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동옷 갈아입은 설악속으로
색동옷 갈아입은 설악속으로
  • 글 사진 김혜연
  • 승인 2020.10.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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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단풍 산행

자고로 사람은 1년을 두고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산도 마찬가지다. 사계절을 보아야 그 산의 진정한 멋을 알 수 있다. 이 완벽한 가을날, 광활한 설악산을 제대로 알고자 산의 등줄기 위에 섰다.

대피소 대신 무박산행
오늘의 산행은 한계령휴게소에서 시작해서 백담사로 하산하는 20km의 여정이다. 설악산은 고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코스가 길어 당일산행은 힘든 산이다. 코로나19 전에는 대피소를 이용해 1박2일로 여유롭게 설악의 이모저모를 느낄 수 있었으나 요즘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고자 대피소를 운영하지 않는다. 덕분에(?) 깜깜한 새벽에 출발하는 무박산행을 해야지만 우리가 원하는 코스에 다녀올 수 있었다.

한계령휴게소에 도착해 등산로 오픈 시간을 기다렸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화들짝 놀라고, 단풍철을 맞아 멀리서부터 찾아온 등산객에 또 한 번 놀랐다. 미어캣처럼 줄줄이 서서 오픈을 기다리다가 대피소 문이 열리자 마라톤 시작점처럼 우루루 산행이 시작됐다. 인파에 몰려 줄을 서서 올라가는데 마음 급한 사람들은 좁은 길을 툭툭 치며 추월하기 시작했다. 산행은 시합이 아니다. 자신의 속도로 체력을 조절하며 꾸준히 걷는 나와의 약속이고 만족이다.

우리는 욕심을 버리고 우리만의 속도로 길을 나섰다. 앞사람 엉덩이만 보고 오른 지 한참, 내가 단풍구경을 온 건지, 사람들 엉덩이 구경을 하러 온 건지 헷갈리던 참에 한계령삼거리에 닿았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 휴식할 때는 헤드램프 밝기를 줄이거나 꺼두는 것이 센스. 헤드램프를 끄자 숨어 있던 밝은 달이 머리 위로 두둥 떠올라 주변을 밝혀준다. 하늘은 어찌나 맑고 별은 또 어찌나 빼곡한지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몰려오는 피로와 새까만 인파로 ‘나는 왜 이 고생을 사서하나’ 속으로 질문 하고 또 질문했는데, 잠시 가진 휴식 속에 해답이 있었다. 그래, 이 맛에 산행을 한다.

설악산에서 맞이한 일출
꿀맛 같은 휴식도 잠시, 갈 길도 먼데다 찬바람에 땀이 식자 한기가 몰려왔다. 서둘러 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흙길, 바위길, 계단을 올라 드디어 서북능선에 올랐다. 아직 동이 트지 않아 주변이 어두웠다. 광활한 풍광 대신 하늘의 빼곡한 별과 달빛이 내린 몽환적인 능선들. 눈을 감고 햇살이 내려앉은 웅장한 산세를 그려본다.

능선을 타니 무겁던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진 듯하다. 별빛 아래 능선을 걷다보니 어느새 저 멀리 산 능선을 붉게 물들이며 하루를 알리는 여명이 밝아온다. 가장 몽롱하고 나른하며 한기가 몰려오는 시간이다.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능선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여명으로 깨어난 산은 알록달록 털모자를 쓴 암봉의 웅장한 자태를 선물했다. 이제 뜨거운 일출은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더 높은 곳으로 떠올랐다. 해가 뜨자 맑은 날씨 덕분에 저 멀리 속초 앞바다까지 보였다. 일출로 노랗게 물든 바다, 능선 굽이굽이 옅게 깔린 운해가 장단을 맞추고 알록달록하게 물든 나뭇잎이 청량한 바람을 타고 하늘하늘 춤춘다. 자연의 모든 것들이 합심하여 이 가을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명소
상쾌한 아침이 되어서야 중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북적이는 대피소 벤치를 피해 바닥에 자리를 잡고 행동식과 귤, 따뜻한 차로 아침식사를 대신했다. 식단이야 조금 부실하다지만 눈앞에 펼쳐진 경치가 진수성찬이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나자 완벽하게 날이 밝았다. 기온은 이제 새벽의 쌀쌀함 대신 포근함으로 변했다. 가을, 겨울 산행에는 들머리와 정상, 새벽과 정오의 기온차가 크기 때문에 체온조절을 할 수 있는 보온의류를 꼭 챙기고 기온에 따라 옷을 레이어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부터 길고 긴 내리막의 연속이다. 내리막이 시작될수록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원래 하산하기로 한 코스는 소공원이었으나 중청대피소를 오르며 멀리 붉게 물든 봉정암에 시선을 빼앗겨 코스를 변경했다. 머릿속으로 봄에 보았던 봉정암에 그림 그리듯 가을 색을 칠해본다. 기대감에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지루한 내리막을 걷고 걸어 드디어 봉정암. 계속되는 내리막에 체력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봉정암을 감싼 나무들이 빨갛고 노랗게 잘도 익었다. 알고 있는 모든 감탄사를 연신 내뱉으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풍 명소를 감상했다. 다람쥐도 어찌나 많은지, 사람들 지나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닥에 떨어진 도토리와 잣을 양손으로 잡고 야무지게 돌려가며 입속에 저장한다.

봉정암부터는 시리게 맑은 물과 붉은 단풍이 내내 이어졌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태풍으로 유실된 등산로와 쓰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보였다. 예쁜 단풍을 보고 신나기만 했던 나를 반성하면서 동식물의 터전이자 사람들의 힐링의 장소가 빨리 복구가 되기를 바라본다.

산행은 항상 즐거움과 감동만을 주지는 않는다. 즐거움을 주는 구간이 있다면 지루하고 지치게 만드는 구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힘든 오르막 끝에는 보답처럼 내어주는 감동이 있다.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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