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다섯 개만 먹어도 “아이고 어머니!”
딱 다섯 개만 먹어도 “아이고 어머니!”
  • 글·사진 박찬일 기자
  • 승인 2011.12.0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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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 솜씨 좋은 어머니의 요리 중에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건 이북식 만두였다.
군대 시절, 어찌된 군대가 일 년에 팔 개월은 노상 밖으로 떠돌았다. ‘알보병’이라서 모든 이동을 발로 하는 부대였다. 절벽 길에서도 졸면서 걷는다는 그 무시무시한 내공의 병장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군 생활을 시작하던 쫄병 때였다.

심지어 2박3일을 내리 걸을 때도 있었는데(세상에, 무슨 전쟁을 발로 하나) 그 고통을 잊는 건 순전히 먹는 상상이었다. 마침 단짝이던 윤상병과는 죽이 잘 맞았다. 곡성 출신의 그는 부산을 떠돌며 노가다를 해본 경험이 있어서 그 동네 술안주에 밝았다.

“워미, 등쭐기가 시퍼런 고등어를 껍딱 확 베껴서 회쳐노믄 소주가 마구 들어갔제.”

이런 식이었다. 그 얘기를 들으면 고등어 껍질이 쫘아악 벗겨지는 장면이 눈에 보일 것 같았다. 나는 고작 학교 앞 막걸리집에서 먹어본 닭갈비나 순두부가 고작이어서 그에게 견줄 요량이 없었다.

고기와 당면보다는 부추의 맛
그럴 때는 어머니의 요리가 동원됐다. 솜씨 좋은 어머니의 요리 중에서 첫손가락으로 꼽히는 건 이북식 만두였다. 이북 출신도 아닌 어머니가 왜 그 만두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서울로 오신 후 어느 ‘선수’한테 전수 받았다고 했는데, 이게 별미였다. 크게 피를 밀고(절대 레디 메이드 피는 안 쓴다) 부추를 넉넉하게 넣은 소를 채워 삶으면 일품이었다.

이 만두는 찌면 맛이 덜했다. 피를 아주 얇게 밀거나 발효하는 것이 아니어서 찌면 수분을 빨아들여 맛이 퍽퍽했다. 그렇게 푹 삶아서 건진 후 가운데 배를 갈라 간장을 넣고 먹었다. 워낙 크게 빚어서 딱 다섯 개만 먹어도 장정이 “아이고 어머니!”할 양이었다.

“일단 첫 번째 만두는 김이 빠지기 전에 간장을 쳐서 막 입에 넣어요. 식도로 쩌르르, 만두가 내려가면 그 다음에 향이 납니다. 부추의 향! 고기와 당면보다 부추지요. 요새 어머니의 만두는 예전만 못한데, 순전히 부추 맛이 달라져서 그렇다고 하실 정도죠.”

윤상병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면, 나도 침을 꿀꺽 삼켰고(얘기하다가 침이 넘어가 중간중간 말을 멈춰야 했다) 윤상병은 이렇게 기도비닉의 엄중함 속에서도 소리를 질렀다.
“아 썩을! 그만 하랑께.”

그 소리가 새벽 산길의 아스라한 안개 속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는 현실이었고, 만두는 몽매의 이상이었다. 만두! 이탈리아에는 토르텔리니라는 만두가 있다. 이 만두를 너무 사랑한 어느 지역 사람들이 ‘토르텔리니당’을 만들었다. 진짜다. 총선에도 나가 수천 표를 얻었다고 한다. 나도 만두당이 있으면 가입하련다. 만두당 합정지구당위원장은 옆집 ‘우리만두’ 사장과 겨뤄야 하겠지만 말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주르륵 흐르는 즙과 향

▲ 넉넉하게 소를 채워 넣은 만두는 고기와 당면보다 부추의 맛이 중요하다.
중국을 하릴없이 빙빙 돌며 여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천진의 ‘꺼우뿌리’ 만두도 먹어보았고, 북경의 왕만두도 나의 만두당파적 과격한 애호의 대상이었다. 나의 당파성은 만두였다. 북경은 나름 패스트푸드가 발달한 곳이었다. 지금은 맥도널드와 케이에프씨까지 있지만 내가 다니던 시기의 패스트푸드는 만두와 일회용 도시락이었다. 이런 패스트푸드가 발달한 이유가 있다. 북경이 수도이므로, 시골에서 많은 이들이 관광을 왔다.

돈 없는 시골 사람들이 거리에서 한 끼 때울 음식을 찾았고 상인들은 그걸 만들었다. 두 가지 반찬 정도가 들어간 싸구려 도시락이 2원(3백원가량)이었고, 어마어마한 크기의 왕만두가 1원이었다. 90년대 초반이니 그리 먼 일도 아니다. 그렇게 파격적인 값의 만두는 달았다. 베어 물면 물이 주르륵 흘렀다. 누구는 육즙이라고 부르는, 실은 녹은 비계와 한천 같은 바닷말의 일종이 녹은 물이었다.

그걸 입가에 줄줄 흘리면서 종이에 싸준 만두를 걸어 다니며 먹는 것이었다. 중국의 만두 문화는 간장을 찍는 경우가 드물다. 그저 만두 그 자체의 즙과 향을 즐긴다. 하긴, 간장처럼 센 양념은 모든 맛을 간장으로 수렴해 버리고 말지 않는가.

그렇게 쭉쭉 빨면서, 북경 만두의 두툼하게 발효된 피를 씹으면서 걷는 것이 진정한 북경식 관광행위였다. 그러다 다시 배가 고프면 하나를 더 사먹으면 됐다. 만두집은 어디서든 눈에 띄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거나, 아니 마구잡이로 만두 솥 앞에 ‘호떡집 불난 것처럼’ 몰려 있으면 그것이 만두집이었다. 그 틈을 뚫고, 만두 연기를 쐬어 가면서 만두 하나를 받아들면 됐다.

중국의 만두는 한국에도 이젠 진짜배기가 많이 소개된다. 중국 만두는 파오쯔라고 부른다. 만두는 속에 아무 것도 안 든 그냥 찐빵을 의미한다. 지역별로 만두가 다 다르다. 홍콩의 딤섬에 나오는 만두를 아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속이 비치게 얇게 피를 미는데, 이건 쌀가루를 섞어서 그런 경우다. 남쪽은 쌀이 많고 북쪽은 밀가루의 고장인 까닭이다. 흔히 상해의 소롱포도 한국에 소개됐다. 촉촉한 국물이 맛좋은 부드럽고 향기로운 만두다. 북경식은 크고 채소 따위로 속을 꽉 채우는 경우가 많다. 북쪽 지방은 확실히 뭘 해도 아기자기함보다는 대륙적이고 터프하다.

명동에 몇몇 만두 잘하는 집이 있는데, 인천 차이나타운에도 독보적인 곳이 있다. 원보라는 집인데 밖에 ‘짜장면은 안 팝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다. 진짜 중국음식에 짜장면은 없다는 단호함이 보인다. 안에 들어가면 더 웃긴다. ‘짜장면, 짬뽕 안팝니다’ 후덕한 아주머니 왈.

“짜장 안 팔면 짬뽕은 없냐고 합니다. 만두의 맛을 모르는 분들이지요.” 그래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안쪽의 정갈한 부엌에서 온 식구가 달려들어 만두를 빚는다. 진짜 만두 맛이다. 중국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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