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또 다른 위기, 기후우울증
인류의 또 다른 위기, 기후우울증
  • 신은정
  • 승인 2023.07.12 1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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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피부에 닿으며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무력감에 빠지게 하는 기후우울증은 미래에서 희망을 지운다.




불과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 자연재해가 자주 찾아 오진 않았다. 과거 환경 보호 포스터에 그려진 것은 인간이 아닌 터전을 잃은 북극곰이었을 만큼 인류에겐 다소 먼 얘기로 느껴졌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자연재해가 인류의 터전을 위협하고,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온다. 실제로 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는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에 잠기고 있다. 2021년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장관은 무릎 위까지 차오른 바다에서 수중 연설을 하며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미 투발루 국토인 9개의 섬 중 2개는 물에 잠겼고, 과학자들은 투발루가 50~100년 안에 완전히 물에 잠길 거라고 예상한다. 투발루처럼 급진적으로 변하는 나라가 아니더라도, 기후 변화의 위험에서 완전히 안전한 나라는 없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 소식이 이어지고, 최근 지구의 평균 온도가 약 17도 상승했다는 절망적인 소식도 들려온다. 한국도 때아닌 폭염, 우박과 폭우, 가뭄 등의 이상 기후 신호가 잦아지고 있다. 자연 재해의 빈도가 늘어나고, 강도가 높아짐에 따라 삶의 터전을 잃는 등 물리적 영향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도 영향을 받고 있다. 바로 기후우울증Clime depression이다.
기후우울증은 단순히 날씨가 좋지 않아서 기분이 가라앉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기후 위기 상황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극심한 불안을 호소하며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을 느끼는 우울 장애다. 이처럼 기후우울증의 가장 뚜렷한 증상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끼고 허무주의에 빠진다는 것이다. 자연재해를 직접 경험한 사람은 물론, 그 재해를 간접적으로 전해 듣기만 한 사람도 기후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 WHO는 2019년에 “기후변화는 정신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라고 경고한 바 있으며, 같은 해 미국심리학회가 18세 이상 성인 약 2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3명 중 2명이 이상 기후와 관련해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2018년 CNN 보도에 따르면 마샬 버크 교수가 이끄는 미국 스탠퍼드대 지구시스템과학과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서 월평균 기온이 1도 상승할 때 미국 월 간 자살률은 0.68%, 멕시코에서는 2.1% 증가했다고 밝혔다.
기후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환경 변화를 가까이에서 체감하는 농부와 과학자, 앞으로의 미래를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청년들이 많이 겪는다. 미국국립과학 원회보PNAS에 따르면 농업 분야에서 지구 온난화에 따른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건수는 최근 30년간 5만 9천여 건에 달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지구상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상황을 보며 무력감을 느낀다. 이는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영국에서는 지난 2018년부터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캠페인인 출산 파업Birth strike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 운동을 시작한 영국의 사회운동가이자 뮤지션인 블라이스 페피노는 아이를 낳고 싶기 때문에 재앙적인 기후변화를 막아야 하고, 살기 힘든 환경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사태의 시급성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연대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일상 속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자전거를 타며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아 실천하면서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는데, 함께 나누면 무력감과 우울감은 줄어든다. 개인의 노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도 함께 행동한다면 큰 의미가 된다. 지난달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서울시청광장에서 열린 ‘우리가 그린 GREEN 페스티벌’에서 기후변화청년단체 GEYK는 ‘기후약국’이라는 이름으로 기후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행사에서는 기후변화와 자신의 마음을 알아 보는 기후 심리테스트 등 기후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이들은 기후우울증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며, 기후 위기에 대한 사회적 공감을 바라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가 희망을 잃는다면 미래도 함께 희미해진다. 기후우울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대적 과제다.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함께 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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