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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식재료 이야기 12] 정선 배추
[제철 식재료 이야기 12] 정선 배추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11.29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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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 절임배추 & 김치에 관한 이모저모

계절은 땅의 기운과 인간의 감정을 좌우한다. 찬 기운이 코끝을 스치면 몸과 마음이 쓸쓸해지듯 대지의 생명은 숨을 죽인다. 우리는 예부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제철 식재료를 탐해왔다. 거친 땅을 뚫고 지면 위로 올라오는 제철 식재료의 힘으로 사계절을 나는 우리. 제철 식재료 이야기 마지막 호인 12월에는 배추를 말한다.

정선 배추로 하는 김장
강원도 정선의 논밭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작물을 내놓는다. 봄에는 곤드레, 여름엔 옥수수, 가을부터 겨울까지는 배추. 사방이 첩첩산중으로 둘러싸인 덕분일까. 정선에는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흐르고 좋은 토양이 있어 건강한 농작물이 사계절 내내 출하된다.

한국인의 1년 밥상을 책임지는 김치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배추가 지천인 정선에서 새농촌협동조합 절임배추 공장을 운영하는 김인배 농부를 만나 올해 김장 배추 현황에 관해 물었다.
“고랭지 배추가 올해 역대급 긴 장마 때문에 ‘금추’라고 불릴 만큼 가격이 올랐었죠. 포기당 만원을 호가했으니 여름에 김장하는 새댁들이 아주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나오는 김장 배추는 작황이 좋아 포기 당 가격이 천원에 형성됐어요.”

가리왕산 끝자락에서 약 3천 평의 김장 배추밭을 운영하는 김 농부가 배추밭으로 향했다. 푸른 잎사귀를 널브러뜨린 배추가 오와 열을 맞추고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 농부가 가장 실한 배추 두 개를 골라 반을 가르자 하얀 줄기와 노란 잎사귀로 꽉 찬 속이 보인다.

“동글동글한 배추가 ‘노랭이’, 살짝 길쭉한 게 ‘노랭이 골드’라는 품종입니다. 배추가 크고 묵직하진 않지만 타 품종보다 당도가 높고 소금에 잘 절여지는 특징을 갖고 있어요. 고소한 맛도 나서 김장 배추로 많이 쓰이는 품종입니다.”

7월 말, 상토판에 배추씨를 심고 한 달간 육성한다. 옥수수 수확이 끝나는 8월 말에는 옥수수 대를 전부 쳐 내고 그 자리에 상토판을 배치해 가리왕산에서 흘러나오는 지하수를 뿌린다. 10월 한 달간 병충해 방제약을 살포하지 않고 자연 생육하면 10월 말부터 잘 익은 배추가 줄줄이 늘어선다.

“날씨가 금세 추워져 타지역보다 일주일 정도 수확이 빨라요. 기온이 뚝뚝 떨어지면 배추가 마르고 얼어서 상품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10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출하합니다. 배추를 구매할 때 지역별 수확 시기와 배추 품종을 확인하고 선택하는 게 좋아요.”

절임배추 믿고 먹어도 될까?
김장할 때 배추를 절이는 이유가 있다. 뻣뻣한 잎사귀를 소금에 절여 부드럽게 만들면 씹기 편해지고, 발효 과정에서 아미노산과 젖산이 생겨나 독특한 맛과 영양분이 생긴다. 또한 배추에 난 작은 구멍으로 양념이 들어가 유산균이 생성되고 이때 발생하는 약간의 이산화탄소가 시원한 맛을 배가한다.

“몇 년 전에 절임배추 위생 논란이 있었던 만큼 세척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배추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소금에 16~18시간 절인 뒤 공기 방울 세척기에 넣습니다. 공기 방울이 배추 잎사귀 사이사이에서 진동해 숨은 먼지를 전부 제거하죠. 한 번 더 사람 손으로 꼼꼼히 세척한 뒤 탈수 과정을 거치면 포장 박스에 들어갑니다.”

상품이 소비자에게 전해지기는 하루 동안 절임배추는 포장 속에서 더욱 안정적으로 익어간다.

“절임배추를 구매할 때 반드시 품종과 크기를 물어보세요. 품종에 따라 당도가 다르고 크기에 따라 맛이 달라집니다. 배추 줄기가 좁은 것을 선택하세요. 줄기가 굵으면 당도가 낮아져 맛이 덜합니다. 적당한 크기의 단단한 배추를 추천합니다. 배추가 크면 김장을 한 후에 금세 물러질 수 있어요. 절임배추가 담긴 봉투에 탁한 색이 돌지 않고 투명한 물이 흘러야 좋은 상품이라는 것도 기억하세요. 때때로 절임배추를 집에서 또 한번 세척해야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개인의 선택입니다. 이미 3차 세척 과정을 거쳤고 또 유통과정에서 발효되어 먼지나 균 대부분이 제거됐습니다. 게다가 가정에서 다시 세척을 하면 배추가 물러질 수 있어요.”

블로그, 홈페이지 등 홍보 활동을 하지 않는 김 농부는 오직 직거래로 소비자와 만난다. 늘 겸손한 자세와 청렴한 마음가짐으로 건강한 절임배추를 생산하는 김 농부. 그의 절임배추를 사랑하는 단골이 점점 늘고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재 김장 문화
한국인의 소울푸드, K푸드, 절임 채소의 왕 등 김치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최고의 발효 음식으로 자리매김했다. 해외 유명 유튜버들은 김치 먹방을 시전하거나 ‘집에서 쉽게 김치 만드는 ’이라는 영상을 올려 큰 호응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매운맛 신드롬을 일으킨 실비김치 먹방 열풍이 멈출줄 모른다.

김치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된 <신라촌락문서>에서 찾을 수 있다. 서원경(現 청주) 부근 네 개 촌락의 생활기록서로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농경문화가 정착한 삼국시대엔 균형 잡힌 식사와 소화를 쉽게 하려고 소금, 장, 술지게미, 식초를 각종 채소에 뿌려 저장했는데 이것이 김치의 모태이다. 고려 시대에는 무, 가지, 오이, 부추, 파, 순무를 단순히 절이는 것이 아니라 생강, 귤피, 여귀 등 향신료와 양념을 버무려 매운맛을 내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우리가 먹는 배추김치가 완성된다. 재래종 배추는 얼갈이처럼 길쭉하고 속이 성긴 탓에 김치의 재료로 쓰이지 못했는데 1700년대 중국을 통해 속이 꽉 차고 통이 큰 결구 배추가 들어오면서 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빨간색과 매운맛을 내는 고추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임진왜란 때 일본을 통해 고추가 전파됐다는 통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전래설을 뒤집는 연구가 2009년 발표됐다. 한국식품연구원에 따르면 고추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었다. 1489년 간행한 의서<구급간이방>, 1527년 간행한 교학서 <훈몽자회>에서 고추 기록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15세기에 간행된 <향약집성방>과 <식료찬요>에서는 고추장 기록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일본의 고문서인 <대화본초>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에서 고추 종자를 가져왔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정설로 여겨진 임진왜란 고추 전파설은 그야말로 설(說)에 불과하다.

채소가 귀했던 한겨울에 우리의 밥상을 책임진 김치. 뛰어난 발효 기술에서 얻어진 풍부한 필수 영양소는 건강을, 매콤하고 시원한 맛은 입맛을 챙겨준다. 조상의 지혜와 슬기를 담은 김치는 한국인의 자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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