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안 엘리자베스 록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조안 엘리자베스 록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글 사진·김선미 기자
  • 승인 2011.09.30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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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다가오면서 더위보다 모기 걱정이 앞섰다. 우리 집은 홍제천변 북악산 백사실계곡 아래 있다. 물가 모기들이 극성이다. 그런데 얼마 전 근처 지역구 국회의원이 모기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섬뜩한 그림의 플래카드를 내걸고, 모기 유충을 잡아먹을 미꾸라지까지 방사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나 역시 모기가 불편하다. 하지만 테러와의 전쟁, 범죄와의 전쟁, 부패와의 전쟁…. 그 함부로 쓰는 전쟁이라는 말에 신물이 나는데, 모기에게까지 선전포고를 하는 세태에 쓴웃음이 나왔다.

▲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 조안 엘리자베스 록 지음
- 조응주 옮김
- 민들레 펴냄
- 12,000원

그러나 모기와의 전쟁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모기만이 아니라 곤충들을 혐오하면서 박멸의 대상으로 낙인찍고 강력한 살충제로 죽이면서 화학약품 회사들의 배를 불려온 것이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니 말이다.

질병예방관리본부 발표에 따르면 올 여름에는 모기가 특히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한다. 구제역 때문에 가축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모기가 소와 돼지 대신 사람을 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었다. 곧바로 모기퇴치용품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라는 뉴스가 이어졌다.

나는 이 우울한 소식을 들으면서 올 여름 동안 모기에 맞설 채비로 보다 근원적인 처방전을 찾았다. 인간과 곤충의 깊은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조안 엘리자베스 록의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라는 책이 그것이다.

우리는 ‘특히 곤충을 기피하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명백히 도움이 되는 동물이 아니면 어떻게든 죽이려’ 드는데, 이런 습성 때문에 곤충을 멸종시키려 들고 이 일로 ‘우리 자신을 지탱하는 생존 양식을 뒤엎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지적하는 책이다. 나는 여러 곤충들 가운데 특히 모기를 통해 인생을 전쟁터로 간주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 가슴에 와 닿았다.

“모기에 물려 아프고 불편해지는 것을 인간에 대한 공격이자 전쟁 행위로 해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인생을 선과 악의 대결장, 곧 전쟁터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사실 인류의 모든 전쟁과 다른 종에 대한 전쟁이 이런 인생관의 틀 속에서 이루어진다.”-<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 중에서.”

‘우리가 인생을 전쟁터로 간주하는 한 모기에 물려 아프거나 가려우면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피해의식을 느끼게 되고, 아무런 이유 없이 당한 공격에 복수하고 싶어진다.’ 과거의 나는 이렇게 곤충을 적으로 간주하는 태도가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이 들려주는 선주민들의 이야기에서는 오늘날 우리와 사뭇 다른 후한 인심들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의 전설에 따르면, 모기는 원래 인간을 도왔는데, 인간이 다른 종을 돕고 지구의 자원을 균형 있게 활용하는 책임을 망각하자, 모기는 인간의 주의를 상기시킬 수 있도록 인간을 무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들은 모기에게 물려서 아프다고 보복하지 않았다. 특히 “물린 사람의 주의를 상기시켜 깊은 자기 성찰을 유도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이런 대목을 읽으면서는 부끄러움마저 느꼈다.

모기를 잠든 영혼을 내려치는 죽비처럼 여긴 사람들과 오로지 분노와 적개심의 대상으로만 보는 사람들 사이는 얼마나 먼가.

현대인들은 모기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면서 “북미에는 천여 개의 기관에서 모기 방역을 위해 연간 1억5천만 달러를 쏟아 붓고 있는데, 지출 품목에는 모기의 천적과 무고한 다른 종들까지 죽이는 살충제도 포함되어 있다.

수천 평의 늪지대가 모기 박멸이라는 이름 아래 매립되면서, 잠자리 애벌레 같은 수서 곤충이나 모기를 잡아먹는 동물들에게까지 사형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보다 놀라운 것은 이런 ‘모기에 대한 전쟁이 식민주의가 절정에 달했던 시대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적도 부근의 아프리카나 아시아와 중남미 지역의 말라리아가 백인들을 거부한 것으로부터, 모기는 식민지 개척의 훼방꾼이나 제국주의의 적으로 간주된 것이다.

반면 적도 지역 선주민들은 말라리아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는데 이 점이 그들이 모기들과 서로 존중하며 사이좋게 살아왔다는 증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때문에 “자연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졌던 선주민들의 생활 방식은 “자연 속에서 살아남고 동식물 친척들의 덕을 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세였다”는 구절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모기에 대한 분노가 인간의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논리를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당장 내 팔뚝에서 피를 빨아 못 견디게 가렵게 만드는 모기를 태연하게 바라보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손바닥으로 모기를 내리치는 순간 조그마한 몸에서 피가 튀기는 것을 보고 통쾌해하던 마음을 이제 다시 돌아보기는 해야겠다.

암컷 모기가 다른 동물의 피를 빠는 것은 새끼를 낳기 위한 모성의 요구라는 점마저 이해하면, 기꺼이 모기에게 먹이를 나누어 줄 수도 있다는 사람들마저 있다는데…. 이 책에는 자기 피를 빨아먹으라고 이야기 하며 모기에게 팔을 내밀었을 때는 아무런 가려움도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는 경험담이 여럿 소개돼 있다.

나는 평소에도 살충제가 싫어서 여름이면 모기장을 치고 지낸다. 하지만 모기장 속에서도 끈질긴 녀석들에게는 영락없이 공격을 당한다. 결국 가려움 때문에 잠을 설치다 모기가 싫어하는 꽃향기를 밤에만 내뿜는 야래향 화분을 집안 구석구석 들여놓기까지 했다.
 
며칠 만에 지고 마는 그 꽃이 얼마나 효과가 있겠는가. 대신 올 여름에는 세상 모든 생명체들과 교감했던 선주민들처럼 모기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바꿔보려고 한다.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의 마지막 책장을 덮고 집 뒤 백사실 숲으로 산책을 가던 날이었다. 산모기가 기승을 부리는 울창한 숲으로 걸어가면서 모기가 야생지역의 수호신 역할을 해왔다던 책의 구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모기들아, 너희들의 숲에 들어가게 허락해줘서 고마워. 올 여름 우리 한번 잘 지내보자.’ 그러면서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가 바글거리는 물가를 지날 때는 미소 지으며 손까지 흔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모기가 왕성하게 날아다니는 해거름에 숲을 거니는 일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말 모기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온 긍정의 파장을 느꼈을까. 아니 허무맹랑한 짓이었다고 해도 상관없다. 모기에게 마음을 연 그 순간, 나는 어느 때보다 평화롭고 행복했으니까.

“우리가 지구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와 조화를 이룬다면, 다른 생명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의 동기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런 의식에 걸맞은 동정심으로 그들을 대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지구를 살리는 힘에 마음을 열고 친절한 모기를 만나는 뜻밖의 체험을 받아들이면서 세상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자비롭고 정겹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모기에게 고마워하자.”- 같은 책에서.

<세상에 나쁜 벌레는 없다>는 모기뿐 아니라 우리가 혐오하는 파리, 개미, 바퀴벌레들까지 따뜻하게 변호하고 있다. 파리는 분해와 재생의 능력으로 생명의 순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개미는 식물의 가루받이를 돕고 작은 동물의 시체 중 90%를 먹어치워 지구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핵심 종이며, 심지어는 바퀴벌레마저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경계, ‘카오스의 언저리’에서 보낸 혼령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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