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父子와 함께 떠난 꿈 같은 여정
두 父子와 함께 떠난 꿈 같은 여정
  • 글 사진·이남기 사진작가
  • 승인 2011.06.24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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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travel 캐나다 로키

한 면적의 약 100배에 이르는 거대한 땅덩이를 가진 캐나다. 보통 사람들은 캐나다를 대자연이 살아있는 나라라고 흔히 이야기 한다. 두 사람에 하나씩 돌아간다는 수많은 호수와 한번 들어가면 영원히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울창한 수림, 거기에 하늘을 밀치고 들어선 산봉우리와 빙하까지 더해지면 이런 천혜의 자연을 갖춘 나라가 과연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캐나다의 자연 환경을 이렇게 간단히 몇 줄로 표현해 낼 수는 없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지를 직접 두 발로 걸으며 몸으로 부대껴야만 그 속내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캐나다로 건너온 지 1년이 겨우 넘은 난, 한 마디로 이곳 생활에는 걸음마를 배우는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산이 그리우면 해안 산맥에 속하는 가까운 산이나 멀리 로키 산맥의 험봉을 찾아 그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산을 통해서 이국 생활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그런 차에 국내 산악계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한왕용 대장이 초등학교 1년생인 아들 한대성(6세)을 데리고 캐나다로 건너왔다.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로키를 걷자면서 말이다. 

한왕용 대장과는 몇 년전 백두대간 산행을 통하여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뒤로 한대장이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4좌를 완등한 후 2003년부터 펼치는 ‘클린 마운틴’ 행사에 몇 차례 참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산악 정화라는 행사 취지에 전폭적으로 동감한 까닭도 있겠지만,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한대장이란 산사람에게서 풍기는 인간적 매력이 훨씬 더 강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여간 한국도, 히말라야도 아닌 캐나다에서 한대장 부자와 우리 부자가 함께 로키를 산행할 수 있다니 개인적으로 가슴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에게도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 이종인(20세)이 있다. 산을 좋아하는 아빠를 만난 탓에 어릴 때부터 산에 끌려 다녔고,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15개월에 걸쳐 아빠와 단둘이서 백두대간을 구간 종주하기도 했다. 아들도 산을 무척이나 좋아하고 체력도 괜찮은 편이다. 지금은 캐나다 동부에 있는 워털루로 유학을 가있는데 방학이라 밴쿠버에 잠시 머무르고 있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밴쿠버에 비해 산이 없어 밋밋한 동부지역은 녀석에게도 갑갑했던 모양이다. 로키로 함께 산행을 가겠냐는 제안에 등산화부터 챙긴다. 

우리는 캐나다 로키의 최고봉이란 상징성을 가진 롭슨 산(Mt. Robson)을 먼저 찾았다. 정상은 전문 클라이머들의 영역인지라 롭슨의 북쪽에 자리잡은 버그 호수(Berg Lake)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했다. 그 다음은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라는 루이스 호수(Lake Louise) 주변의 트레일을 택했다. 여섯 빙하 평원(Plain of Six Glaciers)을 돌아 아그네스 호수(Lake Agnes)로 나오는 구간에 하루를 할애했고, 다음 날에는 모레인 호수(Moraine Lake)에서 센티널 패스(Sentinel Pass)를 다녀왔다. 마지막 코스는 클라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진 바가부(Bugaboo) 주립공원. 산장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이스트포스트(Eastpost Spire)를 오르는 것으로 로키 산행을 마무리했다.  


캐나다 로키의 절경 1 롭슨 산(Mt. Robson)  
웅장한 자태에 경외감 느껴
차창을 통해 바라본 우람한 산세들이 이미 로키로 들어섰음을 말해준다. 5번 하이웨이에서 16번 하이웨이로 갈아타고 산 모퉁이 하나를 돌자,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롭슨의 웅장한 자태가 우릴 반긴다. 어찌 보면 대단히 위압적으로도 보인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롭슨의 정상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았다. 난 이곳이 세 번째 발걸음이지만 정상을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원래 롭슨 지역은 일기 변화가 심하고 워낙 산세가 높아 정상을 온전히 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롭슨의 변덕스러운 날씨를 체험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상을 좀더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전망대를 다녀왔고, 점심을 해먹는다고 늑장을 부린 사이에 모든 경치가 구름 속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청승맞게 부슬비도 간간이 내린다. 버그 호수로 가는 산행기점은 공원안내소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1km를 더 들어간다. 롭슨 강을 건너 오솔길을 따르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요란스럽게 흘러내리는 강물을 벗삼아 키니 호수까지 완만하게 오른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무슨 할말이 그리 많은지 이야기가 끝이 없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캐나다 로키에는 웅장하고 매력적인 산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롭슨은 최고봉(3,954m)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1925년 와딩턴 산(Mt. Waddington, 4,016m)이 발견될 때까지는 브리티시 컬럼비아(BC)주 최고봉으로도 대우를 받았다. 만년설과 빙하를 연결하는 도도한 모습에서 위엄이 절로 넘쳐 나고, 3,000m 가까운 수직고도는 클라이머들의 투지를 부채질한다. 그렇지만 정상 등정을 시도하는 전문 산악인들도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고 한다. 본래 이곳에 살던 원주민들은 롭슨을 ‘나선형 도로의 산’이라 하여 ‘유하이하스훈(Yuh-Hai-Has-Hun)’이라 불렀다. 허드슨베이의 중개인이자 나중에 연방의원을 지낸 로버트슨(Colin Robertson)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도 있고, 1889년부터 1892년까지 BC주 수상을 지낸 롭슨(John Robson)의 이름을 땄다는 설도 있다. 롭슨은 1913년 BC주 주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역사가 깊다. 키니(George Kinney)와 필립스(Curly Phillips)가 1909년 롭슨을 초등했다고 주장했다가 필립스가 나중에 정상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1913년 케인(Conrad Kain)과 동료 2명이 북면을 올라 실질적인 초등을 이뤄냈다.

우리가 가려는 버그 호수 트레일은 로키에서도 경치가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이곳 산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버그 호수까지는 편도 거리 21km에 등반고도(Elevation Gain)가 780m. 야영에 필요한 등짐 무게를 생각하면 일반적으로 왕복에 최소 이틀은 잡아야 한다. 이 트레일 안에는 모두 일곱 군데의 크고 작은 야영장이 있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야영장은 산행기점에서 11km 지점에 있는 화이트혼 야영장. 버그 호수 주변의 야영장 예약이 여의치 않아 중간지점에 잡을 수밖에 없었다. 지붕이 달린 취사장이 있고 화장실도 준비되어 있다. 간간이 빗방울 듣는 소리를 들으며 모처럼 텐트 속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날도 하늘이 흐리긴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묵은 야영장에서 10km를 더 올라야 버그 호수에 닿는다. 여기서부터가 사실은 된비알이다. 가파른 경사를 오르느라 숨을 헉헉 몰아 쉴 즈음에야 세 개의 커다란 폭포를 만난다. 화이트 폭포와 풀 폭포, 그리고 황제 폭포가 바로 그것이다. 폭포의 높이도 높이지만 쏟아져 내리는 수량이 엄청나다. 우리가 걷고 있는 산길이 ‘천개 폭포의 계곡(Valley of a Thousand Falls)’이니 폭포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 계곡 양쪽으로 이름도 없는 실폭포들이 쉬지 않고 물을 쏟아 붓는다. 

황제 폭포를 올라서면 산길이 유순해진다. 힘든 구간이 끝난 것이다. 조용히 굽이치는 물길을 따라 초원이 펼쳐진다. 길은 편해진 대신 숲길을 벗어난 탓에 세찬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는다. 해발 1,641m에서 맞는 비바람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지만 롭슨의 진면목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다. 버그 호수가 시작되는 지점에 미스트 빙하가 먼저 나타나고 그 뒤로 버그 빙하가 호수면에 꼬리를 맞대고 있다. 빙하가 얼음 덩어리 채로 떨어져 호수에 떠다니기도 한다. 버그 호수와 두 개 빙하를 보는 것이 전부이다. 사진도 성가시고 몸이 떨려와 오래 있기도 어렵다. 아이들을 먼저 되돌려보낸 화이트혼 야영장으로 어서 내려가 뜨거운 라면 국물로 몸을 녹여야 할 판이다.

캐나다 로키의 절경 2 여섯 빙하 평원(Plain of six Glaciers)과 센티넬 패스(Sentinel Pass)

빙하가 만든 환상적인 컬러가 묘미
캐나다 로키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루이스 호수를 빼놓는 경우는 없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넷째 딸 이름을 딴 호수다. 호수 뒤로는 어머니 이름을 가진 빅토리아 산(Mt. Victoria, 3,464m)이 버티고 있고, 거기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를 이루고 있다. 빙하가 녹아 청회색의 독특한 색깔이 인상적인 루이스 호수. 세계 10대 절경 중 하나라는 명성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숫가에서 사진 몇 장 찍곤 바삐 발걸음을 돌린다.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결코 놓칠 수 없는 풍경이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말이다. 

루이스 호수 부근에서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곳이 ‘여섯 빙하 평원’이다. 산행은 호수를 왼쪽에 끼고 호숫가를 따라 오솔길을 걷는다. 이 길은 평탄하고 경치도 아름다워 휘파람을 불며 갈 수도 있다. 머리에 빙하를 뒤집어쓴 빅토리아의 장엄한 모습이 점점 가까워지면 왼쪽으로는 애버딘, 르프로이 등 울퉁불퉁한 험봉이 스카이라인을 이룬다. 가끔 시선을 뒤로 돌리면 루이스 호수의 그 특유한 색깔이 빛나고 그 옆에 자리잡은 호텔은 아름다운 풍경화 속의 절경을 이룬다.  

우리는 평원 끝자락에 있는 찻집을 지나 애보트 패스가 보이는 전망대까지 올랐다가 되돌아 오는 길에 다시 아그네스 호수로 올랐다. 전체 거리는 18km에 등반고도는 765m 정도가 된다. 직접 걸어 오르는 것이 자신 없는 사람들은 말을 타고 오를 수도 있다. 루이스 호수가 끝나는 지점에서 찻집까지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길도 넓고 경사도 그리 심하지 않다. 물 한 병 달랑 들고 운동화 차림으로 올라오는 사람도 볼 수 있다. 그리 힘들지 않은 산행이지만 대성이가 지루한지 가끔 아빠에게 투정을 부린다. 

여섯 개 빙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찻집을 지나서 1.6km를 더 올라가면 빅토리아와 르프로이(Mt. Lefroy, 3,423m) 사이에 있는 애보트 패스(Abbot Pass)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이 패스를 지나면 요호(Yoho) 국립공원에 속하는 오하라 호수로 연결이 된다. 하지만 패스를 오르려면 빙하를 건너야 할 만큼의 충분한 장비와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애보트 패스에는 애보트 산장이 있다. 애보트란 이름은 1896년 르프로이를 등반하다 사망한 필립 애보트(Philip Abbot)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사고는 북미 등반사상 첫 희생으로 기록된다.

우리가 전망대에 올랐을 때에는 비바람이 몰아쳐 금방 한기를 느껴야 했다. 찻집으로 되돌아 나오니 언제 그랬냐는 듯 비가 멈춘다. 따뜻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인다. 루이스 호수로 내려서다가 왼쪽 하이라인 트레일로 들어선다. 정자가 세워진 빅비하이브(Big Beehive, 2,270m)에 오르면 루이스 호수를 하늘에서 볼 수 있다. 눈을 들면 멀리 보밸리를 건너 물결치는 연봉들을 보는 것도 색다른 맛이다. 여기서 급경사 내리막을 지그재그로 내려서면 아그네스 호수. 캐나다 초대 수상을 지낸 맥도날드의 부인 아그네스의 이름을 딴 호수이다. 여기도 호수 동쪽에 찻집이 하나 있지만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을 닫아 버렸다. 이제는 편한 길을 따라 루이스 호수로 내려서기만 하면 된다. 루이스 호수 주변의 또 다른 산행지, 센티널 패스를 오르려면 모레인 호수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모레인 호수는 루이스 호수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텐피크 계곡(Ten Peaks Valley) 안에 있어서 루이스 호수 못지 않은 뛰어난 경치를 선사한다. 산행은 왕복 11.6km 거리에 등반고도가 725m. 보통은 5시간 정도 소요가 된다. 우리에겐 초등생 일행이 있어 산행 시간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아이가 힘들어 하면 수시로 쉬어 가고 투정을 부리면 한대장이 등에 업고 가곤 했다. 더 이상 못가겠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처음부터 지그재그의 오르막 길이 지루하게 펼쳐진다. 가끔 나무 사이로 비치는 모레인 호수의 비취색이 약간 위안이 된다. 루이스와는 또 다른 색깔이다. 히말라야를 제 집 드나들듯 했던 한대장도 로키의 울창한 숲과 셀 수 없이 많은 호수에 대해서는 부러운 기색이 역력한 듯하다. 2.4km 지점에서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쪽으로 가야 라치 계곡(Larch Valley)을 경유해 센티널 패스에 닿는다. 라치 계곡은 9월이면 온통 오렌지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데, 이 또한 로키가 자랑하는 장관 중 하나이다. 흔히 라치하면 활엽수를 생각하는데 이상하게도 솔잎 같은 침엽수 형태를 지녔다. 바늘 같은 침엽들이 노랗게 변해 벌써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라치 계곡을 지나면 고산 특유의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여러가지 색깔의 야생화가 만발한 평원에 도착하면 이제 센티널 패스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왼쪽으로는 열 개의 봉우리들이 우리를 호위하듯 따라오고, 오른쪽은 템플 산(Mt. Temple, 3,543m) 하나가 공간을 꽉 채워넣고 있다. 이 템플 산은 캐나다를 동서로 횡단하는 1번 하이웨이에서도 확연히 눈에 띄는 산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방향이 하이웨이에서 보는 방향과 정반대라서 느낌이 다를 뿐이다. 저절로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풍경에 취해 걷는다.

센티널 패스 아래에 있는 미네스티마 호수 가장자리에 도착, 잠시 휴식을 취한다. 급경사를 오르는 지그재그 길이 훤히 드러난다. 한 걸음에 닿을 것 같아 보이지만 여기서 다시 30분 발품을 팔아야 패스에 도착할 수 있다. 아침부터 흐렸던 날씨가 구름이 걷히며 푸른 하늘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람을 무서워 않는 다람쥐의 환영을 받으며 발걸음도 가볍게 센티널 패스에 닿을 수 있었다. 센티널 패스는 템플 산과 피나클 산의 안부에 있다. 해발 고도는 2,611m. 패스에 오르면 우리 앞으로 파라다이스 계곡이 펼쳐진다. 오랜 시간 풍화작용을 겪은 듯 송곳처럼 뾰족한 바위들이 눈에 띈다. 유난히 눈에 띄는 촛대바위에는 몇 명의 클라이머들이 개미처럼 달라 붙어있다.


캐나다 로키의 절경 3 바가부(Bugaboo)

하늘을 찌를듯한 첨봉 장관 연출
우리에겐 ‘부가부’란 지명으로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현지에선 우리만 빼놓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발음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산장 관리인에게 그 정확한 발음과 의미를 물어 보았다. ‘바가부’가 정확한 표현이고 콘래드 케인(Conrad Kain)이란 사람이 바가부를 오르면서 힘들고 어렵다는 의미에서 바가부라고 외친 것이 유래가 되었다 한다. 영어 사전에 ‘도깨비’란 뜻이 있는 것을 보면 마음대로 안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 아닌가 싶다. 바가부는 로키 산맥과는 컬럼비아 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BC주 남동쪽의 퍼셀 산맥(Purcell Mountains)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으며, 주립공원으로는 1971년에 지정되었다. 로키 산맥의 산들이 주로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바가부는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바가부(3,176m), 스노패치(3,063m), 하우저(3,398m), 피젼(3,124m) 등 해발 3,000m가 넘는 화강암 첨봉들이 즐비한 까닭에 1880년대부터 전세계에서 클라이머들이 몰려 들었다. 

스노패치 아래에 있는 산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가까운 첨봉 하나를 걸어 오를 생각이다. 산장에서의 하룻밤은 미리 예약을 마쳤다. 주차장에서 산장까지는 5km 거리에 등반고도 720m. 등짐의 무게에 따라 2시간에서 3시간이 소요된다. 2,230m의 높이에 있는 산장은 1972년 캐나다산악회(ACC)에서 지었고 ACC에서 파견한 관리인이 한명 상주한다. 1층은 주방과 식당이고 2층과 3층은 숙소로 쓰인다. 수목한계선 지역의 식생들이 클라이머들의 무분별한 발길에 손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장을 지었다고 한다. 계곡의 물로 발전을 해서 조명, 취사에 필요한 전기를 사용한다.

산장으로 오르는 산길에는 눈이 모두 녹아 어려움이 없다. 졸졸 흐르는 개울을 따라 평탄한 숲길을 걷다가 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진다. 숲길을 벗어나면 하늘이 열리며 시야가 탁 트인다. 그러면 하얀 빙하와 화강암 첨봉들이 나타나 우리를 달래준다. 그 중에서 바가부 빙하에 둘러싸인 하운드스투스(Hound’s Tooth)가 단연 압권이다. ‘사냥개의 이빨’이란 별난 이름을 가진 만큼 그 생김새도 독특하게 생겼다. 로프가 매어진 벼랑길을 걷기도 하고 때론 사다리를 타고 오르기도 한다. 발걸음만 조심하면 그리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며 걷다가 어려운 구간에선 손을 붙잡고 걸을 뿐이다. 아이들은 벼랑길도 태연하게 잘 걷는데 오히려 어른들이 더 겁을 내는 것 같다. 

산장은 클라이머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관리인이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산장에서의 규칙을 설명한다. 전기나 가스도 쓸 수 있고 그릇이나 수저도 그냥 사용할 수 있다. 단, 쓰레기는 음식물 쓰레기까지 직접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 최소한의 룰만 지키면 편히 지낼 만하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간단한 저녁을 지어 먹었다. 옆 테이블에서는 성공적으로 등반을 마치고 내일 하산한다는 젊은이들이 맥주 파티를 벌여 조금 소란하기도 했다. 바가부에서의 하룻밤에 가슴이 설레는 것일까.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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