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 겨울 하늘에 피었습니다
겨우살이 겨울 하늘에 피었습니다
  • 글,사진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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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일기

12월로 접어들면서 이곳 가리왕산 골짜기의 바람이 부쩍 드세졌습니다. 비교적 단열이 잘 된 저희 집도 골바람의 드센 힘 앞에서는 맥을 못 추는지, 꽁꽁 닫아 잠근 유리창 안으로 염치없는 외풍이 숭숭 파고 들어옵니다.


이럴 땐 햇살이라도 오래 머물러 주면 좋으련만, 짧은 겨울 해는 3시만 넘으면 마당을 떠나 서산으로 훌쩍 넘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가뜩이나 짧은 겨울 하루가 더욱 더 짧게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저는 이렇게 짧은 겨울 해를 탓하며 집안에서 웹서핑을 하거나 티브이를 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독서를 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옆 마을에 사는 총각들이 뒷산으로 겨우살이를 채취하러 가는 길이라고, 저희 집에 잠깐 들렀습니다. 계절을 핑계 삼아 마냥 게으름을 피우던 저는 주저 없이 배낭을 둘러메고 그들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저는 뒷산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길을 나선 데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습니다.
 
그동안의 운동부족으로, 오랜만에 큰 산까지 오르려니 가슴은 터질듯이 아파오고 한발 한발 발을 떼는데도 여간 힘이 든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다 제가 애지중지 키우는 저희 집 강아지 ‘달봉군’을 오랜만에 산에서 신나게 뛰어 놀게 하려고 데리고 갔습니다. 처음에는 산길을 신나게 오르락내리락 하며 뛰어가던 달봉군.

그런데 막상 바위가 울퉁불퉁한 암릉을 만나니 따라올 생각도 안 하며 낑낑거리는 게 아닙니까.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푸념을 뱉어가며 저는 애물단지 달봉군을 한쪽 팔로 안고 오르는 수고를 더해야 했습니다.

가장 높은 능선 위에, 가장 높은 참나무 가지 끝에, 아슬아슬 새집처럼 매달려 있는 겨우살이. 그 겨우살이들을 채취하려면 다람쥐처럼 나무를 잘 타는 기술이 있어야 하거나 다람쥐처럼은 안 되더라도 몸이 가벼워야 절대적으로 채취가 유리합니다.

저도 ‘왕년’에 등산학교에서 암벽등반 하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고, 인수봉을 오를 때 동료들에게 ‘슬랩이사’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암벽을 오르던 전력이 있었기에, 암벽 기술이 그래도 아직은 몸에 베어있다고 자신하며 동네총각들을 따라 나섰던 건데….

막상 산에 올라 나무에 매달려 보니 단 1m의 전진도 어려운 상황. 엉덩이가 어느새 이리도 무거워졌을꼬, 한탄을 해봅니다. 그간의 푸욱 퍼졌던 몸이 예전같이 바로 회복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몸과 마음은 자꾸만 따로 놀고 싶어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저는 동네 총각들이 따서 바닥으로 던진 겨우살이들을 주워 자루에 담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그동안 두어 번 내린 눈이 산 밑 동네에는 다 녹고 없었는데, 산속에는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떨어진 겨우살이를 주우러 눈 속에 푹푹 빠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니 신고 간 여름 장화 속의 발은 아리도록 시려 오고, 허리도 뻐근하게 아파오고, 여간 고단한 게 아닙니다.

겨우살이는 뛰어난 항암 효과 덕분에 사랑받고 있는 약재입니다. 그런데 워낙 채취하기가 까다롭다 보니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은 겨우살이 채취를 위해 나무도 베어 넘어뜨리고 나뭇가지도 마구 잘라내 볼품없는 나무로 만들어 놓고 간다는군요.

다행이도 제가 오른 이곳 가리왕산 능선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가 무사했습니다.

나무들은 저마다 고스란히 겨우살이만 이고 있을 뿐 흉하게 가지치기를 당한 흔적도, 베어 넘어진 자취도 없었습니다. 아직 이곳 정선 산골에는 그리 험한 인심이 침투하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면, 제 생각이 너무 한곳만 바라보는 것일까요.

변화무쌍한 산골의 겨울 날씨는 금세 해를 가리고 한바탕 눈이라도 올 것처럼 어두운 하늘을 만듭니다.

칼날 같은 능선 바람은 사정없이 우리들 뺨을 때리고요. 오늘의 작업은 가져간 자루 2개를 채우는 것으로 만족하고 끝을 내기로 했습니다. 자루 하나는 꽉 차고 나머지 하나는 반쯤이 덜 채워진 상태였습니다. 그 나머지 반에는 오르막길에 보아둔 더덕을 채취해서 메우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기로 했습니다.

함께 올라 간 총각들 중에 나이가 어린 순으로 겨우살이 포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가벼운 걸음으로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오늘 산에서 채취해 온 겨우살이는 말려 두었다가 보리차처럼 우려 마시기도 하구요. 겨우살이 끓인 물로 밥도 지어 먹으면 춥고 지루한 겨울이 더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습니다. 산골의 겨울은 오늘도 이렇게 조금씩 깊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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