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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건너 온 '런던 브리지'
대서양을 건너 온 '런던 브리지'
  • 앤드류 김 | 앤드류 김
  • 승인 2019.03.0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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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강에서 미서부 모하비사막으로 이민 온 다리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 Falling Down, Falling Dawn, My Fair Lady(런던 다리가 무너질거예요. 무너질거라고요. 무너진다니까요. 나의 아름다운 여인아)’ 미국이나 유럽 아이들의 인기 동요이자 영국의 구전 동요인 ‘London Bridge Falling Down’의 구절이다. 이 동요는 17세기 무렵 영국에서 가장 일찍 만들어진 영어 동요로 다양한 버전으로 불린다. 가사는 다리가 무너질 것 같은 이런 위급한 일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어떤 권력 가진 듯한 여인에게 하소연 한다. 무너진 다리를 철봉으로 고쳐도 휘어지고 부러지고, 핀과 바늘로 고쳐도 녹슬고 구부러져 은과 금으로 다리를 지어야겠다는 재미난 내용의 가사가 이어진다.

런던 시내 템스강에 이 다리가 최초로 세워진 것은 기원전 로마 군사들이 영국을 점령했을 때였다. 1750년대까지 런던 템스강에 다리는 런던 브리지 달랑 하나뿐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홍수에 유실되어 만들고 또다시 만들어지다가 1831년 존레니John Rennie가 디자인하고 설계해 튼튼한 화강암으로 다리를 세웠다. 그러나 곧이어 영국에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하루에 1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오고 가는, 그 당시 세상에서 제일 번잡한 다리가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1960년 들어오면서 다리가 점점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강물 밑으로 내려앉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옛날부터 내려오던 전래동요 ‘런던 브리지가 무너져요’ 내용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런던시의회는 이 다리를 철거하고 새 다리를 놓기한다. 그리고 시의회는 이 다리를 경매시장에 내 놓아 새 다리 건설재정을 돕기로 한다.

1968년 4월 18일, 120만 달러부터 스타트를 알리는 경매인의 힘찬 소리가 울리는 순간 맨 뒤에 앉아있던 한 중년의 사내가 외쳤다. “120만 스타트 가격에 더블! 즉 240만 달러에 다시 60만 달러 더 얹혀서 도합 300만 달러!” 경매장 안은 쥐 죽은 듯 고요만이 흘렀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 런던시의회 초유의 경매물건인 무너져가는 다리에 대해 모두가 유찰될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더 이상 경쟁자가 나타지 않게 한 번에 칼을 꺼낸 그 사람 이름은 미국인 로보트 맥컬럭Robert McCulloch이었다.

그는 위시콘신주 밀워키에서 1943년에 맥컬럭 모토 코퍼레이션McCulloch Motors Corporation을 창업하여 벌목용 톱을 제조해서 자수성가한 기업대표였다. 1930년대 우연한 기회에 애리조나주와 캘리포니아주 경계에 파커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인공호수 하바수Havasu에 매료되어 그 옆으로 사업체도 이전하였다. 이런 그가 어느 날 아침 우연히 본 조간신문 기사 ‘런던 브리지 경매시장 등장’이란 타이틀 보는 순간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렸다. ‘저 다리 모하비 사막 안의 아름다운 하바수 호수에 옮겨와 역사 관광자원으로 만들면 어떨까?’ 이렇게 해서 그가 런던브리지 경매시장에 왔다.

다리 구입에 성공한 다음날부터 다리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거대한 런던 브리지 화강암 벽돌 하나하나에 일련번호 매기고 상단부에서부터 해체 후 바로 템스강 아래 정박한 오픈 화물선에 싣고, 대서양을 건너 파나마 운하를 거쳐 미서부 해안으로 올라와 롱비치 항구에 입항했다. 그리고 롱비치 항구에서 하바수 호수까지 무려 500km 거리 모하비사막을 달려 최종 도착했다. 런던 한복판 템스강에서 출발해 미국 애리조나주 하바수 호수까지 장장 8천키로의 고단한 이민 길이었다. 화강암 벽돌만 1만276개, 총 무게 13만 톤. 운송비만 무려 560만 달러 정도 들었으니 경매 낙찰가 300만 달러의 곱절이 들어간 셈이다.

지금부터 190년 전 다리 건축의 일인자 영국인 존 레니는 일생에 마지막 다리 공사를 수주받는다. 그 다리가 바로 오늘날 애리조나주로 이민 온 런던 브리지다. 노쇠한 존 레니는 결국 완성을 못보고 그의 아들 레니 영거Rennie Younger에 의해 완성이 되고 그래서 런던시민들은 이 다리 애칭을 레니브리지라고 불렀다. 다리 위 가로등 아랫부분을 자세히 보면 ‘T.POTTER & SONS/SOUTH MOLTON ST. W’라는 공장명과 주소도 선명히 보인다. 그 옛날 성탄절과 새해에는 수많은 런던의 젊은이들이 다리의 가로등 아래서 템스강을 바라보며 사랑을 언약했다. 런던 브리지를 만든 존 레니도 그리고 다리의 이민을 결정한 맥컬럭도 그리고 다리를 지나다녔던 수많은 그 옛날의 런던시민들도 이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라스베가스에서 불과 두시간 반 정도 거리의 모하비 사막에 만들어진 아름다운 인공호수 하바수로 이민 온 런던 브리지 걸으면서 다리에 얽힌 역사 이야기와 그 옛날 런던의 수많은 이가 지나다녔을 다리의 숨결을 한 번쯤 느껴 보는 것도 좋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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