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연의 빛
본연의 빛
  • 신은정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2.08.0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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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인·이재은 '아트스페이스 2층' 작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버려진 나무와 마네킹이 이정인·이재은 작가를 만난다.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그 본연의 빛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


생명과 치유, 사랑과 희망. 이정인·이재은 부부 작가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온몸으로 밀려드는 메시지들이다. 이정인 작가가 희귀난치병에 걸린 후, 지금의 작업 노선을 그리는 기나긴 여정이 시작됐다. 이들은 서울에서 강원도로 떠났고, 지금은 가평에 머물며 <아트스페이스 2층>을 운영하고 있다. 에너지를 뿜는 물고기를 나무에 그려내는 이정인 작가와 무표정이었던 마네킹에 긍정적인 감정 의 힘을 그려 넣는 이재은 작가. 그들이 만드는 작품과 꼭 닮은 이들의 삶에서 생동하는 희망이 엿보인다.

소개 부탁합니다.
이정인 나무에 물고기를 그리는 이정인 작가입니다. 예술을 사랑하며 일상의 모든 것을 작품으로 연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재은 마네킹에 그림을 그리는 이재은 작가입니다. 다양한 감정들을 문양화한 것들이죠. 주로 그리는 주제는 사랑, 행복, 희망에 대한 것들이에요.

이재은 작가


서울을 떠나 홍천과 화천을 거쳐 가평으로 왔어요.
이재은 홍천에 살았던 시절은 이정인 작가가 목공이 된 시기이기도 하고, 우리 부부가 생태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였어요. 7년 정도 되는 기간 동안 홍천에서 머물며 남편은 나무를 다루는 작가로 전향했고, 나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기 시작했죠. 화천으로 가서는 저만 생태그림을 계속 그리고 남편은 나무 작업을 계속 이어갔어요.
이정인 화천은 제 작업의 모태가 되는 물고기를 찾은 곳이기도 해요. 물고기의 에너지와 생동감을 만난 곳이죠.

가평에서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이재은 이정인 작가는 물고기로 에너지를 표현해 내는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고, 저는 가평으로 오고 나서 제 안의 감정에 굉장히 집중하게 됐어요. 강원도에서 14년 동안 살았던 그 시절이 제 감정을 순화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보고, 지금은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마네킹에 투영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정인 작가


가평에 아트스페이스 2층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정인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자 해서 접근성이 좋은 곳을 원했고, 환경적인 요소들도 적합해야 했어요. 물이 있는 곳에 있고 싶어서 강이 보이는 곳을 찾았죠. 화천에서 북한강 줄기가 시작되는데, 가평은 그 강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청평지역이 타지역에 비해서 대기 순환이 굉장히 빠르다고 들었어요. 미술품은 습한 환경에 있으면 안 되니까, 강가에 있어도 대기 순환이 빨라 습하지 않은 이곳을 찾게 됐습니다. 그래서 청평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추측하면서요(웃음). 이름도 쾌활한 느낌이 들고. 더 생기 있는 작품들을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죠.


아트스페이스 2층은 미술관이자 쇼룸으로, 작품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을 모두 공개하고 있어요.
이재은 예술가라는 직업이 신비로운 존재로 비쳐 사람들이 어려워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 인식들을 풀어보고 싶었어요. 작품은 작가의 삶이에요. 작가의 생활방식과 작업하는 장소, 작업 재료 같은 삶의 다양한 부분을 보여주는 게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죠.
이정인 오래전부터 ‘자기 PR’이라는 말이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잖아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미술 작가도 문을 닫고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해요. 그래서 이곳은 작품을 놓고 경직되어 있거나 거리를 두는 게 아니라, 직접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정인 작가님은 폐목으로, 이재은 작가님은 폐마네킹으로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는데요. 이런 소재들을 이용해서 작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정인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살린다는 데 의미를 뒀어요. 부정적인 어감인 ‘폐’가구라기보다는, 파편이자 부산물이죠. 가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시선이 갔고, 그런 소재 들로 작업했을 때 너무 좋았습니다. 일상의 작은 부산물들이 작품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거니까요. 버려지는 것들을 모으면 새로운 에너지가 나오고 새로운 창작물이 나옵니다. 그런 작품들은 순식간에 팔리더라고요. 사람들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감동 받는 것 같아요.
이재은 남편의 희귀난치병 때문에 우리 삶의 방식이 다 바뀌었어요.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생각도요. 식생활이나 작품의 재료까지 무엇 하나 쉽게 느껴지지 않았죠. 막 쓰고 버리는 일들을 줄이 고 자제하면서 작업으로도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 시작된 재료적 선택인 거죠. 마네킹은 PVC 플라스틱이라 폐기될 경우 1급 발암물질이 돼요. 그걸 다 폐기 처리하게 되면 환경에 좋을 리가 없죠. 그런 소재에 다시 평생의 옷을 입혀서 작품으로 만들었어요. 마네킹은 감정의 포즈를 표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조형적인 형체이기도 하고요.



소재를 다듬지 않고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작품을 만들고 있어요.
이정인 제 작업은 강제로 형태를 만들어 바꾸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모습을 찾는 과정입니다. 물길을 막으면 결국 넘쳐흐르듯, 나무라는 것도 제 성질대로 나온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를 존중하고자 해요. 그래서 소재를 발견하는 것부터가 작업의 시작이죠. 목수들은 나무를 이리저리 깎으면서 그 행위가 본연의 모습을 살리는 거라고 말하는데, 그건 살리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떨어져 나온 파편에 집중해서 그것을 다시 살리는 작가라고 저를 정의합니다.

소재를 발견하기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이정인 제가 몸이 아플 때 숲에 들어가서 치유받았어요. 나무에서 나온 무언가가 저를 치유해 준다고 생각해 숲속을 헤매고 다니며 영감을 얻었죠. 그렇게 숲을 다녀오고 나면 나무로부터 얻은 영감으로 작업을 시작하고, 그다음 나뒹구는 나뭇조각 파편을 찾아다녔어요. 그런 재료들은 단순히 줍는 게 아니라 ‘수집’하는 거예요.


이정인 작가가 하는 작업을 다른 뜻으로 해석한 연목구어에 빗대기도 한다고요.
이정인 원래 연목구어는 ‘나무에 올라서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으 미련하고 바보스러운 사람을 뜻하는 말이죠. 물고기를 구하려면 물가로 가야 하는데 나무에 올라서 물고기를 찾고 있으니 미련하다고요. 그런데 제 작품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한 거잖아요. 풀어서 말하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작품이죠. 결과적으로 안 되는 일은 없어요.
이재은 남편은 자신의 몸을 극한의 상황에서 회복하는 것 자체가 안 된다고 했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거예요. 그 고통 속에서 헤매던 자기 삶의 몸부림을 작업에 반영한 거잖아요. ‘살리다’라는 의미를 두고 작업하는 것이 작가 대 작가로서 너무 존경스러웠어요. 저는 그런 고통이 없었지만, 저 사람은 그 고통의 모든 것들을 작업으로 표현해 내잖아요.


작품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이정인 수만 년 전부터 사람과 가장 친했던 게 나무입니다. 나무에서 불을 발견하고 음식도 해먹고,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나무가 있어서 숨을 쉴 수 있었죠. 나무를 흔하게 보는데, 다시 한번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저는 나무에게 경외심과 존중의 마음을 담아 작업하려고 해요. 손에 가시가 찔렸을 때, 내가 주의 깊지 못해서 나무가 주는 경고라고 생각하고 다시 한번 나무에 고개를 숙이고 작업하죠. 겸손함을 배우게 돼요. 제 작업을 보는 분들도 나무를 통해 무엇이든 배웠으면 합니다. 그 와중에 나무로 작업하는 이정인 작가도 기억해 줬으면 하고요.
이재은 작품을 보고 한번 편안하게 웃고 그게 위안이 됐으면 좋겠어요. 세상에는 너무 많은 싸움과 시기와 폭력이 만연해요. 제 바람이지만, 100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인생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그런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면서 사람들도 제 작품을 보며 늘 평온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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