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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기어의 굴업도 백패킹
마이기어의 굴업도 백패킹
  • 글 사진 김혜연
  • 승인 2020.10.11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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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맞이 섬 여행기

뜨겁던 여름과 바이러스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하루 보내는 요즘, 어느새 새벽녘엔 쌀쌀한 날씨 때문에 이불속으로 파고들게 된다. 조용히 살금살금 오고 있던 가을을 급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마중하러 배낭을 꾸렸다. 우리가 이번에 가을을 맞이할 곳은 인천 앞바다의 조그마한 섬 굴업도다.

가을의 굴업도를 아시나요
굴업도는 섬의 형태가 사람이 엎드려 일하는 것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센 조류와 파도, 바람이 빚어낸 독특한 해안지형과 넓게 펼쳐진 광활한 초원의 경치가 멋질 뿐만 아니라 트레킹 난이도가 쉬워 입문하는 백패커들에게 성지로 불린다.

섬 여행의 시작은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시작된다. 이른 아침 동인천역에 도착해서 택시로 여객터미널로 이동한다. 동인천행 급행열차와 택시를 이용 하면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으니 일행들과 함께 이용하면 좋다.
설렘을 안고 배에 올랐다. 햇볕은 쨍쨍했지만 상쾌한 공기가 함께하니 “아 가을이구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굴업도에 닿으려면 배를 한 번 갈아타야 한다. 인천여객터미널에서 덕적도로 가서 다시 굴업도행 배로 갈아 타야 한다. 먼 바다로 나가기 때문에 기상에 따라 배가 결항하는 경우가 많아 서 날씨 운이 나쁜 사람에게는 도도하기 그지없는 섬이다.

비밀의 숲
화창한 날씨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굴업도에 발을 내디뎠다. 갈매기 떼와 짭조름하고 시원한 바람이 우리를 맞아줬다. 선착장에는 섬 안에서 운영하는 민박집 트럭들이 손님들을 실어 나르려고 대기하고 있었다. 말만 예쁘게 하면 숙박 하거나 식사를 하지 않아도 개머리언덕 근처까지 실어다 준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섬의 정취를 느끼고 싶어 걸어가기로 했다. 해안가를 따라 걷다가 숲으로 진입했다. 조금 짙은 색의 듬성듬성한 잎사귀를 가진 나무들이 마치 한라산의 어느 비밀의 숲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숲과 해변을 걸어 이내 개머리언덕에 진입하자 키가 작은 수크령들이 낭만을 더해준다.

사그락사그락 수크령들을 헤치고 끝없이 펼쳐지는 넓은 언덕과 시원한 바람이 맞닿는 곳에 선다. 또다시 나지막이 입술을 비집고 기어이 나오고야 마는 한마디 “아 가을이야!”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졌지만 그 자체로 몸을 맡기고 아름다운 경치 구석구석을 눈과 마음에 담는다. 잠시 멍하니 경치에 취해있을 때 볼 위로 차가운 물방울이 톡톡 튀긴다. 아까부터 나올까 말까 망설이던 먹구름이 이내 비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갑작스러운 비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우중 백패킹
오늘 우리의 야영지는 바다와 넓은 언덕을 바라보며 잠들 수 있는 곳, 개머리언덕이다. 적당한 곳에 텐트를 치고 타프를 설치했다.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노을을 기대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비 덕분에 오늘 일몰은 다음으로 미룬다. 또 찾아올 명분이 생긴 셈이다. 노을은 실패했지만 타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그 어떤 아름다운 선율보다 낭만적인 밤을 선물했다.
잠시 잠이 스르륵 들었다가 텐트를 흔드는 비바람에 잠에서 깼다. 만나서 반갑다는 것인지 요란하게도 텐트를 흔들어대며 환영을 해주는 통에 몇 번 꿈과 현실을 오갔지만 무사히 아침이 밝았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수많은 바람을 만났기에 이 정도는 무덤덤해졌다.

백패킹을 떠나기 전에는 일기예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날씨가 아주 좋지 않을 때나 갑작스러운 악천후를 만났을 때 과감하게 일정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또한 바람이 심할 경우에는 경치를 볼 요량으로 개활지보다는 바람을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곳에 텐트를 설치하고 신중하게 팩다운 하는 것이 좋다. ‘나는 내일 아침에 무사히 눈을 뜰 것이고, 바람이 나를 날릴 정도로 나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을 되뇌며 마음의 안정을 찾는 방법도 좋다.

요란하던 비는 아침까지 이어졌다. 비 오는 날 젖은 텐트를 철수하는 것이 꿈만 같았지만 그런데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모닝커피였다. 좁은 전실에서 간단히 물을 데워 커피를 내려 마셨다. 내가 마시는 이것이 커피인지 빗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어떤 여유로운 아침보다 향기롭고 맛있었다.

꽃사슴을 보다
날씨의 영향도 있지만 자유롭게 서식한다던 꽃사슴을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혹시나 우리가 와서 숨었나 싶어 마음이 불편해서 서둘러 철수하고 머문 자리 말끔히 정리한 후 다시 한번 경치를 눈에 담고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언덕을 조금 올라갔을까? 샥샥샥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숲 안쪽에 꽃사슴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정말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몸을 움직였더니 동그란 눈망울이 더 동그래진다. 조금 미안해져서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반대편에서 내려다보는 초원도 장관이었다. 하룻밤 사이 수크령들이 쭉쭉쭉 기지개를 핀 모양이다. 어제보다 더 쑤~욱 자라 있는 한 건 기분 탓이었을까? 굴업도를 찾는다면 꼭 긴바지를 입고 올 것을 추천한다. 수크령들 사이로 벌레들이 많아 맨다리를 드러내면 아몬드가 붙은 과자처럼 다리가 벌레에 물리거나 풀에 긁힐 수 있다.

초원과 바다의 아름다운 조화를 눈에 담으며 짧은 걸음은 끝났다. 한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가을이 무르익으면 훌쩍 자란 수크령과 꽃사슴을 만나러 다시 한번 찾고 싶다. 항상 고민하지만, 다시 찾을 때 꽃사슴들과 자연을 방해하지 않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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