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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걸음으로 섬 구석구석
느린 걸음으로 섬 구석구석
  • 심민아 | 심민아
  • 승인 2021.03.2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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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묶인 지 여러 날. 봄이 성큼 다가오니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린다. 탁 트인 바다를 두 눈에 담으며 자분자분 걷기 좋은 서해의 작은 섬, 제부도로 향했다.

바닷길 열리는 신비로운 풍경
비대면 여행하면 한적한 섬 여행이 빠질 수 없다. 바닷물 갈라짐 현상으로 유명한 제부도는 배를 타지 않고 육로로 갈 수 있어 언택트 여행지로 딱이다. 제부도가 유명해진 건, 바다가 갈라지는 해할 현상 덕분이다.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지만 바닷물이 슬금슬금 빠지는 썰물 때는 섬과 육지 사이에 땅이 훤히 드러난다. 몇 시간 전만 해도 힘차게 넘실대던 파도가 뒷걸음질 치며 자취를 감추더니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길이 2.3km, 너비 6.5m의 잘 닦인 시멘트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오간다. 도로에는 가로등이 점점이 서 있고, 길 양옆으로 바다의 맨살, 갯벌이 아득히 펼쳐진다.

섬 안으로 들어갈수록 세상과 뚝 떨어진 느낌이다. 바람은 아직 매섭고 세차지만, 코로나 블루를 말끔히 날려버릴 정도로 상쾌하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도 연신 날개를 퍼덕이며 입도를 반긴다. 제부도 바닷길은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고 하는데, 길이 열리는 시간이 매일 바뀐다. 물 들어오는 시간을 잘못 맞추면 길게는 하루 이상 발이 묶일 수 있다. 썰물 때는 갯벌에서 낙지나 맛조개를 잡을 수 있고 밀물 때는 입구에서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바닷길 한쪽에 범상치 않은 디자인의 전망대가 있다. ‘2018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전망대 끝에 서면 바닷길이 열리고 닫히는 광경을 시시각각 감상할 수 있다. 바다 위에 44m 길이로 설치된 조형적인 구조물로, 유려한 곡선이 잔잔히 물결치는 바다를 떠오르게 한다. 썰물 때는 드넓은 갯벌과 자동차 행렬이 한눈에 보이고, 밀물 때는 잔잔히 물 위를 걷는 기분이다.

유유자적 섬 걷기
바닷길을 건너자마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해안선을 따라 달리면 제부도 해수욕장 끝에 20m 높이의 기암괴석이 시선을 끈다. 매의 부리처럼 날카롭게 솟아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매바위’는 오랜 세월 파도와 바닷바람에 의해 모양이 깎이고 파여 지금의 형태가 됐다. 뾰족 솟은 4개의 자연 조각상은 한없이 평화로워 보이지만, 과거엔 매들이 쉬어가던 곳으로 여기저기 둥지가 많았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보이는데, 마치 매가 하늘을 날거나 먹이를 노리고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썰물 때는 걸어서 매바위 끝까지 다녀올 수 있다. 바닷물이 발끝을 적실 듯 가까이 와서 출렁이면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감돈다. 한쪽에선 물 빠진 갯벌에 앉아 바지락과 동죽을 캐느라 여념이 없다. 발이 푹푹 빠지는 보드라운 모래 해변을 걷노라면 답답하고 지친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해수욕장을 빠져나와 무언가에 홀린 듯 컨테이너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곳은 색색의 컨테이너 6개를 이리저리 쌓아 만든 예술 문화 공간, 제부도아트파크(JAP)다. 디자인을 맡은 SOAP 건축사무소는 각각의 컨테이너에서 바다 풍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제부도아트파크는 경기도의 경기만에코뮤지엄 사업과 화성시의 문화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것으로, 2017년 세계 3대 디자인 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해 화제가 됐다. 모두 쓰임이 다른 2층 구조물로, 1층은 전시실, 2층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근사한 전망 쉼터로 이루어져 있다. 2층에 오르면, 유리가 없는 길쭉한 창이 나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바다 뷰가 예술이다. 엉덩이만 간신이 붙이고 앉을 수 있는 1인 의자가 띄엄띄엄 놓여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 또한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 190-2
032-890-4816

'물멍'에 빠지다
제부도 해안가 어디서든 바다와 눈높이를 맞출 수 있지만, ‘물멍’에 최적의 장소는 단연 선착장이다. 제부도 최북단, 선착장에 다다르자 등대가 말없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짙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대비를 이루는 빨간색 등대는 제부도 선착장의 상징과도 같다. 높이 9.5m의 등대는 4초마다 1번씩 발광한다. 12m 밖에서도 북극성처럼 빛이 난다. 이곳은 해돋이 포인트로도 유명하다. 서해안에서 웬 일출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섬이라는 지리적 특징으로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등대 곁에 서서 멍하니 수평선을 바라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밀려오는 파도에 세상 시름을 실려 보내다 보면 어느새 물거품처럼 사그라든다. 등대 옆으로 이어지는 해상 낚시터, 피싱 피어Fishing Pier는 망둥어를 잡으려는 낚시꾼들로 붐빈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77m의 목제 다리가 장관인데, 특히 반영이 아름답다.

물길 따라 산길 넘어
등대 오른쪽으로 800m 길이의 해안 산책로 ‘제비꼬리길’이 나 있다. 등대가 있는 제부항에서 제부도 해수욕장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제비꼬리길은 화성실크로드 2-1코스로, 평평한 나무데크로 이루어져 쉬엄쉬엄 걷기 좋다. 청량한 바닷바람 소리를 들으며 탑재산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산책로에 설치된 괭이갈매기, 피뿔고둥, 꽃게 같은 해양 생물 조형물이 눈을 즐겁게 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 그림엽서 같은 풍경 사진을 건질 수 있다. 산책로 곳곳에 놓인 의자도 주변 경관에 그대로 녹아들도록 디자인됐다. 새 둥지처럼 아늑한 ‘둥지 의자’, 유리 난간에 붙어 있는 ‘조개 의자’, 서서 쉴 수 있는 ‘서서 의자’ 등 하나같이 예술적 조형미가 뛰어나다. 산책로 왼편에는 매바위, 염습지, 한우물 쉼터 등 제부도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여행 정보가 적혀 있다. 2017년 ‘걷기 좋은 여행길 10선’에 선정된 제비꼬리길은 2016년 ‘제부도 문화예술섬 프로젝트’로 탄생한 아트 산책로다. 바닷물이 발밑까지 차오르는 만조 때에 이 길을 걸으면 두 발로 노를 젓는 기분이다.

제비꼬리길이 끝나자마자 탑재산 전망대로 자연스럽게 발길이 이어진다. 제부도의 매력적인 물길을 두 눈 가득 담았다면, 이제 산길을 맛볼 차례다. 1.2km 길이의 트레킹 코스로, 웅장한 맛은 없지만 빽빽이 우거진 수풀 사이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게다가 급경사가 거의 없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 솔잎이 수북이 쌓인 폭신한 흙길이라 다리에 전혀 무리가 없다. 은은한 솔향과 바다 냄새가 번갈아가며 후각을 자극하는데 머리가 금세 맑아진다. 감동을 주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트레킹로 중간중간에 3개의 근사한 전망대가 선물처럼 나타난다. 유리와 나무 소재가 적절히 믹스된 탑재산 전망대는 수풀 속에 파묻힌 자연친화적인 디자인. 전망 의자에 앉으면 서해 바다가 파노라마 뷰로 펼쳐지고, 날이 좋으면 안산 탄도항과 충남 당진화력발전소까지 훤히 보인다. 바닷바람 사이로 파고드는 옅은 봄 향기와 등 뒤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이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선사한다.

서해 소금 커피의 맛
섬을 얼추 한 바퀴 돌고 나니 따듯한 커피 한 모금이 간절해진다. 등대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전망 좋은 카페, 앵커커피로스터즈가 있다. 바닷가 바로 앞에 위치한 덕에 카페 어디서든 넉넉한 바다 뷰를 감상할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쪽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자연광이 사방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내부 인테리어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는 데에 집중할 수 있도록 미니멀하게 꾸몄다. 나무 기둥 단면을 그대로 잘라 긴 테이블을 만들었고, 카페 안에 화단을 꾸민 덕에 사계절 초록 식물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시그너처 음료인 소금 커피, 제부리카노Jeburicano를 주문했다. 프랑스산 꽃소금으로 만든 짭조름한 베이스 위에 진한 에스프레소와 부드러운 크림을 층층이 올렸다. 따뜻한 티를 원한다면 진한 초콜릿과 달콤한 캐러멜 향이 어우러진 마리아주 프레르의 블렌딩 티 ‘웨딩 임페리얼’을 추천한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해안길 430-1
제부리카노 6500원, 아메리카노 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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