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고
봄날은 가고
  •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9.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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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가고

지난 겨울이 워낙 추웠던 탓에 겨우내 ‘봄이 오긴 오려나?’ 싶었는데,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 낮이면 제법 덥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지만 봄과의 짧은 만남이 못내 아쉽다.

▲ 2001년 9월 발매된 영화 <봄날은 간다> OST.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생각나는 노래가 있다. ‘봄날은 간다’이다. 같은 제목의 두 곡의 노래는 세대를 아우르며 명곡으로 손꼽히는 봄노래 수작이다.

젊은 시절 노래 좀 들었던 풍류를 아는 중년이라면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를 떠올릴 것이다. 1953년 발표된 이 노래는 시대를 건너오며 나훈아, 하춘화, 장사익, 심수봉, 조용필, 김도향, 최백호, 한영애 등 당시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리메이크 했다.

‘봄은 머물지 않고 가버리는 것이지만 / 내 마음속의 그윽한 향기만 남기고 / 밤에는 푸른 별들이 속삭여주고……’ 봄꽃처럼 간드러지는 내레이션이 노래의 첫 단추를 끼운다.

이 노래는 현역 시인 100명을 대상으로 한 ‘시인들이 좋아하는 노랫말 설문조사'에서 1위를 했다. 한번 불러보면 한 편의 시 같은 노랫말이 뇌리에 남아 잔잔히 입안을 맴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001년 9월 이영애, 유지태가 주연을 맡은 영화 <봄날은 간다>가 개봉했다. 영화 내용은 반세기 전 발표된 백설희의 노래와 무관하지만 장면 곳곳에서 묘사하는 이미지와 극중 대사가 50년을 건너온 듯하다. 유행어가 되기도 한 극 중 유지태의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한마디가 노래의 정서를 알뜰히 담고 있다.

영화 OST인 동명 곡 ‘봄날은 간다’도 젊은이들의 가슴에 그 옛날 백설희의 노래와 같은 감성을 품게 했다.

아련한 추억에 빠져들게 하는 이 노래는 일본이 원작이다. 1975년 일본가수 마츠토야 유미가 발표해 당시 60만장을 팔아치운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あの日にかえりたい)’라는 노래다.
 
영화의 음악감독을 맡은 조성우씨가 그룹사운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를 OST의 적격자로 지목했다. 김윤아는 마츠토야의 원곡을 듣고 그 자리에서 노래 가사를 써내려갔다고 한다.

순식간에 완성된 가사라지만 이 또한 한 편의 시처럼 구구절절 멜로디와 어울려 봄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으로 가슴 한켠을 가득 채운다.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 / 아직까지도 마음이 저려 오는 건 / 그건 아마 사랑도 피고 지는 꽃처럼 / 아름다워서 슬프기 때문일 거야, 아마도’

감상에 젖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의 문턱에서 눈을 감고 들으면 잔잔히 떠나는 봄의 여운에 눈물이라도 흐를 것 같은 노래. 봄과 아쉬운 이별을 나눠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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