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성으로 먹는 짭짤한 추억
불성으로 먹는 짭짤한 추억
  • 글 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2.02.28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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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동물로 흔히 조개를 꼽는다. 더욱이 선조의 모습 그대로를 가장 근접하게 가지고 있는 생물이라고도 한다. 왜 아니겠는가. 물결무늬의 외투와 극도로 단순한 내장 기관과 근육, 그게 전부다. 중생대부터 조개는 비슷한 모양으로 오늘날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 소래포구의 어시장은 모든 조개를 바지락으로 통칭할 만큼 바지락이 많은 포구였다.

그 무심한 침묵, 육지로의 열망조차 거세된 느린 이동과 영겁의 절제가 바로 조개의 본성이다. 조개를 부위별로 해체하여 먹는 일이 없듯이, 그 간명한 조직은 오직 물을 빨아들여 양분을 얻고, 다시 물을 뱉어내는 순환의 과정을 이어간다. 그리하여 바다 속의 짠 기운과 영양이 응축된 독자적인 맛을 낸다. 조개는, 내가 알기로 가장 강력한 맛의 근원 물질이다. 그것은 오래 기다려서 내재된 맛의 짭짤한 추억이다.

조개를 대표하는 바지락의 맛
소래포구에 가보았는가. 지금은 관광객으로 들끓는 원색의 들뜬 장터이지만, 오랜 내 기억에는 해수면의 햇빛 반사로 정신이 아뜩해지는 또렷한 기억의 포구다. 수인선이었던가. 맞은편 자리의 친구가 다리를 뻗으면 신발을 벗겨버릴 수 있었던, 좁은 객차의 장난스러움이여. 그 기차가 지나갔던 것도 같다.

우리는 소래에서 대충 가려놓은 차일 안에서 쭈그리고 앉아 사과상자 위에 놓인 낙지와 병어를 씹었다. 그리고 해장으로 낡은 나무문짝으로 가린 가설 주막 같은 식당에서 바지락칼국수를 먹었다. 바지락이란 말은 조개의 명백한 분류이겠지만, 이 포구에서는 그냥 조개였다.

조개의 다수가 바지락이었고, 조개 아닌 것은 제 이름을 따로 가졌다. 그만큼 조개는 바지락이고 바지락이 조개였다. 바지락은 조개의 맛을 대표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혀 앞 뿌리를 송두리째 휘감는 강력한 핵산, 그러니까 감칠맛의 꽃봉오리가 터진다. 이건 뭐랄까, 폭발하는 유혹이다.

바지락이 내 두 다리를 단단히 붙들고, 바다 밑으로 한정 없이 끌고 들어가는 맛이다. 나는 졌다. 풀 냄새 나는 국숫발은 다음 맛이었고, 그저 밀가루 전분이 풀린 그 바지락 맛에 푹 빠졌다. 조개의 맛이었다. 중생대부터의 유혹이었다. 패총을 쌓은 선조들처럼, 나는 바지락을 먹었다.

이태리에선 바지락 스파게티를 요리했다. 아니, 내가 일하던 식당에서는 팔지 않는 서민 메뉴였던 탓에 주로 사먹었다. 이태리의 바지락은 크기가 작다. 어떤 건 재첩처럼 엄지손톱 크기다. 작지만, 맛을 응축하고 있어서 혀를 톡톡 쏘는 맛을 낸다. 봉골레 베라치. 줄이 그어진 바지락이라는 뜻의 이 조개 이름은 마치 네오리얼리즘의 거장을 연상시킨다. 베라치 감독의 <시간의 숲> 뭐, 이런 영화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의 상상력이다.

간결해서 맛있는 봉골레 스파게티

▲ 봉골레 스파게티는 간결해서 맛있는 요리다. 그래서 눈에 띄게 잘하기도 어렵고, 못하기도 어렵다.

어쨌든 베라치 감독은 자기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오직 조개와 몇 가지 양념만으로 궁극의 맛 한 자락을 보여준다. 바지락 칼국수와 한 판 붙어 봐도 좋다. 칼국수가 그 육수에 풀린 전분과 호응하여 맛을 터뜨리는 데 비해, 봉골레 스파게티는 오일과 만나 입에서 말초적으로 산화한다.

자, 봉골레 스파게티를 만들자. 통마늘에서 한 톨을 잘라 대충 껍질을 벗긴다. 깐마늘은 사절이다. 손바닥에 힘을 주어 도마 위에 놓인 마늘을 으깬다. 불판위에서는 두툼한 알루미늄 팬이 오일을 뒤집어쓰고 달궈지고 있다. 그 위에 마늘을 던진다. 치익, 갈색으로 마늘이 익으면 미스터 베라치들을 한 줌 올린다.

뜨거운 기름을 칠갑한 조개들은 공포에 떨며 죽어간다. 그러면서 중생대 선조 때부터 유전되어온 온몸에 내장시킨 영양과 맛을 뱉어낸다. 조개가 입을 벌리고 그 보들보들한 속살을 보여주면 막 삶아서 밀가루 냄새가 풀풀 나는 스파게티를 집어넣는다. 힘차게 휘젓는다. 조개의 즙이 스파게티의 표면에 기름과 엉켜 찰싹 찰싹 달라붙도록 말이다. 그리고 불을 끄고 막 다진 신선한 파슬리 한 줌을 넣는다. 간결해서 맛있는 요리, 그래서 눈에 띄게 잘하기도 어렵고, 못하기도 어려운 요리.

피조개라면 역시 <아웃도어뉴스>의 박모 편집장이 낮술에 취해 끌고 간 아산만의 막막한 바다, 그 가설 천막에서 먹던 5천원에 한 대야 주던 것이 최고였을 것이다. 나는 그 이후로 노량진에서 피조개가 나오면 한 봉지씩 사서 먹는다. 값은 더럽게 비싸다. 그 흔한 조개가 이젠 최고급 초밥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물 두 살의 박성용(그렇다. 그 편집장이시다)이 없는 피조개는 맛이 없고, 아산만의 찌는 태양이 없어서 무효다. 그리고 박성용은 군산 앞바다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타다가 군대에 끌려갔다.

개조개하면 문태준의 시 <맨발>이 먼저 생각난다. 좋은 시는 맛과 추억 앞에 자리 잡기도 한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
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 갔다 /
(후략)

개조개는 한국의 도시 사내들은 아마 포장마차에서 처음 먹을 것이다. 대합이라는 타자의 이름으로 얼음 진열창 안에서 끙끙 앓다가 취객 박찬일에게 선택되어 살이 도려내진다. 불쌍한 취객의 해장을 위해 맨발을 난도질당하고 양념을 뒤집어쓴 채로 불 위에 앉으신다. 그 불성을 먹고 나는 소주를 비운다. 사람은 그렇게 살아가고, 조개는 또 어디선가 자라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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