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고 나서 찾은 또 다른 빛
빛을 잃고 나서 찾은 또 다른 빛
  • 글·송경태 <신의 숨결 사하라> 저자
  • 승인 2011.05.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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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 딛고 사하라 사막 250km 완주

송경태씨는 1982년 군 입대 40일 만에 수류탄 폭발 사고로 두 눈을 잃었다.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때였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국토 도보 종단, 미국 대륙횡단, 캐나다 로키산맥 스쿼미시 치프봉 거벽등반 등을 비롯해 세계 4대 극한 사막마라톤을 완주하는 등 극한의 도전을 이어왔다. 지난 3월 송경태씨는 6년 전 사하라 사막 마라톤을 완주했던 기록을 정리해<신의 숨결 사하라>를 펴냈다. - 편집자 주

▲ 6박7일 동안 250km를 달리는 사하라 사막 마라톤. 파트너의 배낭과 연결된 1m의 생명줄을 붙잡고 완주해냈다.

2005년 9월, 나는 지금 이집트의 카이로에 와 있다. 카이로에서 최고급인 모벤픽 파크호텔 로비가 북적이고 있다. 23개국에서 온, 일상의 궤도에서 이탈한 비정상적인 사람들 때문이다.

여기 모인 107명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사하라 사막 250km를 불볕을 등에 지고 달리는 것이다. 그것도 그냥 달리는 게 아니라 3천 달러라는 큰 돈을 지불하고 지표 온도 50도가 넘는 불모의 땅 사막을 달리기 위해서 왔으니 이들을 정상이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중에서 나, 송경태는 비정상의 극점에 서 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1급 시각장애인인 내가 이집트 카이로에 와있는 것이다. 스물두 살인 큰아들 민은 이번 레이스에 자원봉사 신청을 해서 나와 동행했다. 아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열흘이 아니라 한 달이라도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핏줄을 통해서 교감할 수 있는 힘이었다.

나는 두 눈을 잃기 전까지는 어떤 한계 속에서 살았다. 두 눈으로 보이는 가시거리의 한계가 은연 중에 내 정신의 한계선이 되었을 것이다. 실명을 한 뒤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암흑이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자살’에서 ‘살자’로 마음을 고쳐먹고 내 힘으로 알껍데기를 깨고 나왔을 때 암흑은 벽이 아니었다. 한계가 없는 무한이었다.

▲ 사막은 먹구름이 낮게 깔린 바다 같았다. 자욱한 모래와 용광로에서 갓 빠져나온 듯한 열기를 동반한 바람이 태양을 가리고 황금빛 모래구릉을 마구 할퀴었다.

18.5kg 배낭 메고 6박7일 동안 달려

실명 후 23년, 내 정신의 지평은 무한대로 확장되었다. 알껍데기를 깨고 나온 나는 이제 창공을 날수 있는 날개를 지녔다. 그 날개는 어떤 낙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사하라 사막 250km. 나는 사막에서 스스로 몸을 불살라서 환생하는 불사조 피닉스처럼 날아 갈 것이다.

“텐, 나인… 투, 원, 제로!”

23개 나라에서 온 107명의 레이서들이 함성을 지르며 출발했다. 6박7일 동안 250km를 달려야 할 이들의 함성과 발걸음에는 넘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과연 몇 사람이 마지막 골인 지점에서 환호할 수 있을지? 나는 레이스 파트너 인백씨의 배낭과 연결된 1m의 생명줄을 잡고 첫발을 내딛었다. 지열의 온도가 뜨거워지고 있음을 온몸의 세포가 먼저 느끼고 있다. 흐르는 땀이 금세 말라서 소금버캐가 끼었는지 살갗을 서걱거리며 갉아대고 있다. 18.5kg의 배낭이 점점 무거워진다. 물을 마셨다. 금세 수분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다.

“인백씨, 입술은 어때?”
“바싹 말라서 갈라 터져 피가 나오고 쓰라려요.”
“나하고 같군. 인백씨 어디서 나는 소리야?”

나는 인백씨와 말을 하다 말고 소 워낭 소리 같은 방울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고 물었다.

“낙타예요. 레이스 도중 낙오자가 생기면 태우고 가려고 주최 측에서 후미에 따라오게 했어요. 그리고 저 낙타보다 레이스 속도가 늦으면 탈락이래요.”

▲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한국팀. 이번 레이스에는 한국인 13명이 참가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낙타가 저승사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다. 그 고달픔 속에서 역경을 이겨낼 에너지를 얻고 극복의 과정에서 의미와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그게 바로 삶이다. 죽음은 그 고달픔으로부터 해방이다. 그러나 보람도 의미도 그 무엇도 없어져 버린다. 지금의 레이스도 삶이다. 포기하고 저 낙타 등에 올라타면 온갖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죽음이다.

사하라는 가혹하면서도 잔인했다. 이글거리는 태양, 섭씨 50도가 넘는 온도, 가공할 모래폭풍, 체력을 빨아들이는 모래구릉, 돌투성이 황무지, 소금이 굳어진 석회암 지대, 40도에 이르는 낮과 밤의 일교차,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신이 버린 대지였다.

불모의 땅 사하라가 신의 저주를 받은 땅이라면 이 모래 폭풍은 분노한 신의 숨결이다. 그래서 사하라는 생명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신이 내린 자연의 섭리에 도전하고 있다.
달리기를 멈추고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앉아서 모래폭풍이 닿는 면적을 최소화했다. 모래 입자들은 집요했다. 목덜미와 벌어진 옷깃 틈새는 물론 숨을 쉬는 호흡기로 모래 입자들이 공격해 들어왔다. 어서 빨리 모래폭풍이 지나가기만을 빌 뿐이다.

▲ 사하라 사막을 달리기 위해 23개국에서 온 107명의 참가자들.

겸허를 일깨워준 사하라

배낭을 열고 앞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만 남겨 두고 꽤 많은 양의 식량을 버렸다. 나는 잉여분의 식량을 버리면서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을 새롭게 발견했다. 5kg 가까이 무게를 줄인 배낭을 짊어지니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 모래구릉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상당히 긴, 세 곳의 모래 구릉을 거뜬히 넘어갔다. 5kg의 배낭 무게 차이가 나를 구해주었다.

앞에 펼쳐져 있는 모래 구릉들을 안 보는 게 정말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게는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뿐이다. 발을 디디면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스물두 살, 그 푸르디푸른 나이에 탄약고 안에서 겪었던 불행을 떠올렸다. 굉음, 섬광…. 내게서 빛을 앗아가 버린 그때의 절망에 비하면 지금 내게는 한 걸음 한 걸음의 고통 끝에 희망이 있지 않은가.

사막은 자장이 강한 땅이었다. 푸른 산, 정답게 흐르는 시냇물, 새들이 지저귀는 동산, 삶의 터전인 논과 밭, 계절 따라 빛깔이 바뀌는 자연,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내게 사막은 신비와 경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 신비와 경이로움의 자장이 지금 나를 끌어당기고 있다. 나는 엿새 동안 사막의 힘을 온몸으로 느꼈다.

▲ 타악기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이집트 사람들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사막의 신비와 경이로움은 내 영혼을 압도하는 힘이었다. 그 힘에 압도된 나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때, 사막은 내게 힘을 주었다. 엿새 동안 사막을 달리겠다고 온 자신감이 오만이었다는 걸 깨닫고 나자 한없이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 겸허해지지 않고는 단 한 시간도 사막을 달릴 수가 없었다.

사막은 내게 겸허의 소중함을 새롭게 일깨워 주었다. 내가 빛을 잃은 이후 더 밝은 빛을 찾았다는 걸 사막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일깨워 주었다. 그 빛은 오직 생명이 지닌 겸허함으로만 볼 수 있는 빛이었다.

“송경태, 당신은 위대한 레이서다”라는 함성과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사하라 사막 250㎞의 레이스가 끝났다. 민이 내게 안겼다.

“아버지….”

민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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