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한복판, 황금 참치를 찾아서
인도양 한복판, 황금 참치를 찾아서
  • 글 사진 김지민
  • 승인 2019.02.13 13: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몰디브 참치낚시

몰디브는 8박 10일 일정으로 떠났다. 저비용 항공사를 이용해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한 뒤 비행기를 갈아타고 몰디브의 수도 말레 공항에 도착했다. 오는 동안 푸른 산호초 바다를 기대했지만, 밤이라 아무것도 안 보인다. 픽업 차량으로 10분간 달려서 도착한 곳은 공항이 자리한 섬 훌후말레의 한 호텔. 방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을 먹은 후 몰디브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끝났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수도 말레
오전 6시에 눈을 떴다. 도착했을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이국의 낯선 향기가 느껴진다. 동네 골목을 걷다보니 공기도 그렇고 거리고 그렇고 정말 깨끗하다. 바닥에 누워도 옷에 흙 하나 묻지 않을 것 같은 아스팔트 길. 여기에 열대 나무가 초록의 싱그러움을 더했다.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귓가를 때리는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백색 소음. 귀를 기울이자 파도 소리다. 어디서 나는가 싶어 쫓아가보니 내가 묶었던 호텔 건물 사이에서 들렸다. 나도 모르게 이끌려 들어간 좁다란 골목길. 그 골목길이 끝나자마자 내게 펼쳐진 풍경 하나. “이야~ 이것이 몰디브구나.” 우리나라로 치면 영종도 같은 섬인데 이런 해변이 있을 줄이야. 몰디브하면 리조트 휴양인데 그냥 리조트에 가지 말고 여기서 수영하고 놀아도 될 것 같은 곳이었다.

훌후말레는 선착장부터 물빛이 달랐다. 흔히 말하는 옥빛 또는 에메랄드 물색. 왜 이런 색이 나는 걸까? 물색은 바닥 지형과 관련이 있다. 얕고 평평한 바닥에는 오랜 침식으로 쪼개진 산호 가루가 마치 밀가루처럼 곱게 깔렸는데 이것이 물빛을 파랗게 보이게 만든다. 여기에 파란 하늘이 더해지면 하늘빛을 반사해 더욱 청명하고 파랗게 빛난다. 몰디브 여행 첫날은 말레Male 수산시장 탐방으로 시작됐다. 내 직업이 어류 칼럼니스트가 아닌가? 생선과 비린내라면 사족을 못 쓴다. 공항 섬 훌후말레부터 수도 말레까지는 대중교통인 수상 택시를 타고 건넌다. 선착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출근하려는 인파로 북적였다. 승차권은 편도 가격이 100루피(Rufiyaa). 우리 돈으로 약 800원 정도다. 딱히 조타실이랄 것도 없는 조종석. 그냥 강 건너는 페리타는 기분이다.

수도 말레의 첫 인상은 낯선 이국의 항구와 오토바이가 즐비한 산업 도시 같았다. 주로 쿠웨이트나 인도계, 아프리카 쪽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섬 면적은 가로 1.7km, 세로 1km로 매우 작고,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 중 하나로 알려졌다. 이 작은 섬에 몰디브 인구의 약 1/3이 모여 산다. 섬이 작으니 섬 어디를 가도 택시비가 같다는 점이 재미있다. 항에서 트럭 택시를 타고 말레 북부에 있는 수산시장에 도착했다. 부둣가에는 참치잡이 배가 가득하다.

항구 바로 옆에는 로컬 마켓이 있는데 이곳에는 몰디브가 수입하는 거의 모든 청과물과 농산물이 모인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에는 때마침 참치를 올리고 있다. 이날 새벽에 잡힌 참치들일까? 딱 봐도 싱싱해 보이면서 크기도 상당하다. 사실 참치는 몸길이 3m에 500kg까지 자라는 거대한 물고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참다랑어에 한해서다. 몰디브에서 주로 잡히는 참치 종류는 옐로핀 튜나 즉, 내가 이번 여정에서 낚시로 잡게 될 황다랑어다. 황다랑어는 다 커도 2m가 조금 넘는데 주로 잡히는 크기는 1.5m 전후로 생각보다는 크지 않다.

또 다른 배에서는 가다랑어 옮기기가 한창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걸 봐선 곧 경매가 시작될 것 같다. 수산시장은 낡은 건물 한 채가 전부지만, 이곳에 거의 모든 생선이 집결되며, 몰디브 전역으로 나간다. 앞서 경매가 있었는데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었다. 나는 경매가 끝나고 들어갈 수 있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몰디브인들은 어떤 생선을 주로 사 먹을까? 첫 번째는 황다랑어다. 크고 상품성이 좋은 참치는 대부분 수출하고 이렇게 작은 참치들이 현지인들의 선택을 기다린다. 수산시장 관계자에게 가격을 묻자 kg당 5천 원이라고 한다. 7~8만 원이면, 약 15kg 짜리 참치를 구매할 수 있다. 이외에도 우리가 참치 통조림으로 이용하는 가다랑어를 비롯해, 만새기, 그루퍼, 빨간퉁돔, 바라쿠타, 전갱이 같은 어류가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다.

시장 한 구석에는 이렇게 참치나 다른 생선을 손질해주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수도 말레는 사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았다. 산업 도시다 보니 곳곳이 공사 현장으로 소음이 가득했고, 석면 날리는 건 다반사. 남자 여럿이 뭉쳐 다니면 괜찮을지 몰라도 소매치기 등 치안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도시는 해마다 인구가 늘고 있어 골칫거리다. 인도와 스리랑카 등지에서 이른바 몰디브 드림을 안고 온 이민자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 몰디브 주민의 주 수입원은 첫째가 관광이고 둘째는 참치 같은 고기잡이다. 관광 수입은 대부분 리조트의 몫인데, 여기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몰디브의 수많은 리조트가 원주민들을 채용해 일거리를 창출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관광 산업과 원주민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좋은 사례로 보였다. 반대로 수도로 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골치 거리로 인식되는 듯하다. 몰디브의 섬은 수천 개에 달하며, 가장 놓은 고지대가 해발 3m에 불과하다. 인도양에서 사라지게 될 산소호흡기를 매단 섬나라란 사실이 실감됐다.

그렇지만 몰디브의 수도에 볼거리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현대식 건물인 술탄 국립 박물관이나 대통령궁 등이 있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후쿠루 미스키이 사원이다. 왕족의 묘비라는데, 몰디브에서 가장 오래된 무슬림 묘지로 17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묘비를 보면 위가 동그란 게 있고, 뾰족한 게 있는데, 동그란 것은 여성의 묘비이고, 뾰족한 것은 남성의 묘비다. 묘비 높이는 나이와 비례한다. 그러니 작은 묘비는 어린 아이의 묘비가 되겠다. 이 묘비들은 모두 산호로 제작됐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만든 수공예품인 셈이다. 신분이 가장 높은 왕의 묘비는 산호 외에는 아무런 부속품이 들어가지 않는다. 때문에 수많은 산호가 희생됐는데, 지금은 산호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금하고 있다. 산호를 캐는 것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몰디브의 전통, 참치낚시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남쪽 섬인 마미길리로 넘어왔다. 마미길리는 이렇다 할 리조트가 없는 어촌 섬으로 내겐 오지나 다름없었던 곳이다.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을 하고 잠을 청했다. 다음날 새벽 4시. 미리 섭외한 선장을 만났다. 이날 체험할 것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봤던 몰디브의 전통 대낚시다. 선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출항하는데 우선은 미끼부터 잡아야 하기 때문에 1시간 거리에 있는 잔잔한 환초 구역에 들어갔다.

이 환초 구역은 주변이 산호로 둘러싸여 바다가 잔잔하다. GPS에 찍힌 수심은 약 59m 정도. 스노클링 장비를 착용한 선원이 바다로 뛰어들어 눈으로 어군을 찾는다. 물고기 떼를 찾았다는 신호가 들어오자 나머지 선원들도 뛰어내린다. 그리곤 그물로 포위망을 좁히기 시작했다. 선원 중 리드가 올라와 수신호를 보낸다. 물고기 떼가 그물 위에 올라탔으니 걷으라는 신호다. 이런 과정을 두 번 정도 반복하자 어창에는 어느새 작은 물고기로 가득 찼다. 미끼를 잡았으니 참치 포인트로 이동하는데 무려 4시간이나 걸린단다. 다행히 멀미는 하지 않는데 문제는 시간이다. 미끼 잡는 데만 아침을 허비했다. 앞으로 4시간을 달려야 하니 낚시는 언제 하고, 또 언제 숙소로 돌아오게 될까?

오전 동안 미끼를 잡고 포인트로 향할 때라야 비로소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이때쯤 잠에서 깬 밥 당번 선원이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침은 몰디브의 전통 음식인 마쑤니Mas Huni로 해결했다. 전날 잡은 참치를 삶아서 으깬 뒤, 코코넛 가루와 라임즙, 다진 양파와 고추, 커리 잎을 섞어 버무린 것이다. 이를 자파티나 빵에 싸 먹는 음식이다. 이후 잠들어 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시계를 봤는데 무려 5~6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좀 전에 3~4시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정신을 차린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자초지종을 묻자 선장과 부선장의 표정이 좋지 않다. 평소 조업하면서 봐 둔 포인트에 참치가 안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곤 애써 잡은 참치 미끼를 도로 퍼 올린다. 대체 왜? 시간은 어느새 점심이 되었고, 참치 미끼로 잡은 샛줄멸은 그대로 튀겨져 밥에 얹혀 나왔다. 점심이나 먹으란 거다. 그럼 오늘 참치낚시는 어떻게 되는가? 날아온 답변은 허무 그 자체다. “그냥 꽝이란다.” 참치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선장이 그렇게 말하는데 나로서 어쩔 도리가 있겠는가? 수긍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수밖에. 그리곤 그대로 며칠이 흘러가버렸다. 하필 다음 날이 금요일이라(이슬람권 나라는 금요일이 공휴일) 배가 뜨지 못했고, 그 다음 날은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했다. 3일 만에 다시 찾은 인도양 한 복판의 바다. 이번에도 4시간을 달려 포인트로 향했다. 설마 이날도 꽝이면 어쩌나 싶어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쌍안경으로 수면을 훑던 선장의 눈빛이 달라진다. 수면에는 참치 떼로 보이는 보일링이 들끓었으니 곧바로 신호가 떨어졌다. 배는 곧장 물을 뿜었다. 이 물은 수면에 거품을 만들며 참치를 유혹한다. 이어서 오전에 잡아 둔 샛줄멸을 바가지로 퍼다 뿌리기 시작했다. 얕은 산호밭에 사는 샛줄멸이 수심 수백 미터에 이르는 바다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자 이를 본 참치들이 몰리기 시작한다.

선원들과 함께 자릴 잡고 낚싯대를 드리우는데 이때부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참치를 낚아 올리면서 1타 1피에 가까운 타작으로 이어졌다. 무겁고 굵은 나무 낚싯대를 바다에 드리우자마자 몇 초 지나지 않아 덜커덕하는데, 이 나무 낚싯대가 탄성이 없다 보니 그냥 힘으로 끌어올리는 식이다. 그러면 참치가 공중으로 튀어 올라 갑판으로 떨어지고 바늘은 저절로 빠진다. 과연 몰디브 참치 낚시는 밭에서 무 뽑는 듯했다. 참치치곤 작은 크기이나 사실 저만한 것도 가공할 만한 힘을 낸다. 탄성이 있는 일반 낚싯대로 걸었다면, 끌어올리는 데 시간 좀 걸렸을 것이다. 참치가 배 주위를 돌거나 배 밑으로 들어가면서 낚싯줄을 끊어 먹을 수도 있다. 반대로 투박하면서 뻣뻣한 나무 낚싯대는 비록, 손맛을 느끼기에 한계가 있지만, 속전속결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에 참치가 걸려들면 바다 속으로 파고들려고 한다. 이때 낚싯대도 함께 딸려 가는데 그것을 힘으로 제압하는 것은 전적으로 팔심에 달렸다. 장대 무게도 무게지만, 제법 중량감 있는 참치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야 하니 힘이 많이 든다.

먼 바다라 기본적으로 파도가 높다. 게다가 배는 펜스가 없어 위험하다. 조류도 거세다. 참치를 걸고 싸우다가 자칫 중심을 잃기라도 한다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지만, 이 일대는 참치가 다니는 길목인 만큼 상어도 있다. 조류는 시냇물 속도와 맞먹어 순식간에 떠내려갈 것이다. 구명복을 입어도 위험하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잡은 생선은 대부분 참치 통조림 원료인 가다랑어이다.

우리는 좀 더 큰 사이즈의 황다랑어를 노리고자 이곳 어부들이 한다는 줄낚시에 도전했다. 언젠가 유튜브에서 줄낚시로 미터급이 넘는 황다랑어 낚는 동영상을 봤는데 지금 내가 그걸 하게 됐다. 미끼는 산 생선을 통째로 꿰어 흘린다. 앞서 아이 손바닥만 한 생선을 잡은 것도 황다랑어를 노리기 위함이다. 여기서 잡히는 황다랑어는 작게는 60~70cm에서 큰 것은 1m가 넘는 것도 허다하다. 방법은 간단하다. 바늘에 산 생선을 꿰어 던지기만 하면 끝. 조류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풀리던 낚싯줄이 갑자기 빨라지면 그게 입질이다. 여기서 처음으로 황다랑어를 낚게 되는데 씨알은 참치치곤 조금 민망한 수준이었다.

주로 잡힌 것은 몸길이 60~70cm에 2.5~3kg 정도. 이날 목표인 20~30kg 황다랑어에 한참 못 미친다. 그래도 힘은 정말 당차다. 이 정도만 해도 쩔쩔매는데 미터급이 넘으면 어떻게 될까? 감히 상상도 안 된다. 게다가 줄낚시로 잡는 거라 참치의 강렬한 생명력이 직접 손으로 전해지는데, 녀석이 차고 나갈 때마다 낚싯줄은 시속 수십 km로 풀리면서 내 손가락을 위협했다. 이러다 손 나가면 어쩌나 무섭기까지 하다. 자칫 심한 화상을 입을 수도 있고, 심각한 부상을 당할 수도 있어서 손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이곳 선원들은 전부 맨손으로 싸우던데 신기하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다.

유난 떨었던 몰디브의 황금 참치 낚시는 다소 초라하게 끝나고 말았다. 나는 사진에 나온 황다랑어 몇 마리를 끝으로 낚시를 마무리해야 했다. 맨 마지막에 잡은 황다랑어는 그 자리에서 해체해 생참치 회로 먹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뱃살 하나 만큼은 정말 살살 녹고 기가 막히다. 우리는 다시 4시간을 향해해 마미길리 섬으로 돌아왔다. 꼬박 14시간을 배에서 보냈으니 이제 내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땅 멀미가 아닐는지.

김지민 어류 칼럼니스트
티스토리 및 네이버에서 블로그 ‘입질의 추억’을 운영하고 있으며, EBS1 <성난 물고기>, MBC <어영차바다야>를 비롯한 다수 방송에 출연중이다. 현재 쯔리겐 필드테스터 및 NS 갯바위 프로스태프로 활동중이며, 저서로는 <짜릿한 손맛, 낚시를 시작하다>, <우리 식탁 위의 수산물, 안전합니까?>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