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이 머무는 섬, 미야지마
신들이 머무는 섬, 미야지마
  • 김경선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3.10.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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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머무는 섬은 평화로웠다. 잔잔한 바다 위 붉은 오도리이가 평안을 찾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곳. 미야지마의 가을은 평온 그 자체다.


히로시마 여행의 백미는 미야지마宮島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토의 아마노하시다테天橋立와 미야기의 마쓰시마松島와 함께 일본의 3대 자연절경으로 불리는 미야지마는 섬 전체가 일본 국가 지정 특별 명승지이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쓰쿠시마 신사로 인해 언제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섬은 쉽사리 풍경을 선물하지 않는다. 미야지마구치 여객 터미널에서 페리를 타야만 숨겨진 비경을 보여준다. 이른 아침부터 여객 터미널은 만원이다. 다행히 15분마다 여객선을 운행해 섬으로 밀려드는 관광객들을 빠르게 실어 나른다. 육지를 떠난 지 10분, 미야지마를 상징하는 붉은 오도리이가 만조의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일본에서 수많은 도리이를 만났지만 바다에 잠겨 있는 도리이는 또 다른 신선함이다. 물이 빠지면 뭍에서 오도리이까지 땅이 드러난다는데, 지금은 만조로 인해 신비로움을 더했다.


섬 북서쪽 선착장에 페리가 닿았다. 이쓰쿠시마 신사로 가기 위해서는 기념품 숍이 몰려 있는 오모테산도 상점가를 지나야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골목이 한산하다. 상점가 대신 해안을 따랐다. 곳곳에 제집 마냥 편안하게 쉬고 있는 사슴이 여럿. 미야지마에는 500여 마리의 사슴이 살고 있다. 옛 문헌에도 등장할 만큼 섬의 터줏대감으로 오랜 세월 신의 섬을 지켜온 사슴들은 ‘신의 사자’라고 불리며 신성한 존재로 여겨진다. 관광객들을 많이 마주쳐서인지 사람을 봐도 놀라지 않고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길은 어느새 오도리이 앞에 다다랐다. 신사 앞, 오도리이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뷰포인트에서 관광객들의 포토타임이 한창이다. 물이 빠질 때면 오도리이까지 걸어가 직접 만져 볼 수도 있다지만 해안으로 한껏 밀려온 밀물 탓에 뷰파인더 속 오도리이에 만족해야했다. 푸른 바다 위 붉은 도리이와 그 뒤로 보이는 육지의 풍경이 어우러져 어디를 찍어도 화보다. 미야지마의 오도리이는 1875년에 건립돼 200년 가까이 신들의 통로로 바다를 지키고 서있다. 수령 500~600년 된 거대한 삼나무로 제작한 도리이는 높이 약 16m, 폭 약 10m, 무게 60t에 달하는 크기로 가까이에서 마주하면 그 웅장함에 압도된다.



오도리이를 지나면 바다 위 신사 이쓰쿠시마다. 신사 입구까지 해수가 밀려들어 입장 불가. 30~40분 뒤에나 입장이 가능하다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왔다. 밀물을 피해 고도를 높였다. 이쓰쿠시마 신사 옆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신사 센죠카쿠를 만난다. 호코쿠 신사의 본전으로 한국의 사찰이나 궁궐과 달리 단청 없는 오래된 목조 건물은 화려하진 않지만 짙은 고동빛으로 예스러움이 넘쳐흐른다. 158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이후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인 채 남아있지만 다다미 857장 정도의 크기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내부로 들어서면 너른 마루와 회랑이 정자처럼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니 여행자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준다.
센죠카쿠 옆에는 1407년에 건립한 주황색 오층탑, 고주노토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본 양식과 중국 당나라 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뤄 섬세하면서도 극도의 화려함이 일품. 내부에는 불화가 벽면 가득 채색돼 있다.




그 사이 이쓰쿠시마에 물이 빠졌다. 질퍽한 목로를 따라 관광객들이 줄지어 신사로 들어섰다. 하루 두 번 만조 때마다 물이 차오르면 반복되는 일상.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더욱 애틋한 이쓰쿠시마는 푸른 바다와 붉은 건물, 녹음이 가득한 산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6세기 후반에 창건돼 1168년 다이라노 기요모리가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한 이쓰쿠시마는 독특한 구조미와 자연과의 절묘한 조화, 역사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1996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바다 위에 떠 있는 건물의 배치는 신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본전과 마로오도 신사, 전통 연극 무대가 약 300m 길이의 회랑으로 이어져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섬 안쪽으로 건물을 배치하고, 바다를 정원 삼아 해안을 향해 널찍하게 자리한 목조 마당은 신들의 문, 오도리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뷰포인트다. ‘바다를 부지로 신사를 짓는다’는 대담한 발상의 실현을 마주한 이들의 얼굴에 경탄이 가득하다.
반대쪽 건물에서는 제의가 한창이다. 제사장의 몸짓과 간절한 염원을 담은 신자들의 마음이 만난 현장은 경건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밤이 되면 이쓰쿠시마는 더욱 빛난다. 오도리이와 신사에 조명을 밝혀 분위기를 돋우는 것. 대부분 당일치기 여행자들이 많아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미야지마의 아름다운 일출과 일몰, 신사의 야경을 보고 싶다면 섬 내에서 숙박하는 것을 추천한다.

이쓰쿠시마 신사
広島県廿日市市宮島町1−1
08:30~16:30
성인 300엔, 고등학생 200엔, 초・중학생 100엔
+81829442020
itsukushimajinja.jp


▶먹고 쇼핑하고 즐기고


오모테산도 상점가
미야지마 페리 선착장과 이쓰쿠시마 신사 사이 약 300m 거리에 자리한 상점가로 크지 않지만 미야지마 특산품과 향토 음식점, 길거리 간식 점포가 가득해 먹고 마시고 즐기는 재미가 가득한 거리다. 미야지마에서 양식한 크고 탱탱한 굴구이, 히로시마의 명물로 자리 잡은 달콤한 간식 모미지만주, 밥주걱의 발상지답게 기념품 숍마다 판매하는 주걱, 히로시마 특산품 레몬으로 만든 소스류, 수공예 간장 등 먹을거리와 쇼핑거리가 가득하다.


▶놓치지 말아야할 길거리 간식


굴구이
히로시마는 일본에서 굴 생산량 1위 지역이다. 미야지마 앞바다에는 굴 양식장이 가득해 섬 내에서 신선한 굴을 사시사철 맛볼 수 있다. 오모테산도 상점가를 비롯해 섬 내 관광지 곳곳에서 굴구이를 판매한다. 큼직하고 탱탱한 굴은 크기부터 압도적이다. 한 개에 250~300엔 정도.


모미지만주
미야지마에서 시작된 모미지만주는 히로시마현에 많은 단풍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단풍잎 모양으로 만든다. 달콤한 팥소를 비롯해 초코, 슈크림, 치즈 등 다양한 소를 넣은 만주는 곳곳의 기념품 숍에서 구입할 수 있다. 가게 내에서 한 개씩도 판매하니 꼭 먹어볼 것. 기본 만주는 단풍잎 모양의 쫄깃한 빵 안에 팥소를 넣어 붕어빵처럼 구워낸다. 최근에는 모미지만주를 한 번 튀겨낸 아게 모미지도 인기. 모미지만주는 1개에 200엔, 아게모미지는 350엔이다. 선물용으로도 포장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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