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앞두고 열린 산골마을 학예회
방학 앞두고 열린 산골마을 학예회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6.27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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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일기

08년의 첫 달이구나’, 하고 달력을 넘긴 게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덧 한 해가 가고 새해를 맞게 되었습니다.

▲ 총 43명의 단출한 벽탄초등학교 전교생이 학예회 마지막 프로그램인 동요 부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빠르다고 느끼는 건 도시나, 산골이나 다르지 않아 바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한해의 마지막 달. 월동준비까지 마친 상태라 연말에 바쁜 도시와는 달리 이 산골에선 느긋하고 여유롭게 한 해의 마지막 달을 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마을에 하나 있는 벽탄초등학교 학예회가 있는 날. 학교 선생님들께서 이미 지난주부터 마을 분들께 초대장을 보내주신 터라 학부형이 아닌 저도 초대장 하나 받아 들고 무료한 산골의 겨울에 접하게 된 벽탄초등학교 학예회 날을 손꼽으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이영자 교장선생님께서 일 년 동안 지도하신 문해교실 어르신들의 동요 발표. 가사가 적힌 종이를 정말 열심히 들여다보시며 부르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맨 가운데 계신 할머니는 올해 86세인 정계순 할머니입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벽탄초등학교 학예회는 귀여운 1학년 어린이들의 첫인사로 막이 올랐는데, 어찌나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첫 인사를 하던지요. 객석에서 구경하시던 모든 분들의 즐거운 웃음과 함께 4년만에 열린다는 벽탄초등학교 학예회가 시작되었습니다.

5학년 어린이들의 흥겨운 사물놀이, 유치원과 1학년 어린이들의 ‘샤방샤방’이라는 트로트 곡에 맞춰 하는 율동, 5학년 어린이들의 수화 손짓과 몸짓, 4학년 어린이들의 흥겨운 립싱크 허리케인 푸름, 5학년 6학년 어린이들의 핸드벨 연주 루돌프 사슴코, 3학년 어린이들의 요즈음 노래 텔미에 맞춰 추는 율동, 그리고 1학년 어린이의 동화 구연 줄줄이 꿴 호랑이까지. 정말 재미나고 흥미진진한 프로그램들이 이어졌습니다.

“학년말 시험이 모두 끝나고 공부에 지친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기운을 불어 넣고 싶어서 4년만에 벽탄초등학교 학예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 학예회를 준비하며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다”는 이야기에 즐거우셨다는 이영자 교장선생님. 아이들이 발표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프로그램 중간에 이영자 교장선생님의 정 깊은 격려의 말씀을 들으며 그 어느 도시 학교보다 나은 교육 환경 속에 이 산골의 어린이들이 자라고 있다는 생각을 저 만 한 것은 아닐 겁니다.

벽탄초등학교 어린이들이 3주 동안 준비한 학예회는 그 뒤로도 이어져서 유치원생과 1학년 예쁘게 준비한 무용 꼭두각시 춤, 4~6학년 어린이들이 합심해서 준비한 역사는 흐른다 패션쇼, 그리고 어머니들이 준비한 노래와 댄스가 많은 박수 속에 이어지고, 3학년 어린이들이 준비한 합주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학예회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벽탄초등학교 문해교실 어르신들이 준비하신 동요 발표가 이어졌는데, 한글을 모르시던 할머니들께서 일 년 동안 이영자 교장선생님께 한글을 배우고 익히셔서 가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직접 읽으시며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무대 위에서 가사 적힌 종이를 뚫어져라 보시며 노래를 부르시는 그 할머니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분들이 평생 꿈을 이루시는 순간이라는 생각마저 들며 할머니들의 노래를 지켜보는 코끝이 찡해오더군요.

할머니들의 노래가 끝나고 다시 6학년 어린이들의 코믹댄스, 3학년, 4학년 어린이들의 정선아리랑 합창, 1학년 어린이들의 귀여운 캐롤 율동, 3~6학년 어린이들의 영어 연극, 그리고 전교생이 부르는 동요 메들리를 끝으로 벽탄초등학교 학예회는 끝이 났습니다.

▲ 2009년의 주인공이 되겠다는 4~6학년 어린이들.
“아이들이 총연습 때까지만 해도 많이 틀려서 많이 걱정을 했는데, 우리 아이들이 무대체질인가 봐요. 너무 너무 잘 했어요.”

발표회가 끝나고 만난 교무주임 황영숙 선생님의 아이들 자랑을 들으니 선생님들의 그 동안의 노고가 느껴져 수고하셨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오더군요.

한 해가 저물어 가는 길목에서 보게 된 훈훈한 산골학교의 학예 발표회, 43명의 천사 같은 벽탄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도 서툰 몸짓으로 춤을 추시던 어머니 여러분께도, 더듬더듬 노래를 부르시던 문해교실 할머니들께도, 그리고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이끌어 주실 선생님들에게도 더 행복하고 밝은 새해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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