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묻지 않은 이국의 도시 마나도
때 묻지 않은 이국의 도시 마나도
  • 글 사진 김지민
  • 승인 2019.04.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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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 참치 원정 1탄

이번 여정은 12일 일정으로 떠난 참치 원정이다.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섬인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섬은 직항이 없어 휴양지인 발리를 거쳐야 했다. 전반부는 술라쉐시섬 북부의 주도인 마나도에서 낚시 워밍업을 하고, 이후 본격적인 남방 참다랑어를 잡기 위해 남부 섬인 부톤으로 향하기로 했다.

때 묻지 않은 이국의 도시 마나도.
때 묻지 않은 이국의 도시 마나도.

경유지인 발리에선 별다른 일정 없이 하루만 묵고 시내만 구경하는 것으로 그쳤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다소 후회스럽다. 이렇게 험난한 여정일 줄 알았다면 매 순간을 소중히 할 것을. 12일 동안 온전한 기분으로 호텔 조식을 이용해 본 것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발리 시내에서 들린 곳은 스쿠버다이빙 상점이 아닌 낚시점이다. 이미 한국에서 필요한 장비를 챙겼지만, 행여나 빠트린 것이라도 있으면 술라웨시섬에 들어가기 전에 사두어야 한다. 발리의 낚시점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제법 최신식 낚시용품들을 팔고 있었다.

발리의 한가로운 풍경을 걸으면서 묘한 기분이 든다. 세계적인 휴양지답게 해변가에는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과 상점, 카페들이 적당히 어우러지고 있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표정 하며, 청소차가 지나간 것 같은 깨끗한 거리. 심지어 힌두 문화의 영향을 받은 제단과 잿밥마저도 아름답다. 나는 지금 전투를 앞둔 군인의 심정이라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힌두 문화의 잿밥조차 예쁘게 보이는 발리의 거리.
힌두 문화의 잿밥조차 예쁘게 보이는 발리의 거리.

발리에서 술라웨시섬 마나도까지는 무려 2시간 반이 소요된다. 다음날 일행과 함께 마라도에 입성했다. 그러다 보니 하루 사이 남반구와 북반구를 두 번이나 오가게 되었다. 특이하게도 마나도 인근 지역은 해발이 높은 곳이 많아서 긴 팔, 긴 바지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그만큼 인도네시아에서는 비교적 추운 곳이다. 그래 봐야 적도 부근일 텐데 말이다. 아직 마나도의 기후를 겪어보지 못한 나는 상상이 안 된다. 인도네시아 여행하면 수도 자카르타가 있는 서부 지역과 발리를 떠올리기에 술라웨시섬은 아직 낯설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영국 BBC 방송이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채널에서 다루었던 다큐멘터리가 전부. 더욱이 마나도는 베일에 감싸여진 곳이었다.

‘K’자 모양을 한 술라웨시섬은 한반도 면적의 약 3~4배, 해안선 길이는 수십 배에 이를 만큼 거대한 섬으로 세계적으로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원시 자연의 보고이기도 하다. 마나도는 이름 때문에 섬의 이름으로 착각하지만, 실은 마나도라는 이름을 가진 도시다. 술라웨시섬의 주도로 원래 명칭은 코타 마나도, 혹은 므나도라 부른다. 여기서 ‘코타’는 도시를 의미하기 때문에 ‘마나도 시(市)’ 정도의 의미다. 말레이시아의 유명 휴양지인 코타 키나발루역시 ‘키나발루 시(市)란 뜻이다.

세계에서 네 번재로 큰 마나도의 예수상.
세계에서 네 번재로 큰 마나도의 예수상.

마나도에서 첫날밤을 보낸 나는 호텔 바로 앞 정원을 산책했다. 그러자 아침 햇살을 잔뜩 머금은 해변이 펼쳐진다.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앞으로 며칠 간 이곳에서 격전을 벌여야 한다. 앞서 몰디브에서 이렇다 할 대물을 잡지 못했기에 심적 부담이 크다. 못 잡으면 귀국도 없다는 절박한 심정. 내 이름표에 금이 갈 수도 있는 여정이다. 때마침 바다를 보는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작은 물고기들, 또 그것을 노리는 수많은 새 때가 포착됐다. 분명 저 아래는 대물들이 도사리고 있겠지. 내일 있을 낚시가 은근히 기대되는 대목이다. 낚시에 앞서 우선은 마나도 시를 둘러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들린 곳은 일명 ‘날으는 예수상’으로 마나도의 대표적인 볼거리다. 기존에 예수상 하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거대 예수상이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떠올리곤 하는데 이곳 예수상은 모양이 특이하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예수상으로 높이만 50m에 약 20도 정도 기울어진 모습이 위압감과 웅장함을 자아낸다.

낚시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마나도의 갯바위.
낚시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마나도의 갯바위.

식사를 위해 온 곳은 구불구불한 산악 도로를 타고 30~40분 정도 올라온 산악 지역이다. 이때만 해도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예상 못 했는데 주문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깔리는 반찬에 놀라고 말았다. 여기서는 빠당Padang이라 부르는 인도네시아의 백반 정식과도 같은 식사다. 언뜻 보면 한식 같아 보이는데 향신료를 많이 쓰지 않아 우리 입맛에 얼추 맞는다. 여러 명에서 반찬을 공유한다는 점도 우리 식문화와 빼닮았다. 빠당은 먹은 만큼 계산한다. 국물 음식은 숟가락만 대도 한 그릇으로 치고, 꼬치구이나 고형 음식은 개수로 친다. 어떻게 보면 손님상에 차려진 미니 뷔페 같기도 하다. 찰밥은 인당 2~3개씩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맥주까지 더하니 너무 푸짐하고 배부른 식사였다. 다 먹으니 직원이 와서 먹은 음식을 체크하기 시작한다. 여섯 명에서 배불리 먹으니 식사비가 무려 51만5천 루피아가 나왔다. 원화로는 약 4만 원이다.

다음 날 새벽, 꼭두새벽부터 일어난 나는 영화배우 장동직 씨와 함께 낚시를 시작했다. 혹시 모를 빈작에 대비하기 위해 트롤링 낚시까지 동원하는 등, 이제는 어종과 조법을 가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 새벽,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배를 타려고 선착장에 들어가는데 수백 마리의 열대 밴댕이가 튀어 올라 자살하는 장면이 포착된 것이다. 분명, 물속에 포식자가 들어온 것이 틀림없었다. 나와 장동직 씨는 서둘러 채비를 내렸다. 우선은 참돔용 타이라바에 선착장에 튀어 오른 밴댕이를 꿰어 발밑으로 내렸다. 그런데 채비가 멈추질 않는다. 선착장인데도 수심이 엄청나게 깊다. 나중에 확인했더니 40m가 나왔다. 본격적인 액션을 주기 위해 바닥에서 미끼를 살짝 띄우는데 순간 턱 하는 강력한 입질이 들어왔다. 낚싯대는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처박혔다. 힘으로 보아 처박힌 낚싯대를 세우기가 어려워 보이니 우선은 양손으로 잡고 버티는데 약 0.5초 지났을까요? 낚싯대가 하늘로 퉁겨 오른다. 채비를 걷어보니 타이라바에 달린 두 바늘이 뜯겨 있었다. 순간 난폭한 포식자 바라쿠다가 생각났다.

영화배우 장동직 씨가 잡은 그레이트 바라쿠다.
영화배우 장동직 씨가 잡은 그레이트 바라쿠다.

베이트 피시 습격 사건을 뒤로 한 나는 배에 올라 레드 스네퍼를 찾아 떠났다. 문제는 이 지역이 포인트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끼리 포인트 될 만한 곳을 눈대중으로 찾으려니 맨땅의 헤딩이 따로 없다. 나름대로 바다 새떼가 모인 곳을 노려보기도 하고, 근사하게 생긴 갯바위 주변도 노려보았지만, 허사다. 물속에 고기는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국내에서 세 명 밖에 없다는 프리 다이버 전문가이자 스쿠버 다이빙 강사(인스트럭터)인 김태훈 씨까지 대동했다. 좀처럼 입질이 없자 김태훈 씨는 장비를 매고 물속에 들어가 살피기를 반복했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내가 노리고자 했던 곳은 수심 20~40m로 떨어지는 계단식 여밭이다. 산호가 발달해 물고기의 서식 여건도 제법 좋았다. 그곳에는 나폴레옹 피시나 대형 트리거 피시 같은 덩치 큰 어종이 돌아다녔다. 문제는 우리가 준비한 인조미끼를 덥석 물 공격성 어류가 없다는 것이다. 레드 스네퍼처럼 루어에 반응할 만한 포식자가 없다면, 엉뚱한 포인트에서 시간만 낭비하게 되는 꼴이다. 이후 우리는 채널의 급심이나 간출여가 산재한 곳도 노려보았으나 허사였다. 이런 곳은 차라리 스쿠버다이빙으로 들어가 수중 관찰하기에 좋은 포인트다. 종일 이어진 낚시는 그렇게 소득 없이 끝나고 말았다.

다음 날이 밝았다. 꼭두새벽에 일어난 나와 장동직 씨는 마나도에서의 마지막 낚시에 도전했다. 대상어는 여전히 대형 퉁돔(스네퍼)지만, 지금은 반찬 가릴 때가 아니다. 배가 출항하자 한쪽에서는 스콜을 퍼붓는다. 다행히 비구름은 우리 쪽이 아닌 반대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이 날은 계속된 꽝에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트롤링 장비였다. 상업 낚시가 성행하지 않은 마나도는 낚시 포인트를 잘 아는 선장도 가이드도 없었다. 그나마 우리가 취할 방법은 조금이라도 이곳을 잘 아는 전문가나 어부를 섭외하는 것이다. 연락이 닿은 사람은 현지에서도 트롤링 낚시로 일가견이 있다는 낚시 전문가였다.

술라웨시섬의 특산품인 훈제 가다랑어(차칼랑).
술라웨시섬의 특산품인 훈제 가다랑어(차칼랑).

그분의 리더 하에 나트롤링(인조 미끼를 바다에 드리운 채 배를 끌어 포식자의 입질을 유도하는 낚시)을 시도한 끝에 장동직 씨가 1m에 달하는 바라쿠다를 잡아냈다. 바다쿠다는 열대 바다에서는 가장 포악한 어류 중 하나다. 전 세계 20여 종이 서식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크게 자란다는 그레이트 바라쿠다는 최대 2m까지 성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끔 영화를 보면 수백 마리 씩 떼 지으며 토네이도 같은 모양을 만들어 장관을 이루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수백 마리가 몰려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먹이를 사냥하는 그야말로 하이에나 같은 녀석이다. 그러니 이 근방에 한 마리만 잡힐 리 없다. 나는 후속타를 위해 열심히 낚시했는데 결국에는 한 마리 잡지 못한 채 철수해야 했다. 아마도 좀 전의 녀석은 길 잃은 하이에나였나 보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마음은 편하겠다.

다음 날, 한 마을에 들어서자 매캐한 연기가 주변을 휩쓸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술라웨시섬에서 가장 유명한 훈제참치 거리다. 가만 보니 내가 잡아야 할 생선이 이곳에서 모조리 훈제되는 느낌이다. 차칼랑이라 불리는 이 생선은 사실 우리 입맛에도 익숙한 가다랑어였다. 가다랑어는 주로 참치 캔 통조림 원료로 쓰이지만, 이곳에서는 특별히 훈제 참치로 거듭나고 있었다. 훈제는 주로 코코넛과 먹다 남은 옥수수껍질을 이용하는데 우리 돈으로 약 1600원이면 한 마리를 사서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그냥 뜯어먹기도 하지만, 이곳의 매운 특제 소스와 곁들여 먹기도 한다.

다음 날에도 낚시는 이어졌지만, 마나도의 바다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계속된 스콜, 이후 떠오른 쌍무지개, 그리고 아름다운 황혼을 뒤로하며 마나도에서의 아쉬운 여정을 마무리해야 했다. 이후 나는 항공편을 이용해 남부 섬인 부톤으로 향했다. 부톤에는 전통적으로 참치 잡이로 생계를 꾸려가는 어부들이 살고 있다. 이제 그곳으로 향한다. (2부에서 계속)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유튜브 ‘입질의추억tv’ 채널 및 티스토리와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다.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한 다수 방송에 출연 중이다. 현재 쯔리겐 필드테스터 및 NS 갯바위 프로스텝으로 활동 중이며,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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