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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역사 관광지
강화도 역사 관광지
  • 고아라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1.11.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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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을 거닐다

강화도는 섬 전체가 하나의 역사 박물관이라 불린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부터 가슴 아픈 전쟁의 흔적을 간직한 격전지까지, 수천 년을 거슬러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전등사
현지인에게 강화도 관광지를 물으면 가장 먼저 꼽을 만큼 강화도의 자랑거리인 전등사는 강화의 절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삼국시대(318년) 고구려 승려 아도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당시 조선 왕실 서적을 모아둔 정족산 사고의 지킴이로서 조선 왕실의 비호를 받았다. 1912년 일제 강점기에 전국 6개군 34사찰을 관리하는 본산이었으나 워낙 넓어 관리가 어렵자 절터의 일부를 팔아 없애 오늘날의 모습으로 축소됐다. 주변에 보물 제178호 대웅전, 제179호 약사전, 제393호 전등사 철종 등 수많은 유물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강화 광성보
강화 해안 부대 12진보 중 하나로 조선 고종 8년(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로 강화도 요새지의 총사령부였다. 광성보 바로 앞에는 해협이 흐르는데, 마포, 개성, 중국까지 직항할 수 있는 포구가 있어 한양을 지키는 중요한 군사요충지이기도 했다. 성문인 안해루 아래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포격전이 벌어졌던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광성돈대 등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주변에 신미양요의 광성보 전투에서 순절한 무신 어재연의 전적비, 전투에서 전사한 용사들의 무덤 등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하다.

강화 고려궁지
대몽항쟁 시기 고려왕이 머물던 궁터. 고려 고종 19년(1232년)부터 고려 원종 11년(1270년)까지 39년간 사용된 곳이다. 과거에는 행궁, 이궁, 가궐 등 수많은 궁궐과 정궁이 있어 거대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조선 시대 병자호란 등 전란을 겪으며 궁터만 남았다. 현재 남아 있는 고려궁지의 규모는 크지 않아 20여 분이면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사방이 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아늑한 느낌마저 드는 한적한 장소. 곳곳에 건축 기단과 돌계단, 고려 시대 기와 조각 등 흔적만이 당시의 항전을 기억하고 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
강화도는 청동기시대의 북방식 고인돌들이 여럿 분포돼 있어 고인돌 여행지로도 유명하다. 그중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자리한 고인돌은 한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크기도 크기지만, 밭 한가운데 독립해 있는 것은 경기지방을 비롯해 중부지방에서 보기 드문 거대한 탁자식 고인돌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뚜껑돌은 길이 650cm, 너비 520cm에 달하며 그 아래 2개의 굄돌이 받친 형태다.

연미정
선조들의 풍류와 멋을 느낄 수 있는 정자로 10경 중 하나로 꼽힌다. 강화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서해와 인천으로 흐르는 물길 모양이 제비꼬리를 닮았다 하여 연미정이란 이름이 붙었다. 한강 하구에서 가장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으로 사방이 트여 있어 예로부터 사랑받아온 명소다. 하늘이 맑은 날에는 파주와 김포는 물론, 북한의 황해도 개풍군 일대도 조망할 수 있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뛰어나다. 팔각지붕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지은 민도리집인데 지붕 선이 수려하다.

교동향교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가 강화의 교동도에 자리하고 있다. 드넓은 평야 옆, 양쪽으로 나무가 늘어선 길을 걸어 올라가면 교동향교가 수줍은 듯 얼굴을 드러낸다. 고려 충렬왕 12년(1286)에 안향은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셨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로 향교가 만들어진 계기다. 향교안에는 공자의 신주를 비롯해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폐를 모신 대성전,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았던 명륜당,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 내삼문 등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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