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탕이 그리워진다. 온천 여행으로 여러 도시를 떠올리겠지만, 역사와 전통이 있는 부다페스트를 추천한다. 500년 이상 된 온천 문화를 갖춘 곳으로, 부다페스트에만 110개 이상의 온천이 즐비하다.

고대 로마 유적지를 돌아보면,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는 시설들이 있다. 2천 년 전인데도 도시에 상하수도 시설이 완벽하고, 수세식 화장실이나 으리으리한 목욕탕도 있다. 이중 목욕탕은 고대 로마를 유지할 수 있는 핵심 시설로 꼽힌다. 당시 로마인들은 목욕 문화 덕분에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가 적었는데, 이는 중세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세상을 떠났는지를 떠올리면 놀랄 대목이다(이후에는 시대를 역행해갔다). 당시 목욕탕 안에는 온탕, 냉탕, 수영장 뿐 아니라 식당, 헬스장, 도서실, 미술관, 급기야는 신전, 산책로, 샘물 등의 시설까지 갖췄다. 로마 멸망의 원인으로 사치와 더불어 목욕이 지목될 정도였으니(논란의 여지가 있는 의견 중 하나), 이들이 얼마나 목욕에 심취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목욕 문화는 로마의 세력이 뻗친 곳까지 닿아 있었는데, 로마군이 주둔했고 터키인들(오스만투르크)의 지배를 받았던 헝가리 부다페스트도 예외는 아니었다. 터키인들은 부다페스트로 입성해 귀신 같이 온천의 향기를 맡았고, 지금과 같은 풍부한 온천을 발견해 여러 곳의 목욕탕을 지었다. 이 덕분에 부다페스트에는 지금도 110개가 넘는 온천이 있으며, 매일 3천 리터에 달하는 온천수가 공급되고 있다. 세계 내로라하는 유명한 온천도시와는 비교도 안 되는 양이다. 이렇듯 대량의 온천수가 나오니, 대부분의 호텔에는 자체 온천 시설을 갖췄고, 대중 온천 시설은 그 규모가 워터파크급이다. 또 100년 역사는 가뿐히 넘는 곳들이 많아 분위기는 로마 시대 신전을 떠올리게 할 만큼 고풍스럽다.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사실 찜질방이나 워터파크, 대형 온천들이 잘 돼 있으니 크게 감동할 수는 없지만, 내부 시설도 제법 다양한 편이다. 또 유황 성분이 함유된 온천수는 물이 부드럽고, 관절염, 신경통, 순환 장애 등에 약효도 있다고 한다. 낮에는 부지런히 관광을 다니고 밤에는 온천으로 피곤을 푸는 것이 제대로 부다페스트를 즐기는 법이다. 부다페스트 3대 온천을 누비며, 고대 로마인들의 목욕 문화를 경험해 보자.


세체니 온천 Széchenyi Gyógyfürdő és Uszoda
부다페스트 온천을 대표하는 온천 시설로, 부다페스트 뿐 아니라 유럽 내에서도 규모가 가장 크다. 1913년에 문을 열어 몇 차례의 개보수 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는데,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마치 왕궁인 듯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온천 입구 천장에 있는 돔 장식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총 21개의 탕이 있으며, 로마시대 번성하던 목욕시설처럼 사우나, 피트니스, 마사지실, 식당, 연회장 등 다양한 시설을 갖췄다. 이 온천의 규모와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건, 야외·수영시설이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며, 다양한 온도의 풀이 있어서 내게 맞는 온도를 찾아갈 수 있다. 풍경도 예뻐서 인증샷 필수코스다. 그러나 아무래도 관광객이 많고, 수용인원도 많으니 오후에는 수질 위생 문제가 종종 지적된다.

겔레르트 온천 Gellért Gyógyfürdő és Uszoda
1918년 지어진 온천 시설로, 도나우 강가 화려한 건물로 눈길을 끄는 겔레르트 호텔 안에 있다. 그 덕분인지 3대 온천 중 가장 비싸고, 현지인들의 선호도도 높다. 세체니 온천보다 야외 온천·수영장은 규모가 작으나 대신 파도풀이 있어서 워터파크 느낌이 난다. 단, 튜브나 구명조끼는 반입 불가라 안전에는 유의해야 한다. 호텔 안에 있으나 호텔과 개별적으로 운영된다. 호텔 숙박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온천도 따로 있다. 야외 수영장은 여름에만 개장되지만, 한쪽에 있는 온천 풀은 여전히 운영된다. 야외 수영장은 밤에는 야경을 바라보며 쉬기에 좋다. 이 온천의 특징은 목욕치료다. 진흙 치료, 탄산 목욕, 의료 치료 마사지 등이 있는데, 내국인들은 국민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만큼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루다스 온천 Rudas gyógyfürdő
헝가리 내에서 가장 온천물이 좋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다. 그나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느끼기에 뜨끈한 온도이며, 물도 다른 곳에 비해 깨끗하다. 1573년 완공돼 지금까지 몇 번의 개보수 공사를 거쳐 잘 유지되고 있다. 오랫동안 남성 전용 목욕탕이었다가, 2005년부터는 남녀모두 들어갈 수 있게 됐다. 터키인들의 흔적을 읽을 수 있는 곳은 터키식 목욕탕이다. 남녀가 구분돼 있는 유일한 곳으로, 여성은 화요일과 주말에 가능하다. 높은 돔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별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곳 온천수는 만병통치약으로 알려져 있어서 음용도 가능하다. 이곳의 가장 인기는 루프톱 온천.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세체니 온천처럼 크지도 않고 여러 시설이 들어서 있지도 않아서 온천만 즐길 사람에게 적당하다.

부다페스트 온천 즐기기
남성 수영복은 팬츠형 하나, 여성은 원피스와 투피스 비키니만 가능하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래시가드나 랩스커트, 덧입는 겉옷이 있는 쓰리피스, 포피스는 안 된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한국인들은 날씬한 편이니, 몸매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말고 비키니나 원피스 수영복을 입자 자신 있게 입자. 수영장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수영모를 써야 한다.
두경아
레이디경향 취재기자, 여성조선 취재팀장을 거쳐 프리랜서 에디터, 여행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무작정 따라하기 후쿠오카>를 발간했으며, 현재 유럽과 한국을 오가며 <무작정 따라하기 동유럽>, <무작정 따라하기 독일>을 집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