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겨울의 가장 큰 손님이랍니다
눈은 겨울의 가장 큰 손님이랍니다
  • 글,사진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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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엔 겨울이 오고 나서 큰 눈과 큰 추위는 없었는데, 어제와 오늘 오랜만에 큰 눈이 내리고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 산골도 큰 눈이 내릴 때는 번거로운 일들을 해치워야 맘 편히 산골 생활을 즐길 수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눈치우기랍니다.

처음 정선으로 내려오던 그 해, 치워도 치워도 끝이 보이지 않는 눈이 지겨워 ‘눈이 다 내리면 치워야지’ 하는 심산으로 하루 종일 방안에서 뒹굴뒹굴하다 눈을 안 치운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잔소리를 되게 들어야 했습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약간은 억울한 심정이 들면서도 싱긋 웃음이 나옵니다. 여럿이 이용하는 동네 마을길을 안 치운 것도 아니고 나만의 공간이랄 수 있는 내 집 마당의 눈을 안 치운 것뿐이기 때문입니다.

▲ 서울서 산골 견학 온 두 명의 소년과 뒷집에 사는 두 명의 꼬마가 한바탕 신나게 눈을 치우고 있습니다.
어쨌든 큰 눈이 내린 오늘은 마침 어제 서울서 산골 체험을 위해 우리 수정헌에 투숙하러 온 중학생 두 명이 있어 그들의 힘을 빌리게 되었습니다.

산골에서 소일 삼아 민박을 하다 보니 “방학에 애들 내려 보낼 테니 힘들게 고생 좀 시켜줘라” 하는 전화가 간혹 걸려오곤 합니다. 그러나 그동안 정작 귀한 자식들을 보내는 일은 없었는데, 올해는 귀한 아들 둘을 버스비만 달랑 줘서 정선 골짜기까지 내려 보낸 부모님이 생겼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보면 수정헌 주인장이 생판 모르는 남인데도 아들들을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니 해마다 방학 때 산골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볼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 녹슨 가마솥을 화로로 이용한 불판에 지글 지글 삼겹살이 익어 가고 흐릿한 백열등 아래 산골의 행복한 저녁식사가 시작됩니다.
여하간 아들들을 보내주신 부모님의 부탁도 있고요, 또 저도 눈을 치우는 일이 이젠 꾀가 나는 산골 생활 3년차 각시이기도 하고요. 아이들에게 눈을 치워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니 중학생 투숙객들은 제 말에 수긍하고 곧바로 눈 치우기에 돌입합니다.

그러자 수정헌 앞길을 함께 이용하는 뒷집 꼬마들도 합세해 온 동네가 떠나가라 떠들어 대며 신나게 눈을 치웁니다. 정말 눈 치우는 일이 이렇게 신나는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정선은 ‘강원도 국도 유지 사업소’가 있어 그나마 내리는 눈에 대한 피해가 적은 편입니다.

행여 눈이라도 한번 내릴라 치면 ‘강원도 국도 유지 사업소’에서 가을부터 모집해 놓은 주민 근로자들이 적극 눈 치우기에 참여 하는데, 농한기인 겨울철에 심심풀이 돈벌이로 기운 있는 정선 주민이라면 누구나 그 일에 참가하고 싶어 알음알음 줄을 대기도 합니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눈을 치우는 일도 빗자루로 쓸어 담는 것처럼 어찌나 성의 있게들 하시는 지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눈이 많이 오는 정선이건만 겨울에 교통사고가 적은 이유 중에 하나가 신속정확한 눈치우기 덕분이라는 생각은 저만의 것은 아닐 듯싶습니다.

▲ 눈만 내리면 쏜살같이 나타나는 제설차. 강원도의 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어쨌든 수정헌에 투숙하는 두 명의 소년과 뒷집에서 온 두 명의 꼬마들, 그리고 수정헌 안주인이 모두 힘을 합쳐 시작한 눈 치우기는 장장 2시간이 넘게 걸려 끝이 났습니다. 깔끔한 마당을 보니 속이 다 후련합니다.

자, 다들 고생했으니 밥상이라도 차려줘야 하는 법. 저녁에 뒷집 총각들 집에 모여 삼겹살을 구워 가며 몸보신을 하는 호사를 부려 봅니다. 눈을 치우느라 고생했던 아이들의 미소도 넉넉합니다.

눈이 내리고 나니 그간 푸근했던 산골이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도 풀도 산도, 샘물도 계곡도 냇물도 모두 얼었습니다. 이렇게 겨울바람 불고 눈 내리고 다시 눈이 내리고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꽃 피는 봄이 또 소리 없이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새하얀 눈발이 휘날리는 겨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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