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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두께 덧입은 해남 대흥사
세월의 두께 덧입은 해남 대흥사
  • 김경선 부장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9.02.1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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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찰 투어

지난 7월 1일 한국의 일곱 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가 주인공이다. 본지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일곱 개 사찰을 매달 한 곳씩 둘러본다. 이번호는 해남 대흥사다. <편집자주>

유네스코가 산지승원으로 지정한 우리나라 일곱 개 사찰의 선정 기준은 ‘원형이 변형되지 않고 비교적 잘 유지된 사찰’이다. 이렇게 뽑힌 것이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다.

이들 사찰은 역사성, 연속성, 진실성, 조형미가 뛰어나며 우리의 전통과 종교의 숭고함이 어우러진 공간이다. 시간과 가치가 만나는 곳. 그 마지막 주인공은 우리나라 땅끝 해남에 자리한 대흥사다.

‘해남’하면 ‘땅 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에디터에게 한 마디로 ‘엄청나게 먼 곳’이란 소리다. 이런 연유로 일곱 개 사찰 투어 중 가장 마지막 순서로 미뤄졌다. 먼 땅 끝 여행의 위안이라면 중부 지방의 매서운 한파를 피할 수 있다는 사실. 그리하여 1월의 어느 날, 새벽 6시에 집을 나섰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예상 시간은 4시간 40분. 생각보다 갈만하다. 그리고 정확히 10시 40분 대흥사 매표소에 도착했다.

드라마틱한 십리숲길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산사 순례> 편에서 너부내 계곡에 자리 잡은 대흥사 십리 숲길을 극찬했다. 울창한 숲에는 소나무와 벚나무, 단풍나무가 가득해 하늘을 보기 힘들 만큼 빼곡하고 치밀하다. 에디터가 찾은 시기는 겨울이 무르익은 1월 초. 수도권의 헐벗은 나무만 보다가 대흥사 십리숲길의 푸른 숲을 보니 마음까지 정화되는 기분이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이내 싱그러운 동백나무 군락을 만난다. 어쩜 이리도 초록 일색인지, 아직 새빨간 동백꽃은 없지만 한겨울에 만나는 초록 물결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숲길을 20여 분 걸어 들어가자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오래된 여관 유선관을 만났다.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은 새것이 가득한 시대에 오히려 손때 묻은 옛것의 느낌이 가득해 정겹다. 공간이 주는 해묵은 무게감은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 촬영지로 선택된 이유이기도 하다.

좁고 울창한 숲을 벗어나자 갑자기 공간이 트였다. 대흥사 십리숲길이 드라마틱한 이유다. 굽이를 지날 때마다 폐쇄와 해방을 넘나드는 숲은 아홉 굽이 숲길이라 해 구림구곡(九林九曲)이라고도 한다. 피안교를 건너 천왕문을 지나면 비석과 사리탑이 가득한 승탑밭이다. 서산대사를 비롯해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 납골이 모셔져 있다.

승탑발을 지나자 본격적인 대흥사 가람이 등장했다. 널따란 절집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두륜산의 독특한 기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남에서 북으로 뻗은 두륜봉~만일재~가련봉~노승봉 능선은 대흥사의 전각과 어우러져 산사의 품격을 높인다.

구구한 창건설화
대흥사의 창건년도는 불분명하다. 안내판은 416년 정관존자, 514년 아도화상,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세 가지 설을 기록했지만,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산사 순례> 편에서 혜장스님과 초의스님의 기록을 참고해 나말여초(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쯤을 대흥사 설립시기로 추정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대흥사 응진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320호)과 두륜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북미륵암의 마애불(국보 제308호) 및 삼층석탑(보물 제301호) 등 사찰 내 유물이 나말여초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흥사의 이름에도 사연이 많다. 대흥사가 자리한 두륜산의 원래 이름은 ‘한듬’이었다. 우리말로 ‘듬’은 덩어리라는 뜻으로 한듬은 남쪽 땅 너른 평야에 불쑥 솟아오른 큰 덩어리라는 의미다. 한듬은 시간이 흐르면서 한자어와 섞여 대듬이 되었다가 다시 대둔산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레 절집 이름도 한듬절에서 대듬절, 대둔사로 변했다.

대흥사의 공간 배치는 여느 사찰과는 다른 독특함이 있다. 두륜산에서 흘러내린 두 개의 계곡 사이에 자리를 잡고, 절을 가로자리는 금당천을 경계로 남원(南院)과 북원(北院)으로 공간을 나눴다.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법당이 있고,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원(江原)이 있다. 여기에 남쪽으로 표충사와 대광명전 등 부속 건물을 두었다.

북원의 중심인 대웅보전은 세월이 느껴지는 문살과 조선 후기 서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원교 이광사의 현판이 일품이다. 이광사 글씨는 대웅보전 외에도 천불전과 침계루의 현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재밌는 것은 대웅보전 앞 종려나무 두 그루다. 야자나무와 흡사한 종려나무가 대웅전 앞에 떡하니 자리한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수려한 천불전 꽃살문
남원의 중심은 천불전(보물 제1807호)이다. 남원의 출입문인 가허루를 통해 바라보는 천불전은 좌우 대칭이 조화로운 전각이다. 단청의 고아함은 물론 아름다운 꽃살문이 일품으로 내소사, 개암사의 꽃창살과 함께 그 수려함을 인정받았다.

천불전 남쪽으로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동국선원이다. 1978년 문재인 대통령이 머물며 사법시험 공부를 했다고 전해져 유명해졌다. 화려한 단청하나 없이 소박한 건물은 마음을 비우고 수행하기 좋은 공간이다.

북원을 지나 고도를 높이면 절에서 보기 힘든 유교식 사당이 나타난다. 거대한 태극무늬가 이채로운 공간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 서산대사를 기리기 위한 공간 표충사다. 서산대사는 1604년 마지막 설법을 마친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의발을 두륜산에 두라고 유언했다. 사산대사가 입멸하자 제자 사명당은 스승의 금란가사와 발우를 대흥사에 봉안했고, 그 후 대흥사는 이름처럼 크게 흥해 대찰이 됐다고 전해진다.

두륜산 자락에 자리 잡은 대흥사는 산사임에도 불구하고 호방한 공간미가 일품이다. 너른 앞마당을 되돌아 나와 해탈문에서 바라보니 두륜산 능선에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비로자나와불이 드러났다. 대흥사에서 바라보면 두륜산의 능선이 마치 누워있는 부처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실제로 두륜봉은 부처의 머리, 가련봉은 가슴, 노승봉과 고계봉은 손과 발의 형태를 띠는 듯 했다. 비로자나와불이 품은 사찰, 대흥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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