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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익어가는 시간2
술이 익어가는 시간2
  • 김경선 부장 | 양계탁 사진기자
  • 승인 2019.03.24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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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평양조장 투어

‘전통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술, 막걸리다. 오랜 세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져 내려온 막걸리의 맛은 한때 부침을 겪었지만 2000년대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인의 입맛은 물론 외국 관광객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은 우리 술의 맛과 가치가 궁금했다.

87년 전통 우리술 명가
신평양조장

시큼 텁텁한 향이 코끝을 찔러댔다. 아, 미간 사이가 자연스레 접힌다. 익숙한 막걸리 냄새다. 오래된 시멘트 바닥, 빛바랜 벽, 삐걱대는 기계들. 양조장은 마치 유물처럼 신평리에 박혀있었다. 이 오래된 유물들 사이에서 87년 된 전통주, 백련막걸리가 나온다.

신평양조장은 충남 당진시 신평면에 자리한 오래된 양조장이다. 충남이라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2시간만 달리면 닿는 거리. 오가는 이 하나 없는 썰렁한 면소재지 끄트머리에 오래된 적산가옥과 양조장이 자리한다. 3대에 걸쳐 양조장을 유지한다는 게 쉽지 않지만 신평양조장은 부침 속에서도 80년이 넘는 세월을 버텨왔다.

양조장의 시작은 1933년, 김동교 대표의 할아버지가 신평양조장을 설립하면서부터다. 그 뒤를 아버지 김용세 옹이 물려받았고, 아들 김동교 대표로 이어졌다. 김동교 대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표직을 물려받은 것이 불과 몇 년 전. 여전히 김용세 옹은 아들과 함께 양조장을 운영중이다.

김용세 옹은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선정한 전통주 명인이다. 오랜 세월 전통주를 만들며 우리술을 보존한 점을 인정받았다. 백발이 성성한 명인의 자세는 여전히 곧았다. 무심한 듯 덤덤하게 세월을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전히 젊은이 못지않았다. 전통주에 대한 신념, 고집, 백련막걸리에 대한 자부심은 노인의 말속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당진 쌀로 만든 프리미엄 전통주
신평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은 총 네 가지로 백련막걸리 스노우SNOW, 미스티MISTY, 미스티 살균, 백련 맑은술이다. 스노우, 미스티는 탁주이고, 맑은술은 약주다. 인상적이게도 모두 당진에서 나고 자란 쌀로 만든다. 특히 미스티와 맑은술은 당진의 프리미엄 쌀 해나루를 사용한다. 고가의 국산미로 전통주 제조가 쉽지 않은 요즘, 신평양조장은 당진쌀을 고집해 더 나은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명인을 따라 들어선 양조장은 역사 그 자체다. 여기저기 손때 묻은 장비가 그랬거니와 100년 넘은 거대한 술항아리며 빛이 바랠 대로 바랜 상장, 특히 1938년 주류품평회에서 받은 상장까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시간의 무게가 잔뜩 내려앉은 공간을 헤치고 들어서면 술이 익는 소리가 들린다. 거대한 독에서 보글보글 숨을 쉬며 익어가는 막걸리. 모든 것이 현대화된 요즘 시대에 시간의 더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은 숭고하기까지 했다.

보글보글 술이 익는 곳
크지 않은 양조장에서 백련막걸리와 맑은술이 나온다. 백련막걸리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약 보름, 약주는 3달 정도 소요된다.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쌀을 깨끗이 씻어 1시간가량 불리고 물을 빼낸다. 다음은 고두밥 찌기. 술이 만들어지기 좋을 만큼 되게 밥을 지으면 냉각조에 옮겨 담아 적정온도로 식히고 누룩을 넣어 3일간 쌀누룩을 만든다. 에디터가 양조장을 찾은 날 운 좋게도 쌀누룩이 완성됐다. 김용세 명인의 권유로 쌀누룩을 입에 넣고 씹어봤다. 식감은 꼬득꼬득한데 시큼한 맛이 느껴졌다. 3일간 효모가 열심히 일을 해 쌀누룩이 잘 만들어졌다는 소리다.

쌀누룩이 완성되면 가장 중요한 주모(밑술)를 만들어야 한다. 어머니 술이 좋아야 자식 술도 좋은 법. 쌀누룩과 물, 효모를 넣어 주모를 만드는 과정은 4일, 다시 주모를 더 큰 독에 옮겨 고두밥, 물을 추가해 양을 늘린다. 이 과정을 1단 담금이라고 하며 4일이 걸린다. 1단 담금주에 고두밥과 물을 추가해 양을 더 늘린다. 이때 백련막걸리의 하이라이트 백련잎을 넣어 향과 맛을 변주한 뒤, 일주일간 숙성시킨다. 마지막은 술을 걸러내는 과정. 여기에 물을 섞어 도수를 맞춘 후 상품으로 출하한다.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유통망 확대
양조장 옆에는 미곡창고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조한 백련양조문화원이 있다. 양조장과 대조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공간은 신평양조장의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자 막걸리 체험공간이다.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는 전통주를 육성하기 위해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을 공모했는데, 1기로 선정된 두 곳 중 하나가 신평양조장이다.

찾아가는 양조장은 짧은 시간에 막걸리를 만들며 전통주를 이해하고 시음하는 프로그램이다. 백련막걸리는 세 번의 숙성과정을 거치는 삼양주지만 찾아가는 양조장 프로그램은 단양주 빚기 체험을 진행한다. 고두밥을 직접 만들어 누룩과 물을 넣고 술을 만든 후 집에서 일주일을 숙성해 걸러 마실 수 있다. 보통 가족 단위로 많이 찾고, 일본인 등 외국인의 방문도 잦다. 현재는 15인 이상 단체 체험만 진행하고 있지만, 올해 새롭게 양조장 건립을 앞두고 있어 차후 개인 단위의 체험객들도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중이다.

지방의 작은 양조장이 이렇게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공간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점이 신기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동교 대표는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에서 근무한 재원이었다. 2009년 가업에 뛰어든 후 대기업에서 익힌 마케팅 능력을 살려 백련막걸리를 재정비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백련막걸리는 2009년 청와대 전시품목 막걸리로 선정됐으며, 2012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살균탁주 부문 대상, 2013년 영국주류품평회 브론즈 메달, 2014년 삼성 회장단 건배주, 2016년 문체부의 지역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여행 지역 명사 선정, 2018년 김용세 옹의 대한민국식품명인 지정 등의 쾌거를 거뒀다.

백련막걸리는 전국적으로 유통망을 확대했다. 주점은 물론 인천공항면세점, 홈플러스에 유통중이며, 조만간 이마트에도 입점 예정이다. 막걸리가 ‘나이든 사람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2011년 서울 강남역에 요리주점 <셰막>을 열고 직영점으로 운영하며 다양한 연령층에 막걸리를 알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신평양조장
충남 당진시 신평면 신평로 813
koreansul.co.kr / 041-362-6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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