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식재료 이야기] 二月 , 황태
[제철 식재료 이야기] 二月 , 황태
  • 박신영 기자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20.0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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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에 관한 이모저모
황태이야기와 황태덕장

계절은 인간의 감정과 땅의 기운을 좌우한다. 찬 기운이 코끝을 스치면 몸과 마음이 쓸쓸해지듯 대지의 생명은 숨을 죽인다. 우리는 예부터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며 제철 식재료를 탐해왔다. 거친 땅을 뚫고 지면 위로 올라오는 제철 식재료의 힘으로 그 계절을 나는 우리. 이번 달에는 겨울 땅에서 찬바람을 견딘 황태를 탐방해 본다.

외롭고 고달픈 이야기
매년 12월 말이면 강원도 대관령 지르메 마을에 쿰쿰한 냄새가 퍼진다. 명태가 찬바람에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내는 냄새다. 대관령에서 사십구일재를 보낸 황태가 이듬해 우리의 식탁을 채운다. 그러나 황태의 외롭고 고달픈 이야기를 알면 괜스레 젓가락질이 경건해진다.

황태 역사는 그리움으로부터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함경도 주민들은 피난길에 오른다. 동해안을 따라 강원도에 당도한 실향민들은 감자, 무, 배추로 한 해를 보냈다. 그러던 중 고향에서 맛보던 황태가 그리워졌고 함경도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대관령과 인제 용대리에 덕장을 세웠다.

황태 생산은 만만찮다. 추수가 끝난 밭에 20kg 이상 나가는 낙엽송 수십 개를 옮겨 네모반듯한 덕장을 설치하는 게 기초인데 땅에 덕목이 들어갈 구멍을 뚫는 것 외에 전부 수작업이다. 게다가 기후와 토지 조건이 까다로워 덕주들은 매년 10월 추수가 끝나자마자 주민들을 소집해 부지런히 덕장을 만든다.

사진제공 황태이야기
사진제공 황태이야기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12월부터 2차 작업이다. 주문진에서 넘어오는 4~5만 개의 냉동 명태 상자를 일일이 해체하고 명태를 꺼내 덕목에 거는 작업이 반복된다. 덕장 설치부터 덕걸이까지 어느 것 하나 사람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다.

덕걸이가 끝나면 인고의 시간이다. 명태는 눈과 함께 얼고 녹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그동안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아가리가 점점 더 벌어지면서 황태로 변한다. 극심한 혹한이 이어질수록 황태는 더욱 노랗고 오동통한 속살을 갖게 되고 4월이 지나면 황태해장국과 황태구이로 재탄생된다.

물고기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하지만 고향을 잊지 못하는 실향민의 애환, 죽어서도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명태, 덕주와 주민들의 노고가 담겼다.

황태 위기설
미주와 유럽에서 이색 먹거리로 보도할 정도로 황태는 한국의 독특한 식재료다. 숙취 해소, 간장 해독, 노폐물 제거 등 효능도 뛰어나 홍콩, 미국, 베트남 등 해외 각지에서 러브콜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 국산 황태의 위기설이 돈다.

대관령 황태 덕장 덕주들은 황태 위기설의 원인을 세 가지로 꼽았다. 먼저 지구온난화다. 대관령 1월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지 않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졌다. 추위, 바람, 눈의 삼박자를 갖춰야 하는 황태에겐 최악의 기후조건이다. 연일 계속되는 포근한 날씨로 냉동 명태가 녹아내리고 때아닌 폭우를 만나 황태가 축 처졌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황태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덕장 바닥을 질척질척하게 만드는데 심할 경우 덕목이 쓰러지며 덕장이 도미노처럼 와르르 무너진다. 고품질 황태는커녕 덕장의 생사도 알 수 없는 판이다.

둘째는 러시아 쿼터제다. 국산 명태는 자취를 감춘 지 한참이다. 명태는 수온이 1~10도의 차가운 바다에서 서식하는데 지구온난화 때문에 동해 수온이 높아져 국산 명태 어획이 불가능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과 러시아 합작 선사가 러시아 수역에서 명태를 건져 국내로 들여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더욱 심해져 러시아 수역에서도 명태가 급감했다. 결국 러시아 정부는 지난해 한국과 러시아 합작 선사에게 충분한 명태 어획 쿼터를 배정하지 않았고 덩달아 명태 어획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냉동 명태 수입량은 전년 대비 34.7% 감소했고 가격은 전년 대비 38.9% 올랐다. 냉동 명태 공급 하락과 가격 상승으로 덕걸이를 포기하는 덕주가 늘고 있다.

마지막은 중국산 마른 명태가 국산 황태로 둔갑해 황태 시세를 무너뜨린다. 중국산 마른 명태의 값싼 가격 앞에서는 국산 황태가 맥을 못 춘다. 덕장의 상태도 우수하고 냉동 명태 물량도 맞춰 고품질 황태를 생산하더라도 팔리지 않는다면 덕주들은 끝내 황태 생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황태를 만지다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인 황태덕장을 고대했다. 1월 초 일부러 눈이 오는 날을 받아 대관령에 갔지만 비가 쏟아졌다. 대관령에서 내로라하는 황태덕장 ‘황태이야기’ 최명길 대표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지금 덕장에 못 들어가요. 비 때문에 바닥이 질퍽질퍽해 빠져나오지 못할 수도 있어요. 날이 너무 따뜻해서 대관령이고 인제 용대리고 덕주들이 울상이죠. 황태는 하늘이 좌우하는 식재료인지라 덕주들은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요.”

덕장에 발을 들이자 최 대표 말대로 신발이 쑥 빨려 들어갔다. 다행히 이곳 덕장은 작년 10월에 덕목을 깊게 박아둬 튼튼했다. 덕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큼직한 명태 수십 만 마리가 덕목에서 황태로 변하는 중이다. 그중에는 고양이가 반쯤 뜯어먹은 것도 종종 보인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맛있는 건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대관령 덕주들과 덕장 인부들이 하나둘 황태이야기로 모였다. 그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날씨와 덕장 이야기로 전전긍긍이다. 주요 화두는 대관령과 인제 용대리의 덕장 상태.

“용대리 덕장이 무너졌대요. 그나마 덕걸이를 안 한 덕장이라 다행이죠. 날씨가 야속합니다. 다음 주부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서 황태 생산에 차질은 없을 거 같은데 생산자 입장에서는 늘 불안해요.”

최 대표는 덕장 안팎을 돌아다니며 덕목과 황태를 수시로 확인했다. 황태이야기의 황태 생산량은 매년 약 10만 마리. 지구온난화와 러시아 쿼터제가 제동을 걸어도 뚝심 있게 최고급 황태를 생산한다. 또한 일반인에게 무료로 덕장을 공개하고 직접 손으로 황태를 만져보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대관령면사무소 앞 평창군농특산품 판매장에서는 황태채, 황태포, 통황태 등 황태이야기 제품도 전시·판매한다. 황태 위기설이 도는 와중에도 전력을 다해 황태를 생산하고 황태 문화를 이어가는 최 대표와 덕주들에게 존경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황태덕장
황태이야기에서 생산한 황태를 내는 맛집을 찾았다. 대관령에서 30년 이상 황태 전문 요릿집으로 이름을 날리는 ‘황태덕장’이다. 황태구이, 황태찜, 황태 전골, 황태해장국, 황태 미역국 등 황태로 온갖 요리를 만든다.

황태 머리와 뼈를 온종일 우려 육수를 내고 황태채와 두부를 넣고 끓인 황태해장국이 이곳의 메인 메뉴다. 하얗고 뽀얀 국물 한 그릇이면 한겨울 꽁꽁 언 몸도 사르르 녹아내린다.

황태구이도 빼놓을 수 없다. 바삭한 튀김옷을 입은 황태에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양념장을 발라 살짝 익혔다. 사과, 배 등 다양한 과일과 주인장의 비밀 레시피가 들어간 양념장 덕분에 밥 한 그릇 뚝딱이다.

밑반찬도 야무지다. 강원도 감자조림, 심해 두부조림, 황태 식해, 고랭지 배추김치 등 지역 식재료를 활용해 건강한 밥상을 실현한다.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 눈마을길 21

033-335-5942

평일 07:00~21:30, 주말 및 공휴일 07:00~22:00(연중무휴)

황태구이정식 1만3천원, 황태국 8천원, 황태찜 小 3만5천원

hwangtae-duckjang.in.gangwo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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