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파는 집은 하수구도 안 막힌다?
이거 파는 집은 하수구도 안 막힌다?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2.03.29 11: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리

경동시장에 들렀다. 서울에서 몇 안 남은, 전통 있되 여전히 향수(鄕愁)와 윤기가 도는 시장 중 하나다. 초입, 오리알을 판다. ‘낙동강 오리알’이라니. 이건 오리에 대한 모독이렷다. 오리알은 묵직해서 경망스럽지 않다.

다윈주의 과학자들은 말한다. 오리란 오리알이 오리알로 유전되기 위해 선택한 개체일 뿐이라고. 오리알을 낳는 오리 처지에서 이게 말이나 될 법 한가. 그렇다면 그건 오리의 오독이다. 태초에 있었던 건 오리알이란 뜻일 테지?

▲ 오리는 불필요한 살이 없어 가슴살과 다리가 전부다. 사진처럼 가슴살은 스테이크로 먹는다.

오리가 병들었는데 억울한 건 닭이다. 오리는 하늘을 난다. 그래서 야생 오리가 있다. 그 유전자와 비슷한 동족이 철새로 우리나라에 날아든다. 이들이 사육 오리에게 병을 옮겼다(고 추측한다). 오리가 병들고, 닭이 전염된다. 멀쩡해 보이는 닭도 지상 최대 무시무시한 비윤리적 용어 ‘살처분’ 되고 만다. 닭은 미칠 지경이다.

오리로서도 종종 닭에 비유되는 게 속이 상하는 일이다. 가슴살만 해도 그렇다. 닭 가슴살은 퍽퍽하다. 오리 가슴살도 그러리라고 사람들이 짐작한다. 천만에, 오리가 가슴을 활짝 폈다. 그 근육으로 난다.

기름기 많아도 몸에 좋은 오리 껍질
오리는 날 수 있다. 그래서 근육의 구성이 다르다. 우리들의 입에는 그것이 퍽퍽함과 쫄깃함으로 분별된다. 오리 가슴살은 쫄깃쫄깃하고 짭짤하다. 하늘로 날아 오랫동안 활공할 수 있는 힘을 세포에 저장한다. 하늘을 날아봤는가. 닭 가슴살은 위장용이다. 새인 척, 날개를 접었다 펴는 게 고작인데 가슴살이 저리도 크다니.

글쎄 말이오, 닭 중에서 가슴살을 유독 좋아하는 미국인의 기호에 맞춘 개량이라고 한다. 헐크 호건의 가슴살처럼 스테로이드 좋아하는 미국인의 선택이었다. 그럼 그렇지. 닭이 언젠가 날기 위해 사람 몰래 가슴 근육을 키워온 것은 아니었다.

오리 가슴살은 정작 껍질이 별미다. 가슴살의 철분 냄새 나는 살코기보다 껍질이 더 좋다고들 한다. 바삭하게, 영어로 크리스피하게 구워야 한다. 가슴살의 껍질은 깃털이 뽑혀나간 울퉁불퉁한 분화구가 있고 그 밑으로 두툼한 기름층이 있다. 오리는 그 기름에 스스로 익는다.

▲ 오리는 쫄깃쫄깃하고 짭짤하다. 하늘로 날아 오랫동안 활공할 수 있는 힘을 세포에 저장한다.
이런 요리, 드물다. 오리 가슴살은 그래서 껍질 쪽부터 팬에 지진다. 기름을 두르지 않는다. 그래, 그 기름이 배어 나와서 자연스럽게 살을 익히기 때문이다. 지지직, 고소한 기름이 끝없이 흘러서 껍질을 바삭하게 익히는 거다.

어려서 아버지가 명동 장수영양통닭집에서 사온 전기구이통닭의 그 껍질 맛과 비슷하다. 아니, 더 야들야들하고 질깃하며 육감적이다. 동물의 껍질, 돼지껍데기를 좋아하는 그대. 오리 껍질 맛을 보면 헤어나지 못하리.

오리가 난다, 아니 뜬다. 기름이 그렇게 많다는데 그게 몸에 좋단다. 오리 기름은 잘 굳지 않는다. 개고기집 하수구는 막히지 않는다고, 그래서 건강한 고기라던데 오리도 그렇단다. 오리는 기름으로 스스로를 익히는 요리법이 있다. 불어로 ‘콩피’라고 부른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제몸의 기름으로 익는 걸 말한다.

오리는 먹는 부위가 요란하지 않다. 닭처럼 다리·날개·몸통·가슴살로 나뉘지 않는다. 가슴살과 다리 그게 전부다. 몸통살이 거의 없다. 날아올라야 하는 숙명의 오리. 몸에 불필요한 살을 지니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가슴살은 스테이크로 구워 먹는다. 다리는 질기므로 콩피해서 익힌다. 그래서 제법 부드러워진다. 다리를 뜻하는 사태살이 다 그렇다. 소든 돼지든 말이다.

사각도 하나로 승부하는 중국 요리사들
오리의 진미는 껍질이다. 바삭바삭하고 깊다. 베이징의 유명한 오리구이집 <전취덕>이 바로 그 껍질 맛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식당이다. 밀전병에 껍질을 올리고 파를 곁들여 싸먹는다. 향취가 훅, 끼쳐오고 이내 바삭한 껍질을 씹는다. 홍콩의 식당 <융키>도 오리로 유명하다. 온갖 산해진미가 나오는 집인데 사람들은 오리를 첫손가락에 꼽는다. 정작 오리요리보다 나는 이 식당의 주방 구경이 기억에 남는다.

어마어마하게 큰 부엌 안에 발 디딜 틈 없이 요리사가 많다. 머리를 박박 깎아 동자승처럼 보이는 어린 요리사들도 있다. 얼굴에 여드름기가 남아 있어 햇병아리처럼 보이는데, 칼질만큼은 신기다.

커다란 화덕에서 익힌 오리를 꺼내 순식간에 부위별로 썩썩 썰어낸다. 쓰는 칼이 인상적이다. 날카롭고 폭 좁은 카빙 나이프가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생겨먹은 사각도다. 그걸로 섬세하게 살을 저며 내는 건 신기다.

중국 요리사들은 손톱만한 새우를 썰거나 돼지를 잡거나 대개 이 칼 하나로 승부를 본다. 그 친구들은 대개 홍콩 사람이 아니다. 저쟝성이나 후난성 같이 가난한 시골에서 요리사로 먹고 살기 위해 홍콩에 왔다. 한 달에 한 번을 쉰다고 했다. 지구상에 던져진 인생아, 미안하다. 그래도 그들은 씩씩하게 웃으며 오리를 굽고 저민다.

참, 오리 가슴살 굽는 법을 조금 더 설명하자. 껍질부터 낮은 불에 익힌 후 뒤집어서 더 굽는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껍질을 저미면 레어에서 미디엄 레어가 된다. 마치 쇠고기 등심처럼 덜 익혀 먹는 게 저 유럽의 습관이다.

소스는 보통 포트나 마데이라 같이 남부 유럽의 진한 강화와인을 쓴다. 달콤한 맛이다. 이걸 졸이고 오리뼈 육수에 섞어 소스를 낸다. 곁들이는 음식으로 사과와 오렌지처럼 상큼한 과일이 즐겨 선택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