의 레이스 완주

매년 전 세계 울트라마라톤 대회를 참가하고 있는 안병식 씨가 올해도 어김없이 자신과의 싸움을 견뎌냈다. 지난 8월부터 9월까지 진행된 프랑스 종단 대회와 독일 횡단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프랑스를 종단하는 ‘2010 Transe Gaule’ 대회와 독일을 횡단하는 ‘Deutschland Lauf 2010’ 대회는 각각 1150km와 1200km를 달리는 장거리 대회로 안병식 씨는 연속으로 두 대회를 참가해 완주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이번 호에는 지난 8월 프랑스에서 열린 ‘2010 Transe Gaule’ 대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유난히 무덥던 지난 8월, 프랑스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프랑스에 가면 맨 먼저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 올라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걸 상상하곤 할 만큼 늘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하지만 대회 날짜에 맞추어 가다보니 파리 시내를 구경할 순 없었지만 프랑스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들떴다.

대회가 프랑스 북쪽 지방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파리에서 고속열차(TGV)를 타고 로스코프(Roscoff)로 향했다. 로스코프는 프랑스 북동쪽에 있는 깨끗하고 소박한 항구 도시다. 50kg이 넘는 짐을 들고 파리에서 로스코프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이미 몸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사한 꽃들이 집집마다 가득한 프랑스의 시골마을은 참 예뻤다.

오후 늦게야 숙소에 도착했다. 오랜 비행으로 지쳤는지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여전히 여독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몸이 마냥 무겁기만 했다. 하지만 대회가 바로 코 앞. 부슬비를 맞으며 조깅으로 가볍게 몸을 풀었다.

▲ 대회를 모두 마치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완주의 기쁨을 나누었다.

하루 평균 60km 달리는 죽음의 레이스
▲ 고요한 철길을 달리는 참가자.
프랑스를 종단하는 이번 대회의 정식 명칭은 ‘Trans Gaule 1150km’이다. 2001년 첫 대회를 시작했으며, 프랑스의 북쪽 끝 마을 로스코프(Roscoff)에서 출발해 남쪽 끝 마을 그루이산(Gruissan)까지 18일 동안 하루 평균 60km를 달리는 프랑스 종단 레이스다. 하루에 짧게는 49km, 길게는 75km를 달리는 대회라 그렇게 힘든 코스는 아니었지만 18일 동안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대회였다.

대회 당일 아침, 비가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따사롭게 비치고 있었다. 출발 장소인 해안가에는 참가자 가족들과 구경 나온 마을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코스 브리핑과 기념촬영이 끝난 후 드디어 1150km를 달리는 프랑스 종단 레이스가 시작됐다. 이번 대회의 코스는 대부분 아스팔트 도로 위를 달리는데, 큰 도로가 아닌 시골 마을을 지나기 때문에 자동차가 그리 많아 크게 위험하진 않은 구간이다.
마을을 따라 달리다보면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마을 풍광을 만날 수 있다. 막바지 여름이라 이미 수확이 끝난 밀밭과 평화로운 초원지대, 과수원 등 우리의 시골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은 풍광이 펼쳐졌다.

첫날은 로스코프부터 플라우네베젤까지 68km를 달려야하는 구간이다. 다쳤던 발목이 다시 아프진 않을까 많이 긴장했지만 다행이 크게 힘든 구간이 없어 첫날의 레이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라나 대륙을 관통하는 레이스 대회는 단기간 진행되는 대회와 많이 다르다. 특히 장기간 이어지는 레이스에서는 몸 관리를 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쉬는 날 없이 매일 레이스가 이어지기 때문에 치료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장기 레이스 위해 컨디션 조절

▲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평균 60km를 달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아직 동이 트기 전 다시 레이스가 시작됐다. 가끔씩 구름이 햇빛을 가려주기도 하고 바람도 불어 레이스하기에는 적당한 날씨였다. 여름이지만 생각했던 것만큼의 무덥지 않아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수월했다.
3일째 날은 75km를 달리는 롱데이 코스다. 60km나 70km나 크게 차이가 없을 것 같지만, 러너들에게는 이 작은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다쳤던 발목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다행이 50km를 넘으면서 조금씩 통증이 사라져 발목도 괜찮아졌고 몸도 많이 가벼워져서 무사히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60km 지점에서 이정표를 놓쳐 코스를 이탈해 버렸다. 20분 넘게 길을 헤매고 나서야 다시 길을 찾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버렸다.

동이 트기 전 일어나서 달리고 먹고 자는 게 대회에서의 하루 일상이다. 남쪽으로 계속 달리기 때문에 태양을 바라보며 달리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물어 갔다. 매일 반복 되는 일상이 지루함을 가져오기도 했지만 새로운 풍경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행복했다.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인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참가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응원과 관심을 보내왔다. 특히 아빠를 응원하기 위해 자원봉사자로 함께 온 아위나와 오웬 가족은 레이스를 하는 동안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또 낯선 이방인에게 빵 대신 밥을 챙겨주던 프랑스의 노부부 미셀과 마이클, 하루라도 맥주를 마시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칠 것 같다는 독일의 안드레, 이 외도 에릭, 필립, 지비, 테오, 미카엘, 케서린, 켈리 가족…. 이들이 있어 낯선 이방인은 외롭지 않았다.

▲ 프랑스 시골의 정겨운 풍경.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밀밭이 운치가 넘쳤다.

300km, 400km, 500km…. 어느새 프랑스 땅의 절반을 달려 600km를 넘어섰다. 대회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부상자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제부터는 부상과의 싸움이다. 1위와 2위로 달리던 프랑스 친구들은 서로 선두 경쟁을 벌이다 결국 부상으로 집에 돌아가야 했다.

사실 1위에서부터 꼴찌까지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아프더라도 부상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페이스를 조절해 끝까지 달리는 것이 중요하다. 대회를 완주하는 것은 순위와의 경쟁이 아닌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 ◀ 장거리 대회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결국 결승점까지 달려야하는 사람은 자신이기 때문이다. 참가자 한 명이 자신과의 싸움을 계속하며 홀로 달리고 있다.▲▶ 대회 코스는 프랑스의 시골 마을 곳곳을 달려야했다.▼◀ 로스코프 항구에서 출발하는 참가자들. 첫날이라 아직은 기운이 넘치는 모습이다.▼▶ 한적한 프랑스 마을을 달리는 참가자들.
▲ 딱딱한 아스팔트길은 매일 장거리를 달리는 참가자들에게 무릎 통증을 불러 일으켰다.
▲ 쉬지 않고 매일 달려야하는 프랑스 종단 대회. 날이 갈수록 다리의 통증이 심해졌다. 보호대를 착용하고 달리는 필자.

나와의 싸움 견뎌낸 17일간의 레이스
프랑스 남쪽 지방에 들어서자 산악지역이 많았다. 하루는 오르막을 뛰면서 조금 무리를 했는지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 아프기 시작한 무릎은 쉽게 나아지지가 않았다. 사실 참가자들 중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다. 대부분의 러너들이 무릎, 발목 등에 부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참고 달려야만 한다. 딱 하루라도 쉬고 싶지만 이런 생각은 모든 러너들도 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참가자들에게 힘든 하루하루가 지나고 있었다.

800km, 900km, 1,000km…. 대회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하루 평균 70km를 달려야했다. 매일 정해져 있는 거리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보면 어느새 결승점에 도착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어느새 대회가 시작한 지 17일이 지나고 대회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새벽 5시,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모두 웃음꽃이 가득했고, 어두운 하늘에는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오늘은 그동안 함께 달렸던 친구들과 결승점까지 함께 달리기로 했다.

▲ 대회의 마지막 결승점을 통과한 후 참가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바다 속으로 뛰어들었다.

멀리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동안 달려왔던 시간들을 떠올려 봤다.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아픈 기억들은 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들 것이다. 프랑스 북쪽 끝 바닷가에서 출발해 이제 다시 바다다. 결승점은 해수욕장 한가운데에 있었다. 결승점 깃발을 지나 모두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바다에 누워 눈부시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니 마치 구름위에 떠 있는 기분이다. 힘든 레이스를 마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는 기분,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안병식 (노스페이스)
http://blog.naver.com/tolerance 2006년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 250km 우승, 칠레 아타카마 사막마라톤 250km 4위, 이집트 사하라 사막 마라톤 250km 3위 / 2007년 중국 고비사막 대회 완주, 칠레 아타카마 사막 대회 완주, 이집트 사하라 사막 미디어 팀 카메라맨, 남극(Last Desert) 마라톤 130km 3위(사막마라톤 그랜드 슬램 달성) / 2008년 베트남 정글마라톤 235km 완주, 북극점 마라톤 우승,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300km(14,000m) 완주,  이집트 사하라 사막 마라톤 250km 완주 / 2009년 제주 국제 울트라 마라톤 한라산 148km 트레일 런 우승, 스페인 까미노 산티아고 800km 완주,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166km 완주, 고어텍스 트랜스 알파인 런 240km 완주, 남 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 240km 완주, 히말라야 100마일(166km) 런 3위 / 2010년 한라산 트레일 런 148km 우승, 호주 익스트림 레이스 250km 완주, 프랑스 횡단 1150km 완주, 독일 횡단 1200km 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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