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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아래 낭만마을 해방촌
남산아래 낭만마을 해방촌
  • 글, 사진 조혜원 기자
  • 승인 2019.03.18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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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부터 밤까지 마을 구석구석 엿보기

해방촌에선 빼곡한 건물 사이로 하늘을 기웃거리면 어디서든 남산타워가 보인다. 전 세계 사람들이 모여 살아 걸음마다 세계여행을 하는 듯한 이국적인 동네. 가파른 비탈에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마을에서 파도처럼 일렁이는 골목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걸었다.

남산 아래 자유로운 동네 해방촌은 해방 후 피난민들과 해외에서 돌아온 교포, 한국전쟁 후엔 월남한 실향민들이 임시로 거주하며 형성된 마을이다. 해방촌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이른바 ‘김치 박스 게이트’다. 미군 부대 담벼락을 장식하고 있는 전통 옹기로, 1959년부터 자리를 지켜온 한신 옹기의 도자기다. 전통 옹기엔 주로 김치를 담아두는 것이라 알고 있는 외국인들이 이 길목을 ‘김치 박스 게이트’라 불렀다. 해방촌을 깊숙이 둘러보고 싶다면, 이 ‘김치박스게이트’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는 게 좋다. 마을 정취를 느끼며 걷고 싶더라도, 버스를 타고 해방촌 오거리에서 걸어 내려오며 둘러보길 권한다. 오르막이 꽤 가파르고 좁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에 지쳐버릴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도와 차도 구분 없이 아슬아슬 다녀야 했는데 2018년 말, 보행로를 만들면서 차도 폭을 좁히고 제한속도는 30km이하로 낮췄다.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보행로 정비 입간판 설치 등 '다문화흔적여행길'을 단장하고 있다. 찻길에서 벗어나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면 주택가 사이에 작은 가게들이 숨어있다. 낡음과 새로움, 세월과 트렌디가 사이 좋게 어울리는 동네, 서울의 비탈진 마을로 초대한다.

이 언덕을 오르게 하는 이유, 해방촌 맛집

수수도
해방촌 신흥시장 입구 바로 옆 하얗고 단정한 밥집 ‘수수도’. 1층은 규모가 작아 보이지만 옆에 난 좁은 계단을 오르면 또 다른 공간이 나타난다. 2층은 더 넓고 시장 앞 골목길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멋진 뷰가 펼쳐진다. 수수도가 문을 연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벌써 입소문이 자자해 식사 시간엔 줄을 서야 한다. 매일 아침 살아있는 생선을 손질해 준비하고 간장새우는 어머니가 직접 담가주신다. 서울 언덕 위 마을에서 정성스럽고 건강한 일본 가정식을 맛 볼 수 있는 곳이다.

시장횟집
신흥시장 안에 ‘시장횟집’이라는 이름으로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맛집이 숨어있다. 탱글탱글한 알이 듬뿍 든 알탕이 단돈 6천원. 아귀찜도 수준급 맛을 자랑한다. 저렴한 가격과 비례하는 맛일 거라 생각하면 서운하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정성으로 내는 음식이라 깊은 맛이 느껴진다. 얼마 전 TV프로그램의 도움으로 깔끔하게 새 단장을 마쳐 이젠 식사를 하려면 번호표부터 손에 쥐어야 한다. 오래된 작은 식당이 조용한 신흥시장에 북적북적 활기를 가져왔다.

노아
노아는 해방촌의 터줏대감 같은 식당이다. 해방촌이 지금만큼 유명해지기 전부터 조용한 언덕 위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노아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든다. 조미료는 넣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맛집으로 소문나있다. ‘백 명이 한번 먹는 음식보다 한 명이 백 번 먹는 음식을 만들고 싶다’, ‘재료보다 뛰어난 요리사는 없다.’ 가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런 문구들이 노아의 자부심을 보여준다. 잘게 썬 양송이를 듬뿍 올린 ‘진정한 버섯 피자’와 ‘봉골레’가 인기메뉴다.

여행도 일상처럼, 해방촌 인싸들의 카페와 펍

널 닮은 공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그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일. 그리고 그 편지를 미래의 어느 날 서로에게 보내는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카페 ‘널 담은 공간’. 엽서를 구매해 편지를 쓴 후 봉투에 넣고 씰링 왁스로 멋진 도장까지 꾹 찍으면 마무리된다. 그리고 카페 한 쪽 벽을 꽉 채운 365칸의 편지함 중 원하는 곳에 넣으면 1년 후 그 날짜에 발송해준다. 물론, 커피와 마카롱은 그 낭만에 달달함을 더 할 만큼의 맛이다.

론드리프로젝트
해방촌 오거리로 올라가는 가파른 비탈길에 자리한 이곳은 카페인지 빨래방인지 한국인지 외국인지 모호한 곳이다. 빨래방과 카페가 한 공간에 있어 빨래하는 동안 여유롭게 커피 한 잔을 할 수 있다. 한국에 짧게 머무는 외국인, 작은 원룸에 사는 해방촌 사람들이 주로 애용한다. 온통 하얀 공간은 세탁을 마친 뽀송한 느낌이 든다. 빛이 잘 드는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 동네 주민이 된 듯 나른하고 한가로운 오후를 보낼 수 있다.

오리올
카페이자 펍인 오리올 그린은 뒤로는 늠름한 남산을, 앞에는 멋진 서울의 도시 풍경이 발아래 깔린다. 가수 정엽이 운영해 유명해졌지만 한번 왔던 손님은 맛과 풍경에 반해 꼭 다시 찾게 되는 곳이다. 6시 이전엔 카페와 비스트로로 운영되고 6시 이후엔 펍으로 변신한다. 1호점의 인기에 힘입어 신흥시장 내부에 1호점인 오리올 케이크도 문을 열었다.

The royal food&drink
해방촌 느낌 물씬 나는 곳에서 와인 한 잔하고 싶다면 더 로얄 푸드 앤 드링크를 추천한다. 입구는 작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서면 마법처럼 자꾸 새로운 공간으로 가는 길이 이어진다. 1층은 자유로운 비스트로 느낌이고 좁은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루프탑은 유럽의 어느 다락방 같다. 캐나다인 남편과 한국인 부인이 운영한다. 샌드위치에 생맥주나 와인, 칵테일을 곁들이기에 좋다. SNS에서 입소문 난 루프탑 좌석은 일몰 30분 전후로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골목대장처럼 동네 구석구석 탐방하기

Storage Book & Film
경사진 언덕에 아슬아슬하게 자리한 동네서점 스토리지 북 앤 필름은 독립출판서점의 안내자 같은 곳이다. 책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책 만들기 클래스나 북 토크 등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많은 독립출판물 제작자와 서점 주인이 이곳을 거쳐 갔다. 작가의 개성이 뚜렷한 책을 들춰보다 보면 책이 나에게 ‘좋아하는 일을 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곳에선 다양한 형태의 독립출판물과 사진집, 해외서적, 음반, 엽서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고요서사
반듯한 벽돌집 1층에 자리한 작은 책방.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느낄 수 있는 ‘내면의 고요’와 박인환 시인이 일제강점기 때 운영했던 서점 <마리서사>를 떠올리며 <고요서사>라 이름 지었다. 고르고 고른 소설·시·에세이로 서가의 중심을 채우는 ‘문학 중심 서점’을 지향한다. 주인의 안목으로 채워진 서가는 나와 닮은 취향을 발견하는 반가움이기도 하고 새로운 모험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골라 구매하고 따뜻한 빛이 듬뿍 드는 창가에 앉아 몇 페이지 넘겨보다 가도 좋다.

108하늘 계단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만든 신사로 가는 계단이었다. 하늘로 향하듯 높고 가팔라 하늘 계단이라 불렸다. 공동수도에서 물을 길어다 쓰던 시절엔 어머니들이 고단한 삶을 지고 오르내리던 곳이다. 2018년 가파른 계단 가운데에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됐다. 이젠 불편한 어르신들도, 휠체어를 탄 사람도 좀 더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계단 아래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걸 바라보면 홍콩의 어느 골목길 같고, 계단 위에서 보는 풍경은 서울의 일상이 느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친다.

신흥시장
경리단길 맞은편인 해방촌 초입의 아랫동네뿐 아니라 언덕 위까지 사람들을 불러모은 일등 공신은 바로 신흥시장이다. 2016년부터 서울시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돼 신흥시장이 활성화되며 죽은 듯 했던 시장이 조금씩 활기를 띠고 있다. 시장 내에 30년 된 횟집은 식사 시간이 되면 줄이 길게 이어지고, 예쁜 케이크 가게도 들어왔다. 투박하고 무채색인 신흥시장 안에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고 있는 오락실이 생기고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작은 사진관도 생겼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라 금방 한 바퀴를 돌 수 있지만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식료품점과 트렌디한 카페가 나란히 자리한 풍경에 발걸음이 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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