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의 정취가 가득한 나가사키
이국의 정취가 가득한 나가사키
  • 김경선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3.07.0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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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일본에서 ‘작은 유럽’으로 불릴 만큼 이국적인 정취가 가득한 나가사키는 명성처럼 아기자기한 멋이 가득했다. 원폭의 피해를 딛고 재건한 도시는 굵은 빗줄기 속에서도 활기가 넘쳐난다.



타임캡슐 타고 떠나는 과거 여행
글로버 가든(구라바엔)
미나미야마테南山手 언덕을 오르자 아름다운 정원을 품은 저택 단지 글로버 가든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차 장에서부터 나가사키 항구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한 글로버 가든은 스코틀랜드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Thomas Blake Glover가 1863년 지은 저택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나가사키는 1858년 영국과 미국 등 다섯 개 나라와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요코하마와 하코다테, 나가사키를 개항한다. 이때부터 나가사키는 40여 년간 수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며 개항지로서 번영을 이뤘다. 글로버 가든 역시 스코틀랜드의 상인 토마스 블레이크 글로버의 저택이 있던 부지로 1970년 나가사키현이 점차 사라지는 서양식 건물을 보존하기 위해 구라바 저택이 자리한 언덕에 3만m2의 부지를 확보하고 시내에 있던 서양식 건물을 이축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글로버 가든의 입구는 두 곳. 1게이트를 지나면 가든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한 구 미쓰비시 제2독 하우스에 닿는다. 배를 수리하는 동안 승무원들이 투숙하던 숙소 건물로 새하얀 2층 건물에 낭만적인 테라스가 인상적이다. 1896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서양식 건물은 1층과 2층 테라스를 여덟 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다. 건물 안 레트로 사진관에서는 만화 속에서나 봄직한 옛 의상이 다양하게 마련돼 있어 한 벌을 골 라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미쓰비시 제2독 하우스 앞으로는 아름다운 정원과 작은 연못이 자리하며, 벤치에 앉으면 나가사키 항구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구 미쓰비시 제2독 하우스를 등지고 왼쪽 계단을 내려오면 구 워커 주택을 만난다. 영국인 사업가 로버트 닐 워커의 차남Robert Walker Jr이 살았던 저택으로 메이지 시대 중기 무렵 오우라 천주당 옆에 자리한 건물을 이축했다. 목조 단층 건물로 서양식으로 지어졌지만 기와와 차양은 일본식으로 꾸몄다. 워커 주택 앞에는 푸치니 동상이 자리한다. 개항 시기의 나가사키를 배경으로 작곡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동상이다.
동상을 따라가면 구 링거 주택과 구 올트 주택을 만난다. 두 건물 모두 국가지정중요문화재일 만큼 유서 깊은 건축물이다. 링거 주택은 1867년 건축했으며 3면이 베란다인 방갈로 풍의 건물이다. 올트 주택은 1864년에 건축한 석조 저택으로 오우라 천주당과 글로버 주택을 지은 고야마 히데가 만들었다. 당시 올트 주택 베란다에서 영국 영사관의 파티가 개최되기도 했을 만큼 화려하다.
정원 가장 아래쪽에는 구 글로버 주택이 있다. 국가지정중요문화재이자 메이지 일본의 산업 혁명 유산으로 지정된 글로버 주택은 1863년에 건축해 일본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주옥과 독립된 부엌, 두 건물을 잇는 복도까지 규모가 상당하며, 서양식 건물의 토대 아래 일본식 기와가 덮여 있다.
〒850-0931 長崎県長崎市南山手町8-1
08:00~18:00
성인 620엔, 청소년 310엔, 어린이 180엔
+81 958-228-223
glover-garden.jp


성스럽고 고아한
오우라 천주당
글로버 가든과 인접한 곳에 자리한 오우라 천주당은 1597년 나가사키에서 순교한 성인들을 기리기 위해 1864년 프랑스 선교사가 지은 교회로 정식 명칭은 ‘일본 26인 성인 순교자 천주당’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국보로 지정돼 있다.
나가사키에 처음 기독교가 전파된 시기는 16세기 중반. 그 수가 점차 늘어나자 에도막부는 17세기부터 기독교 탄압 정책을 펼쳐 선교사들을 쫓아냈다. 오우라 천주당은 기독교 박해 속에서도 신자들의 버팀목이 되었고, 지금껏 선교를 이어가며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언덕길 중턱에 자리한 교회는 우뚝 솟은 첨탑과 새하얀 건물이 조화를 이뤄 우아하면서도 고아한 모습을 자아낸다. 고딕과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건물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만들어 더욱 특별하다. 성당 앞 성스러운 모습의 성모상이 두 손을 모은채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절로 마음을 경건하게 만든다.
천주당 안으로 들어서면 100년 전에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에 압도된다. 예수의 일대기를 묘사한 스테인드글라스와 고딕 양식의 아치가 만든 성당은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고풍스럽다.
〒850-0931 長崎県長崎市南山手町2-18
성인 1000엔, 청소년 400엔, 어린이 300엔
+81 958-270-623


안경을 찾아라
메가네바시
나카시마 강 위를 가르는 메가네바시眼鏡橋는 1634년에 건축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아치형 석교로 국가지정중요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와 전통이 깊은 다리다. 시내를 가로 지르는 나카시마 강은 강이라고 보기엔 폭이 좁아 하천 같은데, 좁은 강폭 덕에 메가네바시의 진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메가네바시는 일본어로 ‘안경 다리’라는 의미. 다리 아래 두 개의 아치가 강물에 비춰 멀리서 보면 안경처럼 보인다고 해 ‘메가네바시(안경 다리)’라는 이름을 얻었다.
나카시마 강에는 총 14개의 다리가 촘촘히 놓여 있는데, 그 중 메가네바시가 가장 아름답다. 육면체의 돌을 쌓아 만든 돌다리를 건너면 중심으로 갈수록 아치의 굴곡이 살아난다. 오랜 시간만큼 다리를 이룬 돌들도 세월의 흔적을 정면으로 맞아 예스럽다.
메가네바시의 안경 모양을 잘 찍고 싶다면 서쪽 바로 아래 자리한 후쿠로바시袋橋 위에서 촬영하는 것이 좋다. 폭우가 쏟아지지 않는 한, 날이 맑을 때도 흐릴 때도 안경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메가네바시와 후쿠로바시 사이에는 징검다리가 있다. 여행 메이트가 있다면 강으로 내려가 징검다리 위에 선 장면을 후쿠로바시 위에서 사진으로 남겨보자. 인생컷을 건질 수 있다.
〒850-0875 長崎県長崎市銀屋町1


나가사키 무역의 중심지
데지마
우리나라보다 훨씬 이르게 개항한 일본이지만 초기 개항 시대에는 일본 역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수구 세력과 새로운 문화가 격돌하는 역사의 현장 데지마出島는 1636년 포르투갈인들이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포교하자 이를 막기 위해 만든 인공섬이다. 에도 막부의 명령으로 나가사키의 상인 25명이 출자해 부채꼴 모양의 인공섬을 조성하고, 포르투갈인들을 수용하며 기독교 포교를 막기 위해 애썼다. 이듬해 시마바라의 난으로 1639년부터 포르투갈의 내항이 금지되고 이후 히라도平戶의 네덜란드 상관을 데지마로 옮겼다. 이후 데지마는 일본과 유럽 간 유일한 무역지이자 일본 근대화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데지마는 나가사키의 외국인 거주지가 구라바엔 주변으로 옮겨진 후 나카시마 강의 하천 공사와 개발로 매립돼 부채꼴 모양을 잃게 됐다. 나가사키현은 데지마의 복원을 위해 50여 년간 노력한 끝에 다섯 채의 건물을 2000년에 복원하고, 이후 카피탄 주택과 다섯 채의 건물을 2006년에 완성했다. 2016년 다시 여섯 채의 건물을 세우며 총 열 여섯 채의 건물을 완성한 데지마는 19세기 초기 모습을 재현하게 됐다.
데지마에 들어서면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1860년대 석조창고와 신석 조창고, 메이지 시대의 서양식 건물인 구 데지마 신학교와 구 나가사키 내외 클럽, 네덜란드인 수석 서기관 주택, 카피탄 주택, 오토나 주택을 비롯해 일본식 건물과 서양식 건물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거리는 수백 년 전 데지마에 온 듯 낯선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내부에는 원래의 데지마를 1/15로 축소한 ‘미니 데지마’가 있으니 놓치지 말자.
〒850-0862 長崎県長崎市出島町6
08:00~21:00
성인 520엔, 청소년 200엔, 어린이 100엔
+81 958-291-194
nagasakidejima.jp


나가사키 쇼핑은 여기
하마마치 아케이드
나가사키에서 가장 번화한 지역에 하마마치 아케이드浜町アーケード가 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쇼핑. 나가사키 쇼핑의 중심은 나가사키 시내다. 하마마치 아케이드는 길이만 360m에 달하는 대형 아케이드로 다양한 쇼핑 숍과 브랜드 숍, 레스토랑, 카페 등이 밀집해 있으며, 다이마루 백화점, 하마야 백화점을 비롯해 700여 개의 점포가 밀집한 나가사키의 쇼핑의 중심지다.
한국 여행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쇼핑 숍은 단연 돈키호테. 여기에 각종 드럭스토어와 다이소, 고급스러운 천 엔 숍 세리야까지. 먹거리와 의약품, 화장품 등 쇼핑러들을 만족시킬 상점들이 모여 있어 크게 발품 팔지 않아도 기념품을 구입하기 좋다. 나가사키에 왔다면 카스텔라 구입도 필 수. 초콜릿 카스텔라로 유명한 ‘쇼오켄松翁軒’도 있으니 잊지 말고 들러보자.
일본의 아기자기한 카페 감성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는 가게들이 있다. 나카미세 8번가 2층에 자리한 ‘올림픽’. 50여 종의 파르페는 물론 1.2m에 달하는 파르페도 판매한다. 1866년에 개업해 전통적인 계란찜 요리를 내는 ‘욧소吉宗’도 빼놓아서는 안 될 맛집. 과거로 회귀한 듯 레트로한 분위기의 인테리어와 다양한 식재료의 계란찜은 별미 중 별미다. 길거리 음식도 잊지 말자. 돼지고기를 조려 만든 찐빵 가쿠니만쥬를 내는 ‘이와사키 혼포岩崎本 舗’도 하마마치 아케이드에 있다.
〒850-0853 長崎 県長崎市浜町2


잊을 수 없는 아픔
나가사키원폭자료관
제2차 세계대전의 치열했던 마지막 전선, 태평양전쟁의 막바지. 1945년 8월 6일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다. 수많은 민간인의 희생으로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3일 뒤인 8월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던진다.
당초 두 번째 원자폭탄 예상 투하지는 고쿠라小倉였다. 하지만 투하 당일, 전날의 폭격 여파로 고쿠라에 짙은 연기와 안개가 끼어있자 미국은 급히 나가사키로 선회해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당시 사망 추정자만 15만 명에 달했으며, 엄청난 인명피해는 물론 도시가 초토화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8월 15일, 더 이상 승기를 잡을 수 없음을 깨달은 일본은 항복을 선언하며 종전에 이른다.
나가사키원폭자료관長崎原爆資料館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기까지의 경위와 당시의 참혹했던 상황, 피폭으로 인한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전시관 내에는 핵무기 개발의 역사와 나가사키의 부흥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 자료들을 전시했으며, 도서관에서는 원자폭탄에 관한 책과 관련 비디오를 볼 수 있다. 또한 당시의 참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피폭된 물건들과 건물의 잔해를 전시해 원자폭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852-8117 長崎県長崎市平野町7-8
08:30~18:30
성인 200엔, 청소년 및 어린이 100엔
+81 958-441-231
nabmuseum.jp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공원
나가사키원폭자료관 옆에는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평화공원平和公園이 자리한다. 원자폭탄이 낙하한 중심지 일대에 조성된 평화공원에는 원폭 낙하 중심비가 세워져 있으며, 당시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평화의 조형물들이 곳곳에 있다. 공원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면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분수를 만난다. 원폭 투하 당시 피 폭으로 인한 통증과 갈증을 호소하던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주기 위한 물줄기다.
공원에는 여전히 원폭으로 인해 파괴된 집들의 기와, 벽돌, 3000℃의 고온에 녹아 내린 유리 등 많은 파편이 매장돼 있지만 지금은 푸른 잔디와 녹음이 뒤덮여 당시의 참상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공원에는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기리고, 역사를 되짚는 시민들과 학생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분수를 지나 공원을 가로지르면 높이 9.7m의 거대한 조각상을 만난다. 나가사키 출신 조각가 기타무라 세이보北村西望의 작품인 ‘평화의 기념상’은 전 세계에서 걷은 기부금으로 제작됐다. 두 눈을 지긋이 감고 오른손은 하늘을 향해, 왼손은 수평을 향해 뻗고 있는 모습은 원자폭탄의 위험성과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공원은 광장 지역, 스포츠 지역, 기원 지역, 기도 지역, 배움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어 원폭피해자의 추모를 위함은 물론 시민들의 편안한 휴식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852-8118 長崎県長崎市松山町9
city.nagasaki.lg.jp/heiwa/3030000/3030100/p00515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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