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일기
비오는 날은 휴일’이라는 마음 편안한 공식이 있는 이 산골에서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요즈음, 내리는 비를 핑계로 늦잠에 낮잠에 하루 종일 집안에서 뒹굴뒹굴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 개3마리와 고양이 1마리를 함께 두고 사진을 찍으려는 생각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요. 오전 내내 소리 지르고 달래고 해서 겨우 이런 사진을 찍었습니다.으이구 웬수들. |
그러다 보니 아침에 움직이는 것도 늦어져서 함께 지내는 식구인 달봉이(4세, 변견), 달숙이(2세, 요크셔테리어 잡종), 달이(4개월, 그레이트 피레니즈 순종), 그리고 고양이 해롱이(2세, 러시안 블루)까지 난리를 쳐대며 얼른 아침 일과를 시작하자고 아우성들입니다.
“오줌 마려 죽겠는데 머하고 있는 거유?”(달봉군)
“배고픈데 밥 좀 빨리 줘요!”(달숙양과 달이양)
“옆집에 쥐 잡으러 가야 하는데 문 좀 빨리 열어요!!”(해롱이)
으이구 웬수들…. 무자식이 상팔자란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 딱 맞는 이야기라고 매일매일 느낀다면 너무한가요?? 후후.
일단 풀어줘도 도망을 안 가는 달이와 해롱이는 먼저 현관 밖으로 내 보내고요, 풀어 주면 바로 도망가지는 않지만 음식물 쓰레기장에 코를 박고 썩은 음식을 뒤지는 달숙이는 바로 묶어 두고요, 풀어주자마자 마을로 내빼는 달봉이는 제가 목 끈을 하고 볼일 보는 장소마다 일일이 끌고 다니다 데리고 와 묶어둡니다.
▲ 함께 붙어 지내는 달숙이와 해롱이. 고양이와 개는 앙숙이라는 이제까지의 상식과는 달리 어찌나 잘 지내는지요. |
이 산골에 내려 와 한 달쯤 지나서인가 동네 할머니께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았다고 달란 말씀도 안 드렸는데 덥석 안고 오신 강아지가 ‘달봉이’였습니다.
서울 살 때도 개를 키워 본적이 없어서 달봉이를 받아 놓고 도로 돌려 드리려 궁리를 했더랬는데, 처음 해보는 산골 생활에 낯설고 외롭고 무섭고 하던 시기였던 그때 꼬물꼬물 방안을 기어 다니던 달봉군의 등장이 어찌나 큰 위안이 되던지요.
▲ 새로 입양 되어온 달이. 이 더운 여름에 헥헥 거리며 온갖 사고를 쳐대는 사고뭉치입니다. |
그 뒤로 순전히 달봉이 심심할까봐 데리고 온 달숙이가 생겼고요. 그리고 고양이 해롱이가 새끼 때 저희 집에 분양되어 왔습니다.
해롱이는 러시안 블루라는 가문의 후예답게 태어나서 3개월 지나서부터 쥐 사냥을 시작해서 이젠 집 주변에 쥐가 자취를 감출 정도로 뛰어난 사냥 능력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입니다.
▲ 함께 생활한 지 4년째 되는 달봉군. 너무 똑똑해서 한 2년만 교육시키면 말을 할 줄 알았다는 착각까지도 했던 사랑스러운 개입니다. |
달숙이는 달봉이 하고 사이에 6마리의 강아지를 한번 낳은 달봉이 색시로 살아가고 있는데 새끼를 낳고도, 원치 않는 임신이었는지 대부분의 에미가 새끼를 지극정성으로 돌보는데 반해, 새끼 이유식도 빼앗아 먹고 새끼 뒤치다꺼리는 뒷전으로 굴어 한동안 제가 아주 많이 미워했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이 풀리질 않아 미운 오리새끼 위치에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막내 ‘달이’. 많이 먹고 많이 싸대고 맷집도 좋아서 웬만한 체벌에는 눈도 꿈쩍 안 하는 대형견입니다.
▲ 고양이 해롱이를 괴롭히며 쫓아가다 나무위로 올라가 버린 해롱이를 쳐다보고 있는 달이. 그야말로 고양이 쫓던 개입니다. |
이제 태어난 지 4개월 쯤 되어 가는데 몸무게는 16kg. 달봉이의 딱 4배 되는 거구를 끌고 다니며 ‘오늘은 어떤 사고를 쳐 볼까?’ 하는 눈초리로 마당구석 구석을 제 화장실로 여기며 이런저런 말썽을 쳐대고 있습니다.
‘개는 곧 가축’이라는 공식만 있는 이 산골에서 개와 고양이를 데리고 저녁마다 산책시키고 목욕시키고 하는 제 모습이 마을 어르신들께는 ‘유별나게’ 사는 모습으로 비춰질까 꽤나 조심을 하지만, 이미 ‘유별나게 가축들을 키우는 달봉댁’으로 찍히고 산 지 어언 4년.
제 곁을 네 해 동안이나 지키고 있는 똑똑한 달봉이도, 제게 미운털이 박힌 달숙이도, 곰순이 달이도, 고양이 해롱이도 늘 제 곁에서 이만큼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제 소망이라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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