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고 있습니다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고 있습니다
  • 글,사진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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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쨍하니 춥던 날씨가 다시 푹해져서 겨울이라는 단어보다는 봄이라는 느낌이 더 드는 오늘은 봄의 시작이라는 입춘이기도 합니다. 작년 이맘 때 일기를 보니 엄동설한 추위에 보일러관이 얼어서 밤새 추위에 고생하고 잠도 못 잤다는 내용이었지만, 오늘 이 따스한 햇살을 보면 실감 할 수 없는 기록입니다.

입춘이자 휴일인 오늘 겨우내 얼었던 조양강으로 누치를 잡으러 동네 분들과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누치라는 물고기는 이곳 정선의 방언으로 ‘눈치’라고도 불리는데, 한겨울에 투명한 얼음 밑을 헤엄치는 누치를 얼음 위에서 사람들이 소리 내어 미리 뚫어 놓은 얼음 구멍으로 몰고 가서 준비해둔 작살로 찍어 잡는다는군요.

그래도 불과 이틀 전까지 쨍하니 춥던 날씨 덕에 조양강은 군데군데 꽝꽝 얼어 있지만, 물살이 빠르고 볕이 좋은 강가에는 얼음이 녹아 보기 좋은 봄 풍경을 벌써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누치를 잡기 위해 약간 그늘진 강변에 가서 얼음 위로 올라서는데 밑이 투명하게 보여 올라서기에 참 불안했습니다. 동네 분들을 따라 겨우 올라선 얼음 위에 엉거주춤 발걸음도 제대로 내딛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울촌색시티를 내며 쭈뼛쭈뼛 따라가 봅니다.

▲ 겨울이라 숨어 있는 물고기들을 잡으려고 돌을 들추고 반두를 들이대는 동네주민들.

함께 동행 한 마을 분들은 성큼성큼 앞서 가시며 군데군데 얼음에 구멍을 내시느라 도끼로 얼음을 깨시는데, “쩡~ 쩡~” 하고 강변을 울리는 그 소리가 어찌나 묘하던지 난생 처음 들어 본 강변에 얼음 깨는 소리 정말 신비롭더군요.

얼음을 이곳저곳 깨 놓고 아무리 얼음 밑을 들여다보아도 물고기는커녕 물고기 그림자도 얼씬하지 않는 상황.

이리저리 얼어붙은 강 위를 낮은 포복으로 한 이십 여분 돌아다니며 물고기를 찾다가 같이 간 마을 주민 김동춘 씨의 제안으로 누치 잡는 건 포기하고 얼음이 녹아 흐르는 강바닥의 바위를 들쳐 내어 바위 밑에 숨어 있는 물고기들을 잡기로 했습니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란 동네주민 김동춘 씨의 지휘 아래 다들 얼음이 녹아 물이 흐르는 강가로 돌진!

▲ 얼어붙은 강에 구멍을 뚫고 돌 밑을 들춰 보지만 야속한 물고기들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바위를 들춰대기 십분 여 눈먼 퉁가리 한 마리가 얇은 막대기에 그물을 달아 만든 ‘반두’에 걸려 힘없이 파닥이며 가쁜 숨을 헐떡거립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곳 정선에 내려와서 처음으로 먹어본 민물고기 매운탕. ‘왜 이 맛있는 음식을 저는 사십년 넘게 안 먹고 먹어 보려는 시도도 안 해 봤을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그 맛은 황홀했습니다.

도시 민물 매운탕 집에서 ‘시가’라는 가격표가 있을 만큼 귀하다는 쏘가리 매운탕도, 이런 저런 물고기를 한데 잡아넣고 끓인 잡어 매운탕도 이곳에서는 봄부터 여름까지 쉽게 접하는 보양식입니다.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에 수제비 얄팍하게 떼어 넣어 먹는 그 맛에 한번 맛들인 후론 동네에서 매운탕을 끓여서 먹으러 오라는 소식만 오면 열일 제쳐두고 달려가 한 그릇 얻어먹고 오곤 했습니다.

김장 김치만 먹어 헛헛한 뱃속에 매운탕의 시원하고도 기름진 국물을 넣어 보려고 오후 한나절을 애써서 돌을 들춰가면서 햇살 가득한 강변을 헤매며 다니지만 물고기들이 겨울잠을 자느라 깊이 숨어 버렸는지 저희들이 열심히 들이미는 반두에 걸리지를 않습니다.

▲ 얼어붙은 강에 구멍을 뚫고 돌 밑을 들춰 보지만 야속한 물고기들은 그림자조차 드러내지 않습니다.
퉁가리 한 마리, 열목어 두 마리, 꺽지 한 마리, 그리고 김동춘 씨의 아들 민석 군이 돌 틈 사이로 잡아낸 조그만 다슬기 한 마리…. “쩝!” 다들 오늘은 매운탕 먹기를 포기하고 포획해 두었던 작은 양의 물고기들을 미련 없이 강가로 놓아주고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어설프게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성급한 봄이 오고 있습니다. 가난한 산골 살림에는 따뜻한 봄이 겨울보다 더 반가운 건 사실이지만 겨울은 겨울답게 추워야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더 따사로울 텐데…. 이렇듯이 춥지 않은 겨울이 걱정스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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