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 타고 섬섬히 떨어지는 갯내의 여름 향기
는개 타고 섬섬히 떨어지는 갯내의 여름 향기
  • 글·김영 프리랜서 | 사진·염동우 기자
  • 승인 2011.06.2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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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o Camping 몽산포해수욕장 솔밭야영장(1)

토요일 오후, 서울을 빠져나와 서해안고속도로로 접어들자 교통체증의 시작이다.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우리는 다양한 휴식 문화를 즐길 수 있게 됐다. 그것은 좀 더 많은 곳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더욱더 다양한 레저 문화를 선택할 수 있는 질적 향상에서 비롯됐지만, 주말 도로의 정체는 늘상 반복되고 있다.

이는 ‘빨리 빨리’라는 우리의 조급한 성격과 어떻게든 빠른 시간 내에 목표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여행 습관 때문이다.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르는 우리의 휴가문화는 늘 분주하고 바쁘다.

태을암 마애삼존불 뵙고 천리포로

▲ 백화산 태을암에 있는 태안 마애삼존불. 백제 초기의 석불 양식을 보여주는 보물이다.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서산을 거쳐 들어선 태안읍에서 제일 먼저 찾은 곳은 마애삼존불이 있는 백화산 태을암이다.
 
태안읍 동문리에 자리한 마애삼존불은 서산의 마애불과 더불어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한적함이 느껴지는 태을암 한쪽에 백제 초기 마애불의 특징을 보여주는 마애삼존불이 있었다.

태안의 마애삼존불은 중앙에 보살상을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해 이전의 마애불들과 다른 형식을 보여준다. 삼존불은 당당한 체구가 남성스런 자태를 느끼게 하고 서산의 마애불에 비해 세밀함도 덜하고 광배도 없다.

게다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아 백제의 불상들이 지닌 엷은 미소를 찾을 길이 없다. 그건 삼존불에 의지하며 고단한 삶과 생명의 안위를 빌었던 사람들의 열망이 식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은 늘 어렵고 힘든 삶을 이겨내기 위해 종교나 자연 등 또 다른 존재를 찾아 나서긴 마찬가지다.

태을암에서 서서히 힘을 잃고 서쪽 끝으로 스러져 가는 태양을 따라 천리포로 향했다. 천리포는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작은 포구다. 한적함이 밀려오는 바다 너머로 태양은 제 모든 살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한 점 남김없이 뜨거운 열정을 쏟아내는 태양, 그 붉은 빛의 아름다움에 사람들은 늘 일몰을 보며 자신을 반성하게 되나보다. 태양은 자신의 붉은 열기에 온통 검게 그을려 버린 수평선 아래로 조용히 제 몸을 식히기 시작했다.

몽환적인 분위기 물씬 풍기는 몽산포

어둠이 밀려오며 천리포에서 캠프지인 몽산포로 가는 길은 안개에 뒤덮였다.

백사장의 길이가 3km에 달하는 몽산포 해변은 해수욕을 즐기기에 적격이고 조개 캐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에 피톤치드 가득한 솔숲까지 이어져 가족 캠핑지로 좋은 곳이다. 77번 국도에서 남면을 지나 몽산포로 접어드니 어느새 갯내음 가득한 바닷바람이 밀려온다.

안개비 탓에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포근하게만 느껴진다.

서해 바다가 주는 포근함은 동해와 달리 더 부드럽다. 아니 서해보다 남해가 더 부드러울지 모른다.

시원하게 뻥 뚫려 매서운 칼바람만 부는 동해와 달리, 서해는 수평선 가까이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지고 해안에는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어 등기대고 설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서해는 동해가 가지지 못한 비경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온 세상의 모든 열기와 빛을 삼켜버리는 일몰과 석양이다. 때문에 시인 이정하는 그토록 몽산포를 그리워했나 보다.

해질 무렵 몽산포 솔숲 길은 / 아무래도 지상의 길이 아닌 듯 했습니다 /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 참으로 아득한 꿈길 같았습니다 // (중략) // 아름답다는 것 / 그것이 이토록 내 가슴을 저미게 할 줄이야 / 몽산포 해지는 바다를 보며 / 나는 그대로 한 점 섬이고 싶었습니다
─ 이정하 시인의 ‘몽산포 일기’ 중에서

▲ 최효선 씨와 이재희 씨가 준비한 아침 특별식인 베이컨 버섯 말이.
랜턴 불빛에 의지해 솔숲 야영장 한쪽에 텐트를 설치하고 늦게나마 주린 배를 채웠다.

밤안개에 뒤덮인 야영장은 는개 비까지 더해져 몽환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몽산’이란 이름은 이런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생겼는지 모른다.

소나무 가지에 젖어드는 밤이슬처럼 천천히 꿈에 젖어들었다.

지난밤 내린 안개가 가시지 않아 여전히 찌푸린 날씨지만 간간히 햇살이 비추니 다행이다.

아침의 주 메뉴는 캠핑 멤버인 최효선 씨가 준비한 ‘베이컨 버섯 말이’다.

싸리버섯과 오이를 깻잎에 싼 후, 그 위에 베이컨을 감아 풀어지지 않게 한 뒤 기름을 두르고 코펠에 지졌다.

깻잎과 버섯 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은은한 향과 함께 씹는 맛이 부드럽다. 베이컨이 지닌 짠맛에 육질과 채소가 어우러져 영양만점의 식단이 된 것이다.

조개도 맛살도 잡는 신나는 갯벌체험

▲ 지난밤 밤새 조개잡이에 나서 많은 양의 조개를 캔 야영객. 서해안은 캠핑과 함께 갯벌체험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
어지간히 배가 불러오자 모두들 썰물에 물이 빠진 바다로 나섰다. 온종일 솔숲에 앉아 있는 것도 좋지만 배도 꺼뜨릴 겸 몽산포 갯벌에 숨은 진주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물이 빠진 드넓은 백사장에서 조개를 캐는 것은 쉽지 않지만, 찾은 조개를 하나 둘 건져 올릴 때마다 느끼는 재미는 무척 즐겁다.

군용 야전삽을 들고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집에서 모종삽을 들고 온 사람까지 백사장은 온통 맛살(맛조개)을 찾아 나선 사람들로 북적였다.

물을 걷어내고 숨구멍이 보이는 곳에 앉아 구멍 속으로 소금을 뿌려 맛살이 나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초급 맛살 잡이에게 쉽게 잡힐 경험 많은 맛살은 없다. 한참을 기다리다 연신 장소만 옮겨볼 뿐 수확이 없다.

결국 맛살 잡이를 포기하고 모종삽을 들고 조개 캐기에 나섰다. 노하우가 없다보니 있을 만한 곳은 모두 파내는 전술(?), 드넓은 백사장을 모두 파볼 수는 없지만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는다’고 간혹 가다 눈먼 조개들이 하나, 둘씩 걸려 나온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소득이 없는 탓인지, 어느새 최효선 씨와 이재희 씨는 물 만난 제비처럼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어느 해보다 일찍 찾아온 무더위에 바닷물은 시원하기만 한 가보다.

두 사람은 갯바위에 붙은 불가사리를 줍기도 하고, 때론 물이 빠진 해안가를 뛰며 마음껏 여름 속으로 빠져들었다. 두 사람에 질세라 사진기자와 함께 여신 삽질을 해보지만 별 소득이 없다. 두 시간 가까이 백사장을 뒤져 잡은 것이라곤 이십여 마리의 조개뿐이다.

텐트로 돌아와 그릴에 불을 피워 조개를 얹었다. 숯불에 구운 조개는 양이 적기도 했지만 맛이 그만이라 이내 사라져 버렸다. 배도 차고 갯벌의 즐거움도 느낀 만큼 이젠 주변의 볼거리를 찾아 나섰다.

시장통처럼 시끄러운 꽃지해수욕장

▲ 바닷가에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 장비만 있다면 캠핑과 더불어 바다낚시에 빠져도 좋다.
몽산포에서 안면교를 건너 해안도로를 따라 꽃지로 향했다. 태안군은 해안과 모래사장이 아름다운 꽃지와 방포해수욕장 일대에 대단위 관광단지를 조성 중이다.
 
일요일 오후라 주차장은 차량들로 가득하고 바닷가 할미 바위와 할아비 바위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기만 하다. 본래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워낙 유명세를 타다보니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몸살을 앓는 것이다.

사람들 속을 헤치고 바닷가로 나가니 더욱 소란스럽다. 축제를 알리는 경비행기 소리에 바닷가까지 나온 장사꾼들까지 가세해 몽산포와는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다. 한적한 캠핑을 좋아하는 멤버들이다 보니 어수선한 분위기를 피해 인근의 안면도휴양림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름이면 예약조차 힘들다는 안면도자연휴양림은 수목원을 품고 있어 삼림욕과 더불어 꽃들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하늘을 향해 길게 뻗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림전시관에 들어서자 목재의 생성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솔숲이 주는 자연 치유 효과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도 있다.

“이곳에 들어가면 피부가 좋아진단 말이지.”

최효선 씨와 이재희 씨는 자연 치유란 말에 피부 관리가 먼저 떠오르는가 보다.

하지만 잔돈을 챙기지 않은 탓에 지폐 교환기 하나 없는 전시관에서 피톤치드 체험은 뒤로 미루어야 했다. 결국 휴양림을 대충 둘러보고 길 건너의 수목원으로 올랐다. 철쭉원과 목련원, 야생화 화원, 생태습지원 등 볼거리 다양한 수목원은 붉은 철쭉의 향연이 한창이다.

철쭉원 오름길을 따라 꽃길을 걸었다. 아이들과 함께 손을 잡고 수목원을 찾은 사람들과 연인들,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들…. 모든 사람들이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있다. 남는 것이야 한 장의 사진에 지나지 않겠지만 기억은 또 다른 사랑을 만들어 삶의 신선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자연에서 찾아야할 추억이고 휴식이란 생각이 든다.

누런 보리밭은 사리지고 펜션이 들어선 황도

꽃구경에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면도에서 꼭 찾아가봐야 할 섬, 황도로 차를 몰았다. 매년 음력 1월 초이틀에서 사흘까지 붕기풍어제가 열리는 황도는 본래 보리가 익으면 섬 전체가 노랗게 변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안면읍으로 향하다 창기리 이정표를 따라 좁은 길로 들어서 한참을 달리니 황도와 안면도를 잇는 1차선 다리다.

차량 한 대가 겨우 교통할 수 있는 좁은 다리가 황도의 유일한 통로다. 10년 전 들렀을 때 두 그루의 커다란 고목들을 떠올리며 빗속을 헤치고 황도를 찾았지만 한가로운 어촌이었던 황도는 너무도 변해 있었다.

▲ 꽃들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안면도수목원. 야생화 화원과 생태습지원 등 다양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예전의 보리밭은 사라지고 해안으론 근사하고 화려한 펜션들이 자리 잡았다. 마을 중앙에 자리한 당집에 오르니 이젠 그 제사 의식마저 사라졌는지 개망초와 잡초만이 가득하다.

어촌이던 마을에 펜션이 들어서면서 원주민이 아닌 이방인이 늘어나 당제에 대한 중요성도 그만큼 희석된 것이다. 아늑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던 풍경들이 사라진 것은 개발이란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정신과 삶의 중심이던 당집이 너무 초라해진 모습에 서글퍼졌다.

우린 점점 우리의 정신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질과 부를 우선시하는 세상에서 그나마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주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이 서글펐다.

추적추적 번개를 맞아 쓰러진 당산나무를 때리는 빗줄기는 하늘이 우는 눈물이 아닐까? 1박 2일의 안면도 여행은 그렇게 끝났다. 작고 소중함을 되돌아보는 추억을 남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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