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하루
머무는 하루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3.09.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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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 도야

홋카이도의 소도시 도야에는 그립고 따뜻한 바람이 분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아 도야호에 정박했다.



며칠간 잠을 설치다 떠난 여행의 첫날은 머물기로 한다. 빼곡한 일정표에 갇혀 시계만 들여다보는 일도, 하루를 조각 내 사는 것도 잠시 멈추기로 한다. 잔잔한 호숫가에 머무르며 마음의 파도를 잠재우기로 했다. 사색의 날이다. 여름, 긴 장마의 끝을 햇볕이 내리쬐는 도야에서 맞았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한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홋카이도의 소도시, 도야. 도야라 하면 누구든지 분화로 생겨난 도야호를 떠올린다. 도야호는 총 둘레가 50km에 달하는 거대한 칼데라 호수로 홋카이도에서는 세 번째, 일본에서는 아홉 번째로 크다. 원형에 가까우며 도야와 소베쓰에 걸쳐 있다. 홋카이도 3대 경관 중 하나로 꼽히며 일 년 내내 아름답다.



첫 목적지는 도야호의 파노라마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사이로 전망대다. 도야호는 바다같이 넓으며, 바다처럼 겨울에도 얼지 않고, 바다처럼 네 개의 섬을 품고 있지만 바다는 아니다. 물결이 이는 모습을 보며 파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넓고 푸른 호수 너머로 성층화 산인 우스산有珠山과 측화산인 쇼와신산昭和新山이 보인다. 해발 737m의 우스산은 20세기 들어 네 번의 분화를 한 활화산이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쇼와신산은 1943년 우스산 분화로 생겨난 섬으로 ‘쇼와 시대에 새로 생긴 산’이란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호수 중앙에는 크고 작은 네 개의 섬이 서로의 곁을 지키고 있다. 제일 큰 섬인 오시마를 포함해 벤텐지마, 간논지마, 만주지마를 모두 통틀어 나카지마라 부른다. 미즈우미노리박물관이 있는 오시마 섬을 제외하면 모두 무인도로 고요하게 잠들어 있다. 바다 위 홋카이도 속의 호수 위에 다시 섬. 한 겹 벗겨내면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는 마트료시카처럼 이국의 숨겨진 작은 세계를 마주한 듯하다. 사이로 전망대에서는 물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가는 헬기를 볼 수 있다. 도야호를 색다르게 관광하는 코스로, 도야호를 가까이서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헬기에 올라탄다. 쉬지 않고 돌아가는 프로펠러가 침묵의 호수를 깨운다.


온천과 함께 호수의 절경을 즐길 수 있어 도야호 주변에는 숙소가 많다. 만세각 호텔 레이크사이드 테라스洞爺湖万世閣ホテルレイクサイドテラス도 그중 하나다. 붉은 외벽이 푸른 호수와 대비돼 어우러진다. 내부에는 다다미가 있는 일본식 객실과 침대가 있는 서양식 객실, 다다미방과 침대가 함께 있는 혼합 객실이 있다. 레이크뷰Lakeview 객실을 선택하면 시간대에 따라 변하는 도야호의 다양한 얼굴을 감상할 수 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더불어 이곳에서 꼭 경험해야 할 것은 바로 온천이다. 8층에 도야호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노천탕이 있고, 지하에도 온천탕이 있다. 남성과 여성이 오전, 오후로 번갈아가며 이용하는 시스템. 남성은 오전 3시 30분부터 오전 10시까지, 여성은 오후 1시부터 오전 2시까지 8층 노천탕을 이용할 수 있다. 지하 1층에 있는 온천은 그 반대 시간이다. 온천을 즐기고 난 후에는 약 90가지의 요리가 준비되는 레스토랑에서 홋카이도의 맛을 느낀다. 레스토랑 통창 너머로 호수를 물들인 햇살이 반짝인다.



푸른 잔디가 깔린 호텔 앞은 산책로이자 야외 조각 공원이다. 이곳을 걷다 보면 작품들을 마주친다. 총 58개의 조각품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폴란드 출신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의 〈달빛月の光〉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는 높이 2.5m의 거대한 얼굴 형태 조각이다. 달빛에 의해 그늘이 생기며 다양한 표정을 보인다고 해 달빛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가는 연극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부서지거나 절단된 파편을 조각하기에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온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신체 조각들이다. 도야호 곁에 무심하게 놓인 조각의 눈에 무언의 열망이 감춰져 있는 듯하다.


해가 저물고 부른 배가 꺼질 때쯤, 검은 옷을 입은 호수만 보였던 창밖으로 유람선의 환한 불빛이 비친다.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 들며 저문 해의 빈자리를 채우듯 서로의 틈을 채운다. 불꽃놀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도야호 롱런 불꽃놀이는 도야호의 가장 유명한 여름 행사로, 20분 동안 어두운 밤하늘을 불꽃으로 화려하게 빛낸다. 1982년에 우스산이 분화되고 도야로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자 시들해진 인기를 되살리고 관광객들을 다시 모으기 위해 3개월 동안 불꽃놀이를 진행했고, 이후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열리는 정기적인 축제로 자리 잡게 됐다. 불꽃놀이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불꽃놀이 유람선은 우천 시나 날이 궂을 때를 제외하고 매일 출항한다.
유람선에 올라타, 도야호를 달린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발 디뎠던 땅이 저 멀리 보이게 됐을 때 어두운 호수가 불빛으로 물든다. 감탄 사와 폭죽 소리만이 어둠을 채운다. 하늘 위로 솟아오른 불꽃이 수면 위로 낙화하자, 비로소 하루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낀다.


사이로 전망대サイロ展望台
〒049-5832北海道虻田郡洞爺湖町成香3-5

만세각 호텔 레이크사이드 테라스 洞爺湖万世閣ホテルレイクサイドテラス
〒049-5721 北海道虻田郡洞爺湖町洞爺湖温泉21番地
+81 570-08-3500
toyamanseikaku.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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