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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게 그리운 할머니 잔소리와 손길
사무치게 그리운 할머니 잔소리와 손길
  • 글·사진 한형석 기자
  • 승인 2012.02.29 15: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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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샤브샤브

▲ 고추장 샤브샤브를 칼국수 사리로 마무리 하면 만족은 절정에 이른다.
유복자 집안에 큰손자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걸 축복으로 생각하고 있다. 많은 할머니들이 그렇듯 집안에 거의 모든 양념-된장·고추장·간장은 기본이고-은 직접 만드셨는데, 어린 손주가 나이가 들어 캠핑을 다니면서 그 진가는 더더욱 빛이 났다. 한마디로 향기부터 달랐다.

처음에는 장을 싸가지고 다닌다는 게 너무 창피했는데, 일단 한 번 맛을 보고난 후부터는 선배들의 압력이 대단했다. 캠핑 회비까지 안 받을 정도였으니 말하면 입 아플 정도로 우리 팀 요리는 수준이 달랐다.

기본이 되는 장을 직접 만든 것을 사용했으니 플라스틱 통에 든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된장에 배추만 썰어 넣어도 맛이 있을 정도였다. 가끔은 야영장에서 재료들을 벌여놓고 열심히 조리하고 있노라면, 가끔 다른 팀 사람들이 찾아와 신기하다는 듯이 여러 가지를 묻곤 했다.

포장김치와 인스턴트 국거리, 진공 처리된 양념장 등 조리하기 쉽고 먹기 편한 음식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번거롭게 무슨 준비를 그렇게 많이 해오냐는 것이다. 하지만 요리가 완성되고 첫 숟가락이 입 속에 들어가고 나면 그들은 자신이 한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금방 알게 된다.

▲ 우선 설설 끓는 물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푹 퍼서 넣으면 그 향기가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찌개가 일품이라는 둥, 집에서도 못 먹어본 맛이라는 둥 서로 다투어가며 코펠을 휘젓는다. 그리고 술이 한 순배 돌고나면 이내 김치나 찌개는 동이 나버린다.

산에만 오면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기 십상인 요즘 일반 가정에서도 맛보기 힘든 전통 장과 김치 맛을 본다는 것은 오히려 사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정성이 들어간 음식을 먹었는데 캠핑장에서 게으름을 부린다던지 술이 고주망태가 되어 남에게 실례가 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비록 진공 처리된 재료보다는 냄새가 배어 나오고 비위생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때 우리 할머니가 챙겨주신 재료들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다.

원래 이 요리는 할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고추장과 쇠고기 그리고 싱싱한 채소가 주재료인 고추장찌개였다. 그런데 술안주로 내놓으면 어느새 바닥이 나서 좀처럼 안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샤브샤브. 한 번에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선 설설 끓는 물(쌀뜨물이면 더욱 좋다)에 고추장 한 숟가락을 푹 퍼서 넣으면 그 향기가 일단 반은 먹고 들어간다. 빨간 색깔하며 알싸한 냄새는 아마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기 충분할 것이다.

▲ 한 번에 먹을 수 없는 안주로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낸 것이 샤브샤브다.
샤브샤브는 원래 팔팔 끓는 국물에 아주 얇게 썬 쇠고기를 살짝 익혀 새콤한 소스를 찍어 먹는 요리다. 맑은 다랑어 국물에 버섯과 야채를 듬뿍 넣어 만든 일본식 요리다. 우리나라의 전골과 그 뿌리를 같이 두고 있는데, 모든 재료를 한꺼번에 넣어 끓이는 전골과 달리 재료를 조금씩 자주 넣어 먹으므로 간이나 양 등을 쉽게 조절할 수 있다.

푹 끓여서 색깔이 더욱 먹음직스럽게 변한 매콤한 육수에, 얇게 저민 쇠고기를 살랑살랑 흔들어 먹으면 술자리는 무르익어간다. 한겨울 댓바람에 콧물을 훔쳐가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울음소리 나는 산골 얘기를 해도 피곤한 줄 모를 것이다. 거기다 다음날 아침 갓 반죽한 것 같은 칼국수 사리로 마무리를 하면 만족은 절정에 이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시고 침낭 속에 누우면 하늘의 별은 쏟아지고 마음이 설레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음식들을 챙겨주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사실 할머니는 내가 캠핑을 간다고 하면 우선은 말리셨다.
 
밤에 추운데 어디를 가냐는 둥. 밥은 어떻게 먹느냐는 둥 제발 한데서는 자지 말라 하시며 손자의 마음을 묶어 놓으시려고 애를 쓰셨다. 하지만 내가 묵묵부답 말없이 배낭을 챙기면 어느새 쌀과 김치와 장을 챙겨주셨다.

산에 가면 으레 한데서 자고 제대로 먹지 못 할 거라 생각하시는 우리 할머니는 꼬부라진 허리로 대문까지 나와 손자의 손을 꼭 잡으시면서 이번만 가고 다음부터는 가지 말라며, 시키지도 않는 짓을 왜 하느냐며 핀잔을 주시곤 했다.

하지만 이제 영영 잔소리나 걱정하시는 소리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10년 전 이른 봄, 약속이 틀어져 캠핑을 가지 않은 일요일이었다. 할머니가 부르시기에 나가보았더니 겨우내 메주를 띄운 게 너무 굳어 쪼개지지 않는다며 두 동강만 내달라고 부탁하셨다.

나는 귀찮아서 이번이 마지막이고 앞으로는 안 해줄 테니까 다음부터는 사 드시라고 투덜대며 캠핑용 도끼로 단숨에 쪼개드렸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그 메주로 간장을 띄우셨다.

그게 정말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무정하게도 할머니는 이 큰손자의 손도 잡아 주지 않고 어느날 아침 조용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셨다. 손자 보고는 산에 가도 꼭 전화하라고 당부하시더니 당신께서는 연락도 없이 연락도 안 되는 곳으로 훌훌 날아가 버리셨다. 

할머니의 핀잔 한번 원 없이 듣고 싶다. 아니 캠핑 가지 말라는 말씀 한번만 더 들으면 여한이 없겠다. 그러면 정말 다시는 캠핑 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캠핑 가지 않고 할머니 품에 안겨 꿈같은 주말을 보낼 수 있는데 말이다.

Tip 고추장 샤브샤브
샤브샤브용 쇠고기 600g, 느타리버섯 200g, 미나리 약간, 깻잎 10장, 양파 반 개, 무 50g, 고추장 1큰술, 고춧가루 약간, 혼다시 2작은술, 다시마 명함 크기 한 장, 다진 마늘 1/2큰술, 생칼국수 한 봉지.

1. 물에 무를 넣고 물이 끓으면 불을 줄여 국물을 낸 후 다시마를 넣는다.
2. 무가 푹 익고 다시마 맛이 우러나면 혼다시를 넣고 고추장, 고춧가루, 소금으로 간을 한 후 마늘을 넣는다.
3. 깻잎, 양파, 미나리, 버섯을 넣고 끓이면서 쇠고기와 함께 익혀 먹는다.
4. 쇠고기와 버섯, 야채 등을 익혀 먹은 후 국물에 생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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