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의 여신’과 사랑에 빠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
‘풍요의 여신’과 사랑에 빠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
  • 글 사진·진우석 여행작가
  • 승인 2011.06.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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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malayas Trekking-Annapurna Rounding(1)

▲ 윗피상에서 마낭으로 가는 윗길은 안나푸르나 여신들과 강가푸르나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배낭을 꾸리는 그대여!

히말라야로 떠나신다면 부디 안나푸르나(8,091m)로 가세요. 그곳은 신성과 풍요로움이 흘러넘치는 새로운 세계입니다. 안나푸르나 여신은 당신을 위해 다양한 트레킹 코스를 준비해 놓고, 그중 한 가지만 뽑으라 할 겁니다.

그러면 단호하게 ‘안나푸르나 라운딩’이라 쓰인 패를 뽑으세요. 당신은 안나푸르나에서 가장 고전적이고 고귀한 코스를 선택한 것입니다.

우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가 시작되는 쿠디로 이동해야 합니다. 이곳은 카트만두에서 버스를 타면 8시간30분 걸립니다.
 
버스는 외국인이 이용하는 투어리스 버스가 아닌 현지인이 이용하는 로컬 버스입니다. 8시간 넘게 네팔 주민들과 살을 부대끼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과 정이 듭니다. 잘 아시겠지만 네팔 사람들만큼 순박한 사람들도 드물답니다.

쿠디에 내리면 40분 걸어 부블레까지 들어가 로지를 잡으세요. 부블레는 ‘영혼의 산’이란 이름을 가진 마나슬루(8,156m)가 잘 보이는 마을입니다. 그날 밤, 당신은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것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을 겁니다.

▲ 강한 흙바람을 맞으며 칼리간다키 강을 내려가는 트레커들. 까끄베니에서 좀솜으로 가는 길에 만나는 이 길은 고통스럽지만 황홀하다.

늦잠은 자지 말아요. 이른 아침 공기가 샘물처럼 상쾌하답니다. 아침 히말라야를 걷는 기분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부디 ‘걷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내면에서 울리기를 바랍니다.
 
길은 마르샹디 강을 따라 이어집니다. 이 강은 안나푸르나 영토의 동쪽 끝입니다. 강 동쪽은 마나슬루의 영역입니다.

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하다가 바훈단다 고갯길이 좀 힘듭니다. 다랑이논으로 유명한 남해 가천마을을 아시죠. 바훈단다는 가천마을의 고조 할아버지뻘 됩니다. 수천 미터 산사면이 온통 다랑이논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자연에 새긴 인간의 예술작품 앞에서 경악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히말라야 일대에서 안나푸르나 영토만큼 논농사가 잘되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안나푸르나는 ‘풍요의 여신’입니다. 쉬엄쉬엄 가세요. 히말라야에서는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도시에서 몸에 익힌 ‘빨리빨리’와 ‘이 걱정 저 걱정’을 깡그리 잊으세요. 이곳은 히말라야입니다

하룻밤을 상제에서 주무셨으면 다음날은 다라빠니까지 가야합니다. 점심은 달에서 드세요. 달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요정족의 마을처럼 아름답습니다.

▲ 마낭은 안나푸르나 동쪽 지방의 수도에 해당한다. 마낭으로 입성 직전에는 아름다운 불탑이 서 있다.

이곳은 예전에 커다란 호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고요한 강을 낀 평화로운 마을입니다. 마을로 들어서면 벼랑에 수려한 폭포가 몇 개 걸려있습니다. 달을 지나 다라빠니에서 묵어갑니다.

다라빠니는 마나슬루 코스와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가 갈리는 지점이라 큰 로지가 많습니다.

다음날은 드디어 안나푸르나를 다스리는 네 명의 여신 중에서 둘째 언니인 안나푸르나Ⅱ(7,937m)를 만나게 됩니다. 그동안 언제나 안나푸르나를 만날까 궁금하셨죠. 둘째 언니 안나푸르나Ⅱ는 안나푸르나 동쪽을 다스립니다. 둘째 언니는 성격이 시원시원해 사람들과 잘 어울려요.

반면 안나푸르나 지역 서쪽을 다스리는 왕언니 안나푸르나Ⅰ은 내성적이라 인간을 멀리합니다. 그래서 좀처럼 사람들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법이 없답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를 통틀어 왕언니는 깔로빠니에서 딱 한 번 얼굴을 보여줍니다. 반면 둘째 언니는 보거샵부터 쏘롱 라를 넘기 전까지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어요.

안나푸르나의 샹그릴라 마낭
차메에서 묵은 다음날은 피상을 만나게 됩니다. 피상은 안나푸르나 일대에서 가장 숲이 우거진 고풍스러운 마을입니다. 마을 꼭대기에 티베트 불교 사원인 곰빠가 있습니다. 그곳에 오르면 안나푸르나Ⅱ가 기막히게 보인답니다. 피상에서 마낭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훈데를 거쳐 가는 아랫길은 훈데 공항이 생기면서 개발된 전나무 숲길로 마낭까지 거리가 짧습니다. 반면 게루와 나왈을 거치는 윗길은 예로부터 주민들이 이용한 길로 거리는 멀지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줍니다.
람중히말~안나푸르나Ⅱ~안나푸르나Ⅳ~안나푸르나Ⅲ~강가푸르나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잊지 마세요. 날이 좋으면 윗길을, 날씨 궂으면 미련없이 아랫길을 선택하세요.

▲ 마낭은 안나푸르나 동쪽 지방의 수도에 해당한다. 마낭으로 입성 직전에는 아름다운 불탑이 서 있다.
안나푸르나 동쪽의 수도에 해당하는 마낭에 도착하시면 다음날은 꼭 쉬세요. 보통 트레커들은 마낭에서 고도 적응 겸해서 하루 쉬면서 밀린 빨래도 하면서 쏘롱 라를 넘어갈 준비를 한답니다. 맛나는 것 많이 사먹고 체력을 비축하세요.

마낭을 떠나면 쏘롱 라 고개가 시작된 것입니다. 마낭에서 쏘롱 라를 넘어 묵티나트까지 3일이 걸린답니다. 첫날은 야크카르카까지 갑니다. 마낭을 지나 1시간 정도 가다가 뒤를 돌아보세요.

그러면 마낭 마을이 얼마나 아름다운 줄 아실 거에요. 마치 하늘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에게 마낭은 히말라야의 숨어있는 샹그릴라로 통합니다.

야크카르카는 마낭 주민들이 야크를 키우는 곳입니다. 길은 완만하여 그리 힘들지 않습니다. 둘째 날은 하이캠프까지 갑니다.

▲ 폭설이 내린 윗피상 마을. 멀리 안나푸르나Ⅱ가 손에 잡힐 듯하다.
라운딩 코스를 통틀어 가장 높은 곳에서 잠을 자야 합니다. 4800m 고도에서는 산소가 부족하여 잠을 잘 잘 수 없답니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한두 시간은 꼭 눈을 부치세요. 드디어 쏘롱 라 고개를 넘는 날, 보통 트레커들은 이른 새벽에 헤드랜턴을 켜고 하이캠프를 떠납니다.

오전 11시가 넘으면 고갯마루에 강한 바람이 불어 고개 넘기가 힘들어요. 늦어도 오전 6시에는 길을 떠나세요.

세 걸음 가다 쉬고, 다시 두 걸을 가다 쉬고, 숨이 차 당신의 발걸음은 더딜 것입니다. 걱정 마세요.

모두가 그렇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밟다 보면 해가 뜨면서 주변의 황홀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저는 이 순간,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 황홀한 전율에 몸서리쳤답니다.


쏘롱 라 정상에서 환희를 만끽하세요. 이곳에서는 모든 트레커가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눈답니다. 고개 반대편으로 묵티나트 히말이 멋지게 펼쳐져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하산은 눈길에다가 경사가 매우 가파릅니다.

쏘롱 라를 넘어 성지 묵티나트로
쏘롱 라를 내려오면 만나는 묵티나트를 보면서 당신의 눈은 휘둥그레집니다. 이곳은 그동안 봐왔던 풍경과 전혀 다른 황량한 티베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 500년 넘는 역사를 가진 브라가 곰빠 안에는 기괴하고 주술성이 강한 탈이 걸려 있다.
묵티나트는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입니다. 묵티나트에서 두 종교는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풍요의 여신의 안나푸르나의 영토이기 때문입니다.

묵티나트에서 마르파로 내려오는 길은 마치 구름 속을 걷는 기분일 것입니다. 쏘롱 라를 넘어오느라 다리에 힘이 생긴 것이지요.

마르파까지는 먼 길입니다. 이제부터는 칼리간다키 강을 따라 내려옵니다. 이 강은 안나푸르나 영토의 서쪽 경계입니다. 강 건너 서쪽은 다울라기리(8167m)의 땅입니다. 중간에 만나는 까끄베니는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황홀한 마을입니다.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진 무스탕 가는 길은 이곳에서 열립니다.
까끄베니에서 좀솜까지는 거대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칼리칸다키 강바닥을 걸어 내려와야 합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당신을 덮치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놀라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힘들다고 비행장이 있는 좀솜에서 멈추지 말고 꼭 마르파까지 가세요. 집집마다 룽다가 날리는 마르파는 안나푸르나 동쪽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이곳은 사과의 명소입니다. 주민들의 집 안에는 사과 브랜디와 잼이 익어갑니다.

▲ 바훈단다 오르는 길에 만난 귤 파는 소년.
다음날은 전망 좋은 깔로빠니까지 갑니다. 마을 서쪽으로 우락부락한 다울라기리가 우뚝하고, 동쪽으로 닐기리 삼 형제 뒤로 왕언니 안나푸르나Ⅰ이 수려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안나푸르나 라운딩의 마지막 밤은 따또빠니에서 맞습니다. 따또빠니는 따뜻한 물이란 뜻으로 이름에 걸맞게 온천이 있습니다.

계곡 옆에서 솟아나는 온천에 피로를 말끔히 씻으세요. 아! 기어코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을 맞고 말았습니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베니로 내려가면 라운딩 코스는 끝이 납니다. 버스를 타고 포카로까지 3시간 걸립니다.

포카라는 커다란 호수 마을입니다. 폐와 호수에는 힌두교 시바 신의 전설이 담겨있는데, 이른 아침에 안나푸르나 여신들과 성산 마차푸차레가 물속에 들어앉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트레킹은 끝이 났지만 당신의 마음은 아직도 안나푸르나 마을들을 떠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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