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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신영 기자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21.09.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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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하우스' 선세영 편집자

여러모로 참 팍팍한 세상이다. 혼자 꾸역꾸역 걱정거리를 짊어지기엔 이미 에너지 방전이고 어딘 가에 고민을 터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찾는다. 누군가는 에세이를 보며 위로받고, 또 누군가는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지금의 독자들은 책을 통해 텅 빈 마음을 채운다.

국내 단행본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 편집자로 근무 중인 선세영 씨는 요즘 바쁘다. 대중의 마음을 예리하게 꿰뚫는 이야기, 영감을 주는 콘텐츠를 발굴하기 위해 밤낮없이 오감을 열어둔다. 책 한 권을 편집하는 와중에도 서점에서 출판 디자인을 연구하고, TV·SNS 등 매체를 보면서 새로운 작가를 찾는다. 생각의 회로가 온통 출판인 셈이다.

출판에 관한 그녀의 열정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최근 편집에 참여한 김도영 작가의 <기획자의 독서>가 마케터들 사이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은 것. 1쇄 판매도 어려운 시대에 2주 만에 2쇄를 찍었다는 건 편집자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독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내고 작가·독자·편집자가 만족하는 책을 출간한다는 사실이 그녀를 즐겁게 한다.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어떤 동기부여를 얻는다. 세영 씨가 그랬다. 편집자의 사명이란 무엇인지부터 디지털 시대 종이책 편집자로 일하는 것에 관한 고민까지.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알 수 없지만 그녀의 고민은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귀결한다.

출판 편집자란 무형의 생각을 책이라는 실물로 세상에 닿게 하는 사람이다. 독자들이 원하는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에게 출판을 제안하고, 책의 구성을 고민하고, 책 제목을 짓고, 교정을 보고, 디자인을 고심한 후 출간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각종 보도자료를 작성해 매체에 전달하는 등 마케팅과 홍보를 통해 신간을 알린다. 동시에 다음 출간할 책의 기획안도 작성한다. 단 두 달이라는 기간 동안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편집자에게는 성실함, 꼼꼼함, 추진력은 물론 작가의 원고를 매끄럽게 다듬을 수 있는 작문 능력도 필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해 글쓰기 감각을 유지해야 한다. 이 정도의 능력이 필요하면 애초에 출판 편집자로 태어나는 게 나을 법하다. 아니면 적어도 문예창작과 또는 국어국문과 교육을 이수하거나. 그런데 세영 씨는 의류학과 출신이면서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위즈덤하우스는 그녀의 세 번째 직장이다. 방송작가를 그만둔 후 소규모 출판사에서 2년간 경력을 쌓고 위즈덤하우스로 건너왔다. 위즈덤하우스는 대중에게 필요한 책이라면 어떤 영역이든 어떤 형태로든 출간하는 열린 회사이며 백만 부 판매로 알려진 <배려> 등을 출간한 튼튼한 출판사다. 색다른 디자인을 시도하고 관심 가는 작가가 생기면 발 빠르게 섭외하는 추진력도 그녀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녀가 위즈덤하우스에 합류한 시점과 에세이 도서의 인기가 높아지는 시점이 맞물리면서 위즈덤하우스는 에세이 도서 출판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모든 순간이 너였다>, <좋은 사람에게만 좋은 사람이면 돼> 등은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실무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6년 차 편집자. 그동안 수천 개의 원고를 보았지만 세영 씨는 읽고 또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 원고를 받으면 가슴이 벅차다. 올해 4월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원고도 그랬다. 484쪽의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문장도 버릴 것이 없었다. 내면에 어떤 울림이 오면서 치유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 누구보다도 먼저 보석 같은 초안을 읽을 수 있는 편집자가 되어서 행복하다는 세영 씨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처럼 내면의 상처를 치료하고 자존감을 높여주는 책이 독자의 선택을 받는다.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라며 용기를 주고 “모두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책 말이다. 또한 즉각적으로 위로를 건네는 짧은 글과 팬이 많은 작가들의 저서가 초기 판매에 효과적이고 대중에게 어필할만한 포인트가 있으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살려주식시오> 같이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 성소수자에 관한 왜곡된 시선을 진솔한 글과 일러스트의 아기자기함으로 풀어낸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 데이비드 호크니 작가의 대표작 ‘더 큰 첨벙’을 표지에 담아 눈길을 사로잡은 <풍덩!> 등 자신만의 특별한 관점을 이야기하거나 독특한 디자인을 갖춘 책이 잘 팔린다.

며칠 전 세영 씨는 동료들과 진지하게 고민을 나눴다. 생생한 영상을 통해 무료로 정보를 얻는 지금 왜 우리는 나무를 베면서까지 종이책을 만들어야 하냐고. 결론은 하나다. 그래도 책을 찾는 사람은 있다. 그러니까 독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책은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무엇보다 책은 독자가 자신의 내면에 몰입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을 가졌다. <기획자의 독서>에서 말한 것처럼.

저는 영화나 음악을 비롯한 모든 창작물을 사랑하지만 책이 열어주는 생각의 틈은 확실히 그 밀도가 다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이미지나 음악에서 흐르는 멜로디는 다른 생각을 잊고 그 콘텐츠 안에 몰입하게 하지만 책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스스로 모든 생각을 끌어가게 해주거든요. 마치 누군가 운전하는 차에 탄 것과 내가 직접 운전하는 것의 차이 같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을 정말 진득하게 할 수 있습니다.”
- <기획자의 독서> 166쪽

세영씨와 같은 편집자들은 책만의 확실한 매력이 있다고 안도하지 않는다. 독자의 읽는 경험을 최대한 풍부하고 즐겁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흔한 남매> 등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종이책으로 담기도 하고 멋진 일러스트나 캐릭터 등 소장 가치가 훌륭한 디자인을 구상하기도 한다. 또 있다. 어디서도 듣지 못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발굴하는 것. 그게 편집자의 사명이다. 그래서 세영 씨는 다짐한다. 사람들이 기다리는 소재를 발굴하고 독자의 곁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책을 만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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