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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니까, 다 괜찮지 뭐
바다니까, 다 괜찮지 뭐
  • 김주현 | 김주현
  • 승인 2021.07.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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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할 때마다 파도를 만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달과 지구 사이를 부유하는 무수히 많은 불순물들. 그것을 관리하는 신만의 영역이다. 파도가 없다고 실망하는 대신, 바다의 포근한 품에 슬쩍 안겨보거나,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올 파도를 기다리는 것이 바다를 대하는, 그리고 삶을 대하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그날 찾아간 바다의 파도는 부재중이었다.
서핑을 시작한 이후 여러 사람들과 파도를 찾으러 다녔다. ‘파도는 바다에 살지 않고 간혹 놀러 온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한국에서 파도를 만날 수 있는 날은 드물었다. 여러 해를 보내며 느낀 점은 파도는 꽤나 도도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얼굴이 보고 싶어, 금요일 퇴근 후에 차를 타고 서너 시간 달려가도 마중 나오기는커녕, 연락처를 남기지 않고 주차된 차 마냥 소식이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날 만큼은 파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이 간 무리 중 조만간 결혼을 앞둔 S가 있었는데, 여자 친구 자랑을 늘어놓 듯 양양 파도를 칭찬해뒀기 때문이다. 그는 예비신부에게 급히 허락을 받고 우리와 함께 서핑에 나섰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바다는 아무것도 신경 쓰기 싫어 비행기 모드로 전환한 내 휴대폰처럼 미동조차 없었다. 하염없이 잔잔했다. 첫째 날은 그러려니 했는데,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양양의 해변들-죽도, 하조대, 기사문, 설악해변. 심지어는 경포대까지-을 옮겨 다녀도 파도는 수줍은 건지, 귀찮은 건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발견한 건 아쉬운 마음을 품고 서울로 돌아가려는 S의 축 처진 어깨뿐이었다. 양양군의 홍보문구 ‘파도를 타면, 행복을 탈 수 있다.’의 표현을 빌려오자면, 우리는 행복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것이다.

파도를 찾아 하염없이 바다를 옮겨 다니다 보니, 작년에 다녀온 발리가 너무나도 그리워졌다. 발리의 바다는 우리나라와 달리 넓은 해안을 따라 남태평양의 크고 작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바닷속 깊은 곳에 있는 컨베이어 벨트가 품질검사에 통과한 양질의 파도들을 쉴 새 없이 육지 쪽으로 밀어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좋은 파도가 몰아닥치는데도 현지 인스트럭터는 롱보드에 더 적합한 파도를 찾는다며, 새벽부터 <파도를 찾아서>라는 주제를 가지고 해변 드라이브를 떠났다. 덕분에 바투볼롱Batu Bolong, 페레레난Pererenan 등의 해변을 옮겨 다니며 그날의 날씨와 풍향, 풍속에 따라 최적의 장소에서 서핑을 즐길 수 있었다.

한국은 그 적도 남쪽의 섬나라와는 달랐다. 파도가 너무 없어서 발목 높이까지의 파도만 있어도 감사했고, 부서져서 맥주 거품처럼 사라져 가는 화이트 웨이브White Wave만 만나도 흥이 올랐다. 보통 파도가 없으면 해변을 따라 늘어서 있는 펍에서 맥주를 마시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에 만족하지만, 축 처진 뒷모습의 S를 보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기도 애매했다. 파도 없는 바다에서 보드를 빌리고, 몸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웻수트를 입는 일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이왕 수 시간을 달려 서핑하러 왔으니 물에는 들어가지만, 집에 있는 마루 장판에 올라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럴 거면 거실 바닥에 배 깔고 드러누워 있지.’ 하고 생각했던 적도 여러 차례다.

몇 년 전, 처음 서핑 여행을 온 동생 C를 배려해 파도 없는 바다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역시나 파도가 없어 툴툴거리고 있는데, C가 바다 위 빛나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눈이 아릴 정도로 선명한 무지개였다. 누군가 제자리가 아닌 곳에 장난스럽게 올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거친 파도를 타고 있었더라면 발견하지 못했을 평화로운 풍경에 튀어나와있던 입을 집어넣고 생각했다.

“나 경쟁하려고 서핑 하는 게 아니잖아. 평화롭고 싶어서 온 건데. 이래도 바다고 저래도 바단데 뭐 어때? 바다면 다 괜찮지”

그러고 보니 그저 즐기는 것이 서핑의 목적이라면, 저 멀리 무지개와 함께 반짝거리는 수면, 그 아래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의 속살, 그리고 머리 위로 펼쳐진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서핑과 바다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친 파도에 올라타는 일은 짜릿하고 확실한 쾌감을 주지만, 잔잔한 바다를 즐기는 것도 나름대로의 묘미가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바다를 지긋이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파도가 왔다. 좋은 파도였다. 강한 패들링으로 파도의 속도를 따라잡고, 간질거리는 파도를 향해 귀를 가져다 대자 파도가 말했다.

“그래 그거지! 그게 바로 서핑과 바다, 그리고 네 인생을 즐기는 현명한 자세일걸?’
원할 때마다 파도를 만나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달과 지구 사이를 부유하는 무수히 많은 불순물들. 그것을 관리하는 신만의 영역이다. 파도가 없다고 실망하기보다 바다의 포근한 품에 슬쩍 안겨보거나, 수평선 너머에서 다가올 파도의 모습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 바다를 대하는, 그리고 삶을 대하는 현명한 자세가 아닐까.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이 드는 이들을 위해 여러 해 동안 양양 주변을 어슬렁 거린 필자의 경험을 발판 삼아 네가지 서핑 스폿을 추천한다.


서퍼스파라다이스
양양의 낮과 밤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낮에는 누구보다 평화로운 공간이지만, 밤이 되면 조명과 음악이 바뀌며 인구에서 가장 핫하고 흥미로운 공간으로 변한다. 낮에 갔다면 밤에, 밤에 갔다면 낮에도 찾아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길 60-7 1층
0507-1420-2356

코게러지
이름대로 차고를 개조한 카페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golf 1세대와 서핑 보드들, 높은 천장이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게 해준다. 멋진 분위기와 다르게 곰돌이 모양의 귀여운 컵에 담겨 나오는 커피 맛도 좋다. 기사문 해변 앞에 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리면 좋다. 6월 재 오픈 예정이니 새 공간을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강원 양양군 현북면 동해대로 1269-7 2층
010-9049-8227

스톤피쉬
양양에 처음 방문했을 때부터 있던, 나름의 역사와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지인들과 2차를 갈 때 반드시 찾는다. 스톤피쉬만 가면 취해서 인테리어 소품인 잼베를 두들기곤 하는데, 이 글을 빌어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

강원 양양군 현남면 인구중앙길 46-3

템덤커피클럽
낙산과 설악해변 주변에 있는 이 공간은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 직접 로스팅 한 신선한 커피도 훌륭하지만, 햇볕이 따스하게 느껴지는 마당과 전시공간도 이용해보는 걸 추천한다.

강원 양양군 강현면 장산5길 71-5
033-672-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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