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아그네스와 함께하는 사람들
빅아그네스와 함께하는 사람들
  • 김경선 부장 | 자료제공 넬슨스포츠
  • 승인 2019.05.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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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를 즐기는 브랜드 앰버서더 4인의 이야기

빅 아그네스는 열정과 도전으로 똘똘 뭉친 흥미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을 통해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 공통된 열정을 공유하며 제품 개발에 도움을 받는다.

현지 가이드와 포터들은 우박이 내리는 건 신이 분노했기 때문이라 믿었는데, 결국 절벽 아래 작은 거처에 도착하자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겠다며 손을 들어버리기까지 했습니다.

토미 데인저
토미 데인저

토미 데인저Tommy Danger
빅 아그네스 홍보대사 / <More Than Just Me> 설립자

토미 데인저는 ‘More Than Just Me’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모험을 통해 전 세계에 질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현재는 낭포성섬유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모으기 위해 전 세계 7개 고산에 오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모험 중독자’ 토미입니다. 저는 미국 유타주 파크 시티와 알래스카주 앵커리지를 오가며 다른 이들을 돕는 데에 힘쓰고 있습니다. 6년 전쯤에는 ‘More Than Just Me’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했는데요. 저의 모험을 통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질병 문제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뜻에서 시작했습니다.

LA~보스턴 자전거 투어를 결심했던 2007년 당시 저는 정신과 육체 모두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었습니다. ‘More Than Just Me’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죠. 한 번은 낭포성 섬유증이란 유전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기부금 마련을 위해 미 북서부 시애틀 바닷가부터 남동부 플로리다 데이토나 해변까지 미 대륙 종단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이 ‘More Than Just Me’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고 낭포성섬유증뿐 아니라 다른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졌죠. 그래서 망설이지 않고 전 세계 7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 등반에 도전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전 고산 등반 경험이 그야말로 전무했거든요.

하지만 절친한 친구인 마크 덕분에 2013년 여름에 콜로라도주의 해발 4000m 이상 산들을 오르며 고산에 오르는 법을 빠르게 배워나갔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7개의 산 중 6개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제 남은 건 바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 에베레스트뿐인데, 2019년 5월에 그곳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를 예정입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세 차례 파병되었던 참전용사 션 고빈은 총 거리 3516km를 종주하는 애팔래치아 산맥 하이킹에 나섰습니다.

션 고빈
션 고빈

션 고빈Sean Gobin
빅 아그네스 홍보대사 / 워리어 익스페디션 설립자

션 고빈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수차례 파병되었던 미 해병대 출신 참전용사다. 2012년 애팔래치아 산맥 종주를 다녀온 뒤 그는 장거리 아웃도어 원정을 통해 전역 군인의 트라우마 극복을 돕는 비영리 단체 워리어 익스페디션을 설립했다.

워리어 익스페디션은 전역한 군인들이 장거리 아웃도어 원정을 통해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단체입니다. 2001년부터 약 250만 명의 참전 용사들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전쟁의 트라우마로부터 조금도 자유로워지지 못했죠. 2012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세 차례 파병되었던 참전용사 션 고빈은 총 거리 3516km를 종주하는 애팔래치아 산맥 하이킹에 나섰습니다. 이후 장거리 아웃도어 원정의 치료 효과를 몸소 체험한 그가 직접 설립한 단체가 바로 워리어 익스페디션입니다. 처음 몇 차례 원정에선 자신이 썼던 낡은 군용장비를 활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장거리 하이킹에서 적절한 장비의 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됩니다. 강한 체력을 지닌 군인이었던 그조차 애팔래치아 산맥 위에선 기진맥진할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2014년 ‘아웃도어 리테일러 박람회’에서 빅 아그네스를 소개받았고 지금까지 항상 함께 하고 있습니다.

워리어 익스페디션은 워리어 하이크, 워리어 바이크, 워리어 패들 등 각기 다른 3가지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각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전역군인들에겐 세 가지 혜택이 주어집니다. 장비, 보급품, 그리고 커뮤니티 차원의 지원이지요. 그 중 장거리 아웃도어 원정 완주에 필요한 모든 의류와 용품의 경우는 대부분 무상 기부 형태로 공급받고 있는데, 빅 아그네스로부터는 연간 2만 달러(약 2300만원) 상당의 텐트, 침낭 등 용품을 지원받고 있습니다. 빅 아그네스의 넉넉한 지원이 없었다면 워리어 익스페디션은 절대로 지금까지 이어지지 못했을 거예요.

자칭 날씨 전문가들조차 일기예보를 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정도니까요.

차드 리바스
차드 리바스

차드 리바스Chad Labass
빅 아그네스 홍보대사

차드 리바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뉴포트 비치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서퍼다. 그는 아이들이 서핑하거나 스케이트, 스노보드를 타는 멋진 모습을 촬영하지 않을 때는 아내 캐리와 함께 파도를 타며 새벽 순찰대와 인사를 나누곤 한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 자리한 샌 클레멘터 국립공원은 집에서 불과 30분 거리밖에 안 되는 곳인데도 완전히 다른 세상인 것 같아요. 태평양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서 흙냄새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는 일보다 가슴 뛰는 일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텐트를 설치하고 있을 즈음, 귀를 의심케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근심 어린 표정의 한 커플이 곧 폭풍우가 밀려올 거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죠. 깜짝 놀란 저는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정말로 몇 시간 뒤면, 제 빅 아그네스 텐트들이 계획에 없던 극한 방수 테스트에 돌입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우리는 슈가로프 캠프가 다가올 폭우 속에서 우리의 구원자까지 되리라곤 미처 몰랐습니다. 일기 예보는 정확히 맞았고 우리 가족은 곧 미친 듯이 퍼붓는 폭우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비에 대처하지 못한 다른 캠퍼 가족들이 부랴부랴 짐을 꾸려 차에 싣거나 인근 호텔, 레스토랑으로 대피하고 있었죠. 하지만 우리 가족은 누구 하나 비에 젖지 않았습니다. 슈가로프 캠프의 넓고 단단한 뼈대 덕분이었죠. 그 속에서 음식을 만들고 음악을 들으며 아이들과 카드 게임까지 즐겼죠. 다음날, 서서히 빗줄기가 약해지더니 늦은 아침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밖으로 뛰쳐나가 쌓여있던 에너지를 맘껏 분출할 정도로 비가 잦아들었습니다. 제가 봤던 샌 클레멘테 스테이트 비치의 10월 토요일 아침 중 가장 한산한 모습이었어요. 우리가 공원 전체를 전세 낸 것만 같았죠. 예보대로 오후가 되자 비는 완전히 그쳤고 폭풍을 담대하게 이겨낸 캠퍼들에게 그날 저녁은 아주 특별한 일몰을 선물했죠. 아이들은 전날 밤 먹지 못했던 스모어를 실컷 만들어 먹었고 카탈리나섬에서 해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쯤엔 온 가족이 캠프파이어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번 주말 여행은 우리의 자동차 캠핑 모험에 한 줄 평을 남겨주었습니다. “Small Car, Big Agnes”.

당초 계획에는 평소 잔잔하고 물살이 약한 하천을 26개 정도 건너기로 했었는데 이미 홍수가 모두 휩쓸고 지나가 버렸더군요.

벤 헌든
벤 헌든

벤 헌든Ben Herndon
빅 아그네스 홍보대사

벤 헌든은 험준한 북부 아이다호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열정적인 아웃도어 마니아이기도 한 그는 2016년부터 빅 아그네스의 브랜드 홍보대사로 함께 하고 있다.

삼촌과 떠난 몬타나 백패킹은 지난번 아이다호-오레건-워싱턴주 사이 험준한 경계 지역인 니미푸에서 진행했던 백패킹의 후속이었습니다. 삼촌에게 5일 동안 북서부 내륙의 험준한 계곡 지대를 여행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흔쾌히 동의한 삼촌은 소시지와 스테이크를 들고 약속 장소에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자 줄곧 내리치던 폭풍우와 천둥 번개가 그쳤어요. 다만 앞서 내린 폭우가 우리가 지나려 했던 하천들을 뒤덮은 뒤였고 이 중 상당수가 범람해 물이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원래 우리가 구상한 건 왕복 코스였지만 중간 지점쯤 다다르자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싶었습니다. 당초 계획에는 평소 잔잔하고 물살이 약한 하천을 26개 정도 건너기로 했었는데 이미 홍수가 모두 휩쓸고 지나가 버렸더군요. 캠핑장으로 가기 위해 작은 하천 하나를 간신히 건너면서 과연 남은 코스를 제대로 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그날 하이킹 도중 삼촌의 텐트가 없어진 점이 결정을 쉽게 해줬죠. 다행히도 제가 갖고 있던 빅 아그네스 카퍼스퍼 초경량 텐트가 2인용이어서 그날 밤은 제 텐트에서 삼촌과 같이 잠을 청했습니다. 이튿날 일어난 우리는 결국 왕복 코스 일정을 대폭 수정하기로 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익사하고 싶지 않아서였고 두 번째는 삼촌의 잃어버린 텐트를 찾기 위해서였죠.(8km 거리를 되돌아 결국 찾았죠!)

이슬이 내린 야생화 가득한 산길 위, 우리 뒤에서 외로워 보이는 카우보이 하나가 말을 타고 나타났습니다. 우리를 앞질러 가다 말고는 멈춰 선 그가 묻더군요. “가는 동안 노새에서 뭔가 떨어지는 게 없는지 좀 봐줄 수 있소?” “물론이죠. 어디로 가는 중이신가 봐요?” “저 뒤에 성질 더러운 노새는 원래 내 친구 거요. 그런데 그 친구 말이 죽었지 뭐요. 그래서 내가 대신 챙겨왔소” 그러면서 카우보이 친구의 말이 죽은 곳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우리가 원래 건너려다 삼촌의 잃어버린 텐트를 찾기 위해 포기하고 돌아섰던 바로 그 강이더군요. 우리가 처음 계획했던 하천 횡단을 그대로 감행했다면 그야말로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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