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 소독액을 살포하는 분무대.<사진제공:정선군청> |
연일 뉴스에서 한파 기록이 갱신된다는 보도가 있는 올 겨울. 이 산골에도 매서운 추위가 예외 없어 도시보다 더 강하게 온 산하를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날이 추우니 꼼짝도 안 하는 게 산골의 미덕일까요? 하지만 춥다고 게으름 피우면 어김없이 건강에 적신호가 오니 추워도 매일 규칙적인 산보와 소소한 집안일을 거를 수가 없습니다.
▲ 수시로 얼어붙은 소독액을 치우는 것도 방역을 하는 분들의 일.<사진제공:정선군청> |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던가요? 그 먼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된 지 50일 만에 정선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평창에 구제역이 발생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하자 농한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벌어지던 마을단위 놀이들도 자취를 감추고 동네 어르신들도 집 밖 왕래를 꺼리기 시작했지요.
‘축산 농가는 오라지도 말고 찾아 가지도 맙시다’ 혹은 ‘구제역 없는 청정 정선 우리가 지킵시다’라는 플래카드도 하나 둘 들어섰습니다.
▲ 차량 출입금지라는 붉은 색 스프레이가 다소 도전적으로 보이는 동네 축산 농가. |
구제역이 평창까지 오자 일주일에 두 번씩 왕래하던 부식 차들도 마을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고요. 바로 옆 동네 비룡동에서는 아예 외부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러다보니 손님 왕래가 잦은 저희 집도 구제역이 발생되고나서부터는 손님을 거절하고 정말 적적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선 관내 공무원들은 꼭 필요한 인원만 빼놓고는 남녀 모두 구제역 방역현장에 투입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이 추운 겨울에 분무기로 약을 뿌리는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그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제가 겪는 이 불편함쯤이야 불편한 것도 아닌 것이지요.
하루 5톤 이상의 소독액이 뿌려지니 분무대 주변이 얼어붙어 차량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늘 얼음을 깨고 치우고 하는 일이 더해집니다. 분무대의 노즐이 추위에 수시로 막혀 막히지 않게 데우는 일 등 방역을 하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답니다.
▲ 근심에 쌓인 이 산골 |
후진국 병이라는 구제역이 이렇게 오래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겨울 한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셔액을 닦아내는 분무대를 전속력으로 통과해 버리는 이기적인 우리들의 행동도 한 몫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200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살처분하게 된 것이 우리 모두의 탓이라 느껴지는 건 무리한 생각일까요?
참으로 춥기만 한 이 겨울, 어서 이 황망한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 햇살이 구제역이라는 몹쓸 바이러스도 다 물리쳐 주고 다시 소들이 코뚜레 꿰고 도로로 나와 봄 햇살 아래 밭가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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