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통도사, 부처의 진신사리를 찾아서
양산 통도사, 부처의 진신사리를 찾아서
  • 김경선 부장 | 정영찬 사진기자
  • 승인 2019.01.14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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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적멸보궁 금강계단, 삼보사찰 중 으뜸인 불보사찰

지난 7월 1일 한국의 일곱 개 사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해남 대흥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가 주인공이다. 본지는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일곱 개 사찰을 매달 한 곳씩 둘러본다. 이번호는 양산 통도사다. <편집자주>

통도사 매표소를 지나자 무풍교부터 계곡을 따라 바람에 춤추는 찬 소나무가 가득한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가 이어진다. 긴 솔밭길을 20여 분 걸어야 일주문에 도착하니 입구부터 규모가 남다른 대찰의 기운이 느껴졌다. 사찰에서 불과 2km 남짓 거리에 있는 가장 가까운 고속도로 인터체인지도 ‘통도사’다. 사찰의 물리적인 규모도 크지만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사격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반증이다.

삼보사찰 중 으뜸인 불보사찰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에 자리한 사찰로 646년(신라 선덕영왕 1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천년고찰이다. 다만 임진왜란 때 사찰이 전부 불에 타 1645년(인조 23)에 중건한 이후 수많은 재건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통도사는 일반적인 사찰의 전형적인 가람배치가 아닌 계곡을 따라 동서로 길게 건물을 세웠으며, 가장 서쪽 건물인 정변전부터 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성보박물관까지 직선거리가 400m를 넘어설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불교에서는 세 가지 귀의처인 불보(佛寶)·법보(法寶)·승보(僧寶)를 중시한다. 우리나라에는 불·법·승을 대표하는 사찰이 있는데 만대장경을 모신 해인사는 법보 사찰, 고승을 많이 배출한 송광사는 승보 사찰,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모신 통도사는 법보 사찰이다. 무엇보다 통도사는 이들 삼보사찰 중 으뜸으로 불보종찰이다.

부처의 진신사리 모신 금강계단
우리나라에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인 적멸보궁이 다섯 곳이다.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그리고 영축산 통도사다. 통도사를 세운 자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후 부처의 진신사리와 부처가 입던 가사 한 벌을 가지고 귀국했는데, 이를 통도사와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에 봉안했다. 이중 통도사는 제1 적멸보궁이다.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더 귀한 부처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부처가 살아 있다는 뜻에서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진신사리는 국보 제290호인 금강계단에 모셔져 있다.

통도사의 대웅전은 일반적인 사찰의 대웅전과 다르다. 보통의 대웅전 건물은 정면 입구가 한 곳인 반면 통도사는 3면이 모두 정면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따라 법당의 이름이 변한다. 동쪽 방향으로 법당에 들어가면 대웅전, 서쪽으로 들어가면 대방광전, 남쪽으로 올라서면 금강계단이다. 북쪽 출입구에는 적멸보궁 현판이 걸려있다.

대웅전 옆 금강계단은 통도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영역으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이 있는 공간이다. 이름만 듣고 일반적인 계단을 생각하기 쉽지만 금강계단의 계단(戒壇)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행해지는 장소’다. 불교에서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계단에서 계를 받는 것은 부처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동일하다고 여겨 자장율사에게 계를 받으려는 이들이 넘쳐났다고 한다.

대찰을 나누는 상·중·하로전
통도사의 공간은 크게 세 곳으로 나뉜다. 천왕문부터 불이문 사이는 하로전, 불이문부터 세존비각 사이는 중로전, 대웅전 및 금강계단 일대는 상로전이다. 사천왕을 모신 천왕문을 지나면 하로전 영역이 나타난다. 영산전을 중심으로 약사전과 극락보전, 만세루가 ㅁ자 형태로 배치됐다. 세월의 흔적인 고스란히 느껴지는 영산전은 색이 바랜 단청으로 고풍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건물이지만 내부는 화려하고 웅장하다. 다보탑 벽화를 비롯해 석가모니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 석가모니 일생을 그린 팔상도 등이 화려함을 배가시킨다. 극락전의 외관은 영산전보다 역동적이다. 외벽에 그려진 반야용선 덕분이다. 극락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탄 이들의 간절함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그림이다.

불이문을 지나면 중로전 공간이다. 관음전과 용화전, 대광명전이 중로전의 중심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각지붕집인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상을 주존불로 모신 법당으로 내부에는 관음상 벽화가 여럿 있다. 관음전 뒤로는 석조미륵불 좌상이 있는 용화전으로 전각 앞에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이 있다. 중로전의 중심이 되는 대광명전(보물 제1827호)은 앞선 관음전과 용화전에 비해 건물이 크고 역사도 깊은데 임진왜란 때 통도사가 대부분 불에 타버렸을 때도 대광명전만은 불타지 않아 통도사에서 대웅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마지막 공간은 통도사의 핵심인 하로전으로 대웅전과 금강계단이 중심이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공간이기에 늘 신도와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대웅전 옆으로는 한 마리 용이 살았다던 아담한 연못 구룡지(九龍池)와 삼성각, 응진전, 명주전, 일로향각 등이 있다. 구룡지는 통도사 설립 신화와 연관이 있는 장소다. 지금의 통도사 터는 원래 독을 품은 아홉 마리 용이 사는 큰 연못이었는데 자장율사가 이 용들과 법력으로 싸워 이긴 후 여덟 마리의 용을 쫓아내고 터를 지키겠다고 맹세한 한 마리의 용을 위해 구룡지를 남겨놓았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재밌게도 구룡지는 아주 작은 연못이지만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 차를 타고도 한참을 달렸다. 대찰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두 발로 직접 걸으며 만난 통도사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부처의 몸의 일부가 남아있는 공간이라니. 그 신비로움을 찾아 몰려드는 불교신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공간에 내려앉은 위험과 권위가 성스러움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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