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배고 자는 마을, 사쿠라지마
기적을 배고 자는 마을, 사쿠라지마
  • 고아라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3.12.0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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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폭발음이 들리고 화산재가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는 그곳에 마을이 있다. 용암이 마을을 피해 흐르도록 길을 내고, 뜨거운 온천수가 흐르는 곳엔 족욕탕을 만들었다. 차갑게 식은 용암이 이어진 해변에는 아름다운 산책로가 생겼다. 매일매일 기적을 이뤄내는 마을, 사쿠라지마다.


가고시마의 상징을 넘어 가고시마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사쿠라지마. 오로지 사쿠라지마를 만나기 위해 가고시마 여행을 택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토록 사쿠라지마가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활발히 활동 중인 활화산이기 때문이다. 사쿠라지마는 둘레 55km, 면적 77km2에 달하는 반도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본래 섬이었으나 1914년 온타케御岳 산에 대분화가 일어나면서 흘러나온 용암으로 인해 오스미반도와 이어지게 됐다. 1952년에는 화산이 새로운 방향으로 분출하면서 기존에 없던 분화구가 생기기도 했다. 당시 쇼와 27년이었기 때문에 분화구의 이름은 쇼와 화구라 불리게 됐다.



사쿠라지마는 가고시마 시내와 무척 가까워 찾아가기 쉽다. 바닷가에 자리한 가고시마 페리 터미널에서 유람선을 타고 15분 정도면 사쿠라지마 페리 터미널에 닿는다. 일반 유람선처럼 자동차나 오토바이, 자전거를 갖고 탈 수도 있다. 배에 오르고 나면 난간 쪽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사쿠라지마의 절경을 눈과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다. 가고시마 시내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배에서 보는 풍경은 사뭇 다르다. 건물이나 나무 등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이 온전히 드러난 사쿠라지마는 그야말로 일본 신화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신비로운 자태다. 넘실거리는 바다를 가로지르며 점점 가까워오는 사쿠라지마를 마주하고 있으면 신들의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기분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사쿠라지마는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의 배경지로 익숙하다. 사쿠라지마로 이사를 가게 된 아이의 성장을 담은 이야기인데, 그 모든 과정에 늘 사쿠라지마가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낯선 풍경에 덩그러니 놓이게 된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날리는 화산재와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폭발음까지 모든 게 불만스럽다. 그곳에서 매일 가족이 재회하기를, 동생과 함께 하기를, 기적이 일어나기를 빈다. 기차의 상하행선이 서로 교차하며 스치는 때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후에는 매일 동생과 함께 기도를 한다. 하지만 두 형제의 바람처럼 어른들은 재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기적은 이뤄지지 않은 걸까? 영화를 본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기적은 다른 방향으로 일어났다. 아이는 화산재를 가늠하며 ‘오늘은 화산재가 좀 덜하네’라고 말하며 세상의 흐름에 익숙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나아가 크고 작은 희망을 품으며 씩씩하게 나아간다. 게다가 기도를 위해 동생과 매일 함께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이유로 사쿠라지마를 떠올리면 늘 ‘기적’이라는 단어가 따라왔다. 막연했던 기적은 사쿠라지마에 발을 들이는 순간, 더욱 명확하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사쿠라지마의 마을에 도착하자 ‘펑’하는 소리가 옅게 들려왔다. 관광객들은 깜짝 놀라기도 했으나 주민들은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먼 이국땅에서도 찾아오게 하는 신비로운 활화산의 자태와 움직임이 그들에겐 삶의 일부인 것이다. 흘러내리다 굳은 용암 절벽을 보며 ‘언제 용암이 흘러내릴지 모르는데 어떻게 여기 살 수 있을 까’하는 질문은 어리석다. 그들은 용암이 흐를 수 있는 깊은 구덩이를 길처럼 내고, 이미 흘러내린 용암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경치를 품은 산책로로 만들었다. 기적은 먼 곳에 막연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이뤄내며 살아가느라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그러나 늘 함께 잠들고 함께 일어나는 것. 사쿠라지마의 주민들은 그렇게 기적을 일구고 있었다.
본격적인 사쿠라지마 관광에 나선 후에는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사쿠라지마에서 할 일은 탁 트인 전망대에서 한가로이 활화산을 감상하는 것이 전부일 줄 알았는데 웬걸, 생각보다 즐길 거리와 볼거리가 다양하다. 비지터센터에 들러 사쿠라지마에 대한 정보와 역사를 익힐 수도 있고, 나기사 공원에서 햇볕 아래 한가로이 앉아 족욕을 즐길 수도 있다. 드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 과 뛰어놀고, 각도마다 표정을 달리하는 사쿠라지마를 보기 위해 전망대 도장 깨기에 도전할 수도 있다. 찾아가는 스폿마다 새로 운 재미가 펼쳐지니 지도를 더욱 꼼꼼하게 보게 된다. 뭐든 놓치 고 싶지 않은데 슬슬 발과 다리에 피로가 몰려온다면 사쿠라지마 곳곳을 누비는 ‘사쿠라지마 아일랜드뷰’ 버스를 이용해 보자. 일일 승차권을 끊으면 원하는 곳에서 내리고, 원하는 곳에서 탑승할 수 있다. 명소마다 정류장이 있어 버스를 찾아다니느라 피곤할 필요도 없다. 이용료도 500엔으로 매우 저렴하다.



◆끊임없는 신비로움, 사쿠라지마 필수 코스


01 사쿠라지마 비지터 센터 桜島ビジターセンター
사쿠라지마 페리 터미널에 내리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이다. 무료로 운영하는 박물관으로 터미널 바로 앞에 자리한다. 이곳에서는 사쿠라지마의 분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역사, 메커니즘 등 모든 정보를 전시하고 있다. 활발하게 활동 중인 쇼와 화구의 라이브 영상과 실시간 지진계 데이터 등을 볼 수 있어 실감 나는 관람을 즐길 수 있다. 이곳에서 미리 사쿠라지마에 대한 정보를 얻고 나면 사쿠라지마 여행이 더욱 재밌어진다.
児島県鹿児島市桜島横山町1722-29
09:00~17:00
+81 99-293-2443
무료


02 가라스지마 전망대 烏島展望所
흘러내린 용암이 만들어낸 바위들이 넓게 감싸고 있어 신성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 1914년 대분화 당시 흘러내린 용암에 의해 사쿠라지마 앞바다에 있던 가라스지마가 매몰되었는데, 그 일부를 정비해 만든 전망대다. 뒤편으로는 웅장한 사쿠라지마 산이, 앞으로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긴코완이 펼쳐져 환상적인 전망을 자랑한다.
鹿児島県鹿児島市桜島赤水町3629-12

ⓒ가고시마시


03 아리무라 용암 전망대 有村溶岩展望所
활화산이 분출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가장 실감 넘치게 볼 수 있는 전망대다. 1914년 대분화 당시 흘러내리다 굳은 용암 위에 만들어졌다. 다른 전망대와 달리 독특한 원뿔형의 사쿠라지마를 볼 수 있어 인기가 많다. 가끔 용암이 끓는 소리와 화산 폭발음이 들리기도 한다.
鹿児島県鹿児島市有村町952


04 아카미즈 전망광장 赤水展望広場
‘절규의 동상’으로 유명한 광장. 절규하는 표정의 얼굴과 기타를 동상으로 만들어 세워뒀는데, 그 규모가 꽤 커 멀리서도 눈에 띈다. 2004년 8월 21일에 열린 유명 로커의 콘서트를 기념해 세운 것으로 동상 앞에는 당시의 콘서트 풍경 사진이 전시돼 있다. 콘서트에는 무려 7만 5천 명의 인원이 모여 지금까지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鹿児島県鹿児島市桜島赤水町3629-3

ⓒ가고시마현 관광연맹

05 구로카미 매몰 도리이 黒神埋没鳥居
화산 폭발이 일어나기 전, 사쿠라지마에 있던 구로카미 신사의 도리이다. 1914년 대분화 당시 신사는 완전히 매몰되었지만 높이가 3m에 달하는 도리이는 일부가 남아 있다. 대분화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현재까지 보존돼 있다. 고개를 올려야만 볼 수 있던 도리이의 가로대를 내려다보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도리이 옆에는 대분화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오래된 용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鹿児島県鹿児島市黒神町


06 사쿠라지마 용암 나기사공원 桜島溶岩なぎさ公園
사쿠라지마 화산을 배경으로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진 공원. 이곳의 명물은 총 길이 100m에 달하는 족욕시설이다. 작은 시냇물처럼 흐르는 온천수 양옆에 1인용 벤치를 설치해 편하게 앉아 족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중간중간에는 정자처럼 생긴 지붕을 두어 햇볕이 강할 때도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족욕시설은 지하 1천 m에서 솟아오르는 천연온천을 활용해 여행 중 발의 피로를 풀어주는데 효과적이다. 족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근처에 위치한 ‘사쿠라지마 마그마 온천’을 찾아가 보자.
鹿児島県鹿児島市桜島横山町1722-3 09:00~일몰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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