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새겨 넣은 장엄한 화엄경
돌에 새겨 넣은 장엄한 화엄경
  • 글ㆍ사진 박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승인 2011.05.11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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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YOND SILKROAD : 중국 산시성 운강석굴

중앙아시아에서 지중해 연안까지 이어졌던 고대 교역로 실크로드. 이 길에서 알렉산더 대왕과 칭기즈칸은 세계 정복을 꿈꿨고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동서양의 문명이 만난 낭만과 고행의 실크로드를 따라 나선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박하선씨의 ‘BEYOND SILKROAD’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 운강석굴의 상징인 20번 석굴의 거대한 불상들.

▲ 각 석실마다 파손이 심하지만 석실의 안과 밖에 수많은 조각상들이 남아 있다.

중국의 3대 불교 석굴 중 하나인 운강석굴(雲崗石窟)은 북경에서 북서쪽으로 382km 떨어진 산시성의 고도 다통(大同)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야산 기슭의 암벽에 벌집처럼 만들어 놓은 이 석굴은 석굴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토굴이라고 표현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이 온통 흙빛으로 빛나고 있다. 그래서 멀리서 보는 겉모습은 황량한 느낌을 안겨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엄청난 규모와 세월의 무게가 먼 옛날을 꿈꾸게 한다.   

이 석굴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쯤이다. 당시 북위시대의 승려 사먼통 탄야오의 지휘 아래 석굴을 파기 시작해서 494년 낙양으로 도읍을 옮기기 전까지 그리 길지 않는 시간에 절정을 이루었다. 직벽을 뚫어서 만든 석굴의 바위벽에는 10만여 점의 조각상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세월과 기후 그리고 약탈자들 때문에 5만여 점만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다.

입구의 목조 건물을 지나 맨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목조 건물이 감싸고 있는 5·6번 굴이다. 이 앞 번호의 다른 동굴들은 현재 복구 중이어서 통상 이곳부터 관람하게 된다. 두 굴이 한 조가 되어있는 듯한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엄청난 규모와 현란함에 입이 딱 벌어진다.

▲ 한 석실의 벽면에 새겨진 부조상들

▲ 3번 석굴의 거대한 불상.

▲ 여기저기 떨어져나간 거대 좌불상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5번 굴에는 이 운강석굴 최대인 17m의 부처 좌상이 금빛 찬란한 모습으로 버티고 있고, 이것을 둘러싼 동서남북의 벽에는 중·소 크기의 수많은 불상이 중앙의 좌상을 바라보듯 조각되어 있다. 또 6번 굴에는 중앙에 15m 높이의 장방형 탑 기둥이 천장까지 닿아 있는데, 동굴의 측면과 탑을 장식하고 있는 소벽에는 탄생부터 열반에 이르는 부처의 일생을 묘사한 정교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다.

이 두 동굴 장식은 운강석굴에서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규모도 규모지만 섬세함이 돋보이고 현란한 색채도 전혀 거부감을 느껴지지 않는다. 희미한 조명 속에 떠오르는 부처의 얼굴 하나하나에서 순진무구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한다. 시대를 초월한 새로운 차원으로 유혹하는 듯하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석굴들은 모두 입구에 원래 모습대로 아무것도 가린 것 없이 밖에 노출되어 있다. 관람객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나지막한 칸막이만이 입구의 아래쪽을 막고 있을 뿐이다. 2중 구조를 하고 있는 8번 굴에서는 조각이나 색채가 인도풍이 느껴진다. 11ㆍ12ㆍ13번 굴은 모두 같은 시기에 파진 것으로 11번 굴의 동벽 상부에 ‘北魏太和七年造像(북위태화 7년 조상)’이라고 쓰여 있다. 이때가 기원 483년인데, 어느 굴보다도 많은 불상들이 새겨져 현란한 색채로 빛나고 있다.

다 헤아려 볼 수는 없지만 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그 수가 약 1만 2천점에 이르며 황실이나 국가에 의해 조성된 것이 아니라 마을 신도들인 남녀 54명이 조성했다고 한다. 석공들은 황실과 국가의 융성 및 국태민안은 물론 해탈과 인간 세계에 다시 태어나게 되었을 경우 넉넉한 의식주를 바라는 마음에서 불상들을 만들었다고 한다. 소박한 그들의 소망과 불심을 읽을 수 있다.

▲ 거대한 입상이 압도적인 한 석실의 입구에서.

▲ 현란한 색채로 화려하게 장식된 6번 석굴의 한켠에 있는 부조상.

▲ 채색 벽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한 석실의 거대한 좌상

▲ 한 석굴의 채색된 부조와 벽화들.

운강석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6~20번까지 5개 석굴이다. 460년 탄야오의 지휘로 시작되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명 탄야오우쿠(曇曜五窟)라고 부르고 있는데, 역사가 가장 깊은 만큼 훼손도 심하다. 벽화들도 거의 남아있지 않을 뿐더러 거대한 불상들의 밑 부분이 상당히 심하게 파괴되어 있다. 살펴본즉, 자연적인 훼손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파괴였다는 생각이 든다. 도처에 뚫려있는 지름 5cm 정도의 작은 구멍들이 그런 사실을 뒤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번호가 붙어있는 석굴 중에서 맨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20번 석굴은 다통이 북위의 도읍지였던 마지막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하나의 거대한 좌불상이 차지하고 있다. 이 석굴의 앞면이 허물어지면서 불상이 하늘 아래 노출됐는데, 그 모습이 더욱 극적으로 보이게 한다.

겉에서 볼 때는 온통 흙빛에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그 규모와 화려함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인 운강석굴.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연적으로 있게 마련인 훼손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약탈자들의 인위적인 파괴로 인해 그 모습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이 무척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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