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인간, 마라톤
달리는 인간, 마라톤
  • 신은정
  • 승인 2023.11.07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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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어디 있는지 궁금할 땐 달리면 된다. 혈액이 빠르게 온몸을 흐르며 심장을 두드린다. 살아있다는 느낌. 마라톤을 하는 이유다.



마라톤의 기본이자 시작인 달리기는 인간의 생존본능에서 출발했다. 인류의 조상들은 원하지 않아도 살아야 했기 때문에 달렸다.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식량을 구하지 못하고, 포식자에게 사냥 당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한 몸짓. 지금의 어떤 스포츠보다 긴박했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아도 되고 사냥도 필요 없어진 현재, 달리기는 필수가 아닌 건강과 행복을 위한 수단이 됐다. 더 나아가 마라톤이 등장했고, 인간의 집념과 목표를 성취하는 스포츠가 됐다. 인체의 한계를 시험하며 목표를 향해 가는 인간의 또 다른 본능. 굳이 달리지 않아도 되지만, 인간은 달린다. ‘인간 기관차’라고 불리던 마라토너 에밀 자토펙 또한 말했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새는 날고 인간은 달린다”고.
마라톤은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기원전 490년 아테네군과 페르시아군의 대전투에서 아테네군이 승리하자, 승전보를 전하기 위해 ‘페이디피데스Pheidippides’라는 병사가 아테네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달렸던 거리가 약 40km. 도착하자마자 페이디피 데스는 “우리가 정복했다”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쓰러져 죽었다. 이후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 올림픽에서 마라톤을 스포츠 종목으로 만들어 선보였다.
기원전의 전설이 무색하게 우리나라에 마라톤이 들어온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약 100년 전인 1920년, 조선체육회가 개최한 ‘경성일주 마라톤’이 첫 시작이며 거리는 하프코스 정도인 25km였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대회가 열리며 자리 잡기 시작했으나, 어두운 일제강점기가 찾아온다. 때문에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에서 성취한 손기정 선수의 자랑스러운 우승은 일본의 이름으로 기록됐다.
그렇다면 왜 마라톤 거리는 42.195km가 됐을까? 42.195km를 만든 것은 1908년에 열린 제4회 런던 올림픽에서의 일이다. 처음엔 주경기장에서 출발해 총 42km이었으나, 영국 황실 사람들이 마라톤 출발 장면을 보고 싶다고 출발 지점을 윈저궁 황실 창 아래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때문에 195m라는 거리가 더 붙게 된 것. 이 거리가 공식적으로 채택된 것은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부터다. 당시 영국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마라톤은 달리기보다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다. 보통 러닝으로 시작해 장기전인 마라톤에 도전하는 수순인데, 단거리에서 차츰 실력을 늘려 장거리로 도전하는 것이 옳다. 특출난 신체적 능력이 있지 않고서야 단기간에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는 것은 급하게 살을 빼는 것과 같다. 운동생리학자 마이클 조이너는 마라톤 경기력을 좌우하 는 3대 요소로 운동 중 섭취하는 산소의 최댓값으로 지구력을 좌우하는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 젖산이 근육과 혈액에 축적되는 시기를 뜻하는 말로 언제 피로가 나타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젖산 역치Lactate Threshold, 장시간 운동에 필요한 지근의 중요성을 말하며 효율적으로 달리는 방법을 의미하는 효율적 달리기Running Economy를 꼽았다. 이 모든 능력은 끈기와 인내에 기반하는 조건이다. 지구력을 늘리고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일에는 시간이 걸린다. 물론 신체적 능력 말고도 정신력 또한 갖춰져야 한다. 그래서 마라톤은 강한 정신력을 다지는 스포츠로 유명하다.
현재 마라톤은 중장년층은 물론 청년층에게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때문인지 서울 시내에서 개최되는 마라톤 대회도 곧잘 보인다. 5km, 10km로 짧은 코스도 있어 누구든 부담 없이 참여하며 친구, 가족, 연인과 함께 한다. 자동차로 가득했던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의 땀방울과 발자국이 새겨지는 날, 같은 곳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면 뭉클한 마음까지 든다.
마라톤은 인생과 닮았다. 결승선에 닿을 때까지 지쳐 쓰러지지 않게 페이스 조절이 필요하며, 긴 거리를 달리기 위해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고, 자신과의 싸움이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함께 달리는 사람도 많다는 공동체적인 성질까지. 몇 십 년의 인생이 42.195km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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