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구제역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구제역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4.29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산골일기

▲ 소독액을 살포하는 분무대.<사진제공:정선군청>

연일 뉴스에서 한파 기록이 갱신된다는 보도가 있는 올 겨울. 이 산골에도 매서운 추위가 예외 없어 도시보다 더 강하게 온 산하를 얼어붙게 하고 있습니다. 날이 추우니 꼼짝도 안 하는 게 산골의 미덕일까요? 하지만 춥다고 게으름 피우면 어김없이 건강에 적신호가 오니 추워도 매일 규칙적인 산보와 소소한 집안일을 거를 수가 없습니다.

▲ 수시로 얼어붙은 소독액을 치우는 것도 방역을 하는 분들의 일.<사진제공:정선군청>
날이 추워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장군과 함께 온 나라에 구제역이 돌고 있다는 뉴스가 한파와 함께 연일 이어졌습니다. 멀리 안동에서 시작되었다는 소식에 이 산골, 청정지역이라고 손꼽히는 이 산골은 정말 구제역 파동과는 무관하리라 모두들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라던가요? 그 먼 안동에서 구제역이 발생된 지 50일 만에 정선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인 평창에 구제역이 발생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구제역이 발생하자 농한기를 맞아 여기저기서 벌어지던 마을단위 놀이들도 자취를 감추고 동네 어르신들도 집 밖 왕래를 꺼리기 시작했지요.

‘축산 농가는 오라지도 말고 찾아 가지도 맙시다’ 혹은 ‘구제역 없는 청정 정선 우리가 지킵시다’라는 플래카드도 하나 둘 들어섰습니다.

▲ 차량 출입금지라는 붉은 색 스프레이가 다소 도전적으로 보이는 동네 축산 농가.
동네마다 구제역 예방 문구로 인쇄된 플래카드들이 마을 입구에 서너 개씩 붙어 있어 구제역은 정선 아니 우리 마을에는 발도 못 붙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구제역이 평창까지 오자 일주일에 두 번씩 왕래하던 부식 차들도 마을에서 출입을 통제하기 시작했고요. 바로 옆 동네 비룡동에서는 아예 외부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러다보니 손님 왕래가 잦은 저희 집도 구제역이 발생되고나서부터는 손님을 거절하고 정말 적적한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선 관내 공무원들은 꼭 필요한 인원만 빼놓고는 남녀 모두 구제역 방역현장에 투입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한답니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이 추운 겨울에 분무기로 약을 뿌리는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는 그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제가 겪는 이 불편함쯤이야 불편한 것도 아닌 것이지요.

하루 5톤 이상의 소독액이 뿌려지니 분무대 주변이 얼어붙어 차량이 미끄러지지 말라고 늘 얼음을 깨고 치우고 하는 일이 더해집니다. 분무대의 노즐이 추위에 수시로 막혀 막히지 않게 데우는 일 등 방역을 하는 분들이 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답니다.

▲ 근심에 쌓인 이 산골

후진국 병이라는 구제역이 이렇게 오래 기승을 부리는 것은 겨울 한파 때문이기도 하지만 워셔액을 닦아내는 분무대를 전속력으로 통과해 버리는 이기적인 우리들의 행동도 한 몫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200만 마리가 넘는 가축들을 살처분하게 된 것이 우리 모두의 탓이라 느껴지는 건 무리한 생각일까요?

참으로 춥기만 한 이 겨울, 어서 이 황망한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 햇살이 구제역이라는 몹쓸 바이러스도 다 물리쳐 주고 다시 소들이 코뚜레 꿰고 도로로 나와 봄 햇살 아래 밭가는 그 평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