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에 불꽃의 신이 살고 있다.
우리 안에 불꽃의 신이 살고 있다.
  • 글·사진 김선미 기자
  • 승인 2011.09.3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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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오 산세이 <더 바랄 게 없는 삶>

▲ 야마오 산세이 지음/ 최성현 옮김/ 달팽이 펴냄(2003)/ 9000원
녹음의 계절이다. 연둣빛 새순이 점점 짙어지면서 초록의 그늘로 녹아드는 녹음(綠陰)부터 짝짓기로 분주해진 새들의 노래를 메아리로 되돌려주는 숲의 녹음(錄音)까지. 그런데 올 5월에는 흉흉한 ‘녹음’이 보태졌다.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가 녹아내리기 시작했다는 멜트다운(melt down)이 그것이다.

하지만 걱정하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는데도 의외로 세상은 애써 태연한 듯 보였다. 아니 눈앞에 닥친 재앙보다 너무나 초연해 보이는 정부의 무신경한 태도가 더 무시무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의 불안은 급감한 일본 방문 관광객 수나 일본산 물품 구매를 끊는 식으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급기야 규슈 지방 7개현의 지사들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사고 원전에서 멀리 있는 규슈 지역은 안전하다는 거리 홍보까지 나서게 되었다.

‘규슈를 찾는 전체 관광객의 60%를 차지하는 한국인들의 방문이 대지진 이후 83%나 줄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들의 설명대로 후쿠시마 원전에서 1000km 이상 떨어진 규슈 지방이 제발 안전하면 좋겠다.

아니 규슈보다도 원전 사고지역에 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삶도 부디 무탈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야마오 산세이의 책을 다시 꺼냈다. 모든 불안과 걱정을 떨쳐버리고 그의 섬 야쿠시마로 다시 가는 날을 꿈꾸고 싶었다. 그를 야쿠시마로 불렀던 죠몬 삼나무가 드리운 거대한 초록의 그늘 아래 깃들어 평화를 누리게 될 날을 고대하면서.

‘왜 너는/ 도쿄를 버리고 이런 섬에 왔느냐고/ 섬 사람들이 수도 없이 물었다/ 여기에는 바다도 있고 산도 있고/ 무엇보다도 수령이 7천2백년이나 된다는 죠몬 삼나무가/ 이 섬의 산 속에 절로 나서 자라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지만/ 그것은 정말 그랬다/ 죠몬 삼나무의 영혼이/ 이 약하고 가난하고 자아와 욕망만이 비대해진 나를/ 이 섬에 와서 다시 시작해 보라고 불러 주었던 것이다.’-<더 바랄 게 없는 삶> 중에서.

야쿠시마는 규슈의 남단 가고시마현에서도 뱃길로 반나절이 걸리는 섬이다. 야마오 산세이를 읽고 나는 두 번이나 그곳에 다녀오는 행운을 얻었다.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경비행기가 일상적으로 운행하기 전, 오로지 뱃길로만 섬을 드나들던 때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의 배경이기도 한 미야노우라다케의 원시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 7천 살이 넘은 삼나무 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동안, 만화영화 속에 등장하는 신령한 사슴신 시시가미를 닮은 사슴도 만났다. 그때 야마오 산세이처럼, 석기시대부터 그 섬에 뿌리를 내린 삼나무의 영혼이 나를 그 자리에 불러주었다고 믿었다.

인간이 만든 길조차 끊어진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갈수록 우리 몸속 깊이 박힌 야성의 유전자가 깨어난다. 그러면 나와 자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새삼 모두가 하나의 동족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몰아의 순간을 만나게 된다. 더 이상 오지를 찾기 어려워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야쿠시마는 일상으로부터 충분히 멀리 있는 섬이었다.

야마오 산세이는 1975년까지 도쿄에서, 요즈음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일반화된 유기농 공동체운동을 하다가 일본 열도 남쪽 자그마한 섬으로 일찍이 귀농한 사람이다.

농부이자 시인이고 철학자였던 그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연결된 존재임을 믿고, 그 믿음대로 온 우주생명과 조화롭게 살다 떠났다. 야마오 산세이의 믿음을 우리와 우주는 “함께 하나로 녹아 있다(We melt together)”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바다가 푸르다면 물론 하늘도 푸르다. 하늘이 푸르면 바다는 물론 그보다 더 푸르다. 주위의 바위들은 6천5백만 년의 현재를 말없는 가운데 살고 있고 우리는 그냥 거기에 녹아 있다.’

이렇게 자연 속으로 녹아내리는 것은 얼마나 황홀한가. 그는 말년에 수술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암 진단을 받았는데, 해거름녘이면 아내와 단 둘이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은 바닷가 바위 동굴 속 신사를 찾아 기도를 한 뒤 밧줄이 드리워진 절벽 끄트머리까지 나아가 바다를 마주한 순간이었다. “We melt together.”라는 캘리포니아에서 가수로 활동하는 친구가 보내 준 노래를 떠올리며 공감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멜트’라는 단어를 접하면 후쿠시마에서 녹아내리는 원자로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자연 속에 녹아들고 싶어 했던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 만에 이렇듯 무시무시한 재앙의 상징으로 떠올리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 땅 위에서 핵병기와 원자력 발전소가 사라지기를, 모든 하천의 물이 다시 마실 수 있는 물로 되살아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는 우리가 믿고 의지하고 섬겨야 할 불은 핵전쟁과 동일한 위험을 가진 원자력의 불이 아니라 태초의 인간들이 섬기던 불의 신이라고 말한다. ‘도쿄 근교에 있는 어느 산속에서 7년, 그리고… 야쿠 섬에서 산 21년, 합쳐서 30년 가까이… 이틀에 한번은 고에몽 목욕탕의 물을 데우기 위해 불을 피우는 일을 반복’ 하면서 불꽃 속의 신을 만났던 그다.

‘오래도록 어둠을 등지고 앉아서, 또 연기에 휩싸여, 때로는 그 연기에 눈물을 흘려 가며 불꽃으로 나타나는 신을 바라보는 것이 나는 좋다. 불꽃 안에는 그곳만 특별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중심 부분이 있다. 거기가 불꽃의 작은 궁전으로 불의 신은 거기에 살고 계신다. 그와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안에도 같은 신이 틀림없이 살고 계신 것을 불을 보며 경험한다.’

우리 안에도 불꽃과 같은 신이 살고 있다! 그이처럼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모닥불 앞에 서면 천연의 예배당에 깃들어 있는 듯한 기분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눈부신 조명과 술자리로 왁자한 캠프장이 아니라 짙은 어둠 속에서 장작더미 위로 솟구치는 불꽃 타오르는 소리만 들려오는 고요한 곳이라야 가능하겠지만. ‘더욱이 그 불은 마침내 소비돼 버리는 운명을 가진 석유나 석탄의 불도 아니고 또한 수만 년 이상 계속해서 독을 내뿜는다는 방사능 폐기물을 만들어내는 원자력 불도 아니다.’

후쿠시마의 바다 속으로, 더 깊은 지층 밑으로 멜트다운 된 방사능 물질이 녹아들어가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변함없이 눈부신 5월의 숲도 6월의 짙은 녹음 속으로 녹아들어갈 것이다.

오는 6월 11일, 일본의 원전 재해가 발생한 지 3개월째 되는 날, 일본의 시민들은 ‘탈원전 100만인 집회’를 연다고 한다. 우리도 우리 안에 깃든 불꽃의 신을 되살리기 위해 그들과 함께 녹아 한목소리로 외쳐야 하지 않을까.

분명한 사실은 결코 지진해일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전은 존재 자체로 재앙이다. 오히려 더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그 불을 끄려고 바다가 온몸으로 덮쳐온 것인지도 모른다.

원자력으로 밝힌 재앙의 불을 끄고 싶다면, 당장 집안의 플러그를 하나라도 더 뽑아야한다. 자연과 깊이 만나기 위해 캠프장을 찾는 사람들은 그곳에서만이라도 전기선을 끊는 일부터 시작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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