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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브항가이의 나이망 호수로 떠나는 여행
우르브항가이의 나이망 호수로 떠나는 여행
  • 글 사진 표현준
  • 승인 2018.09.13 0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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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의 나라 몽골의 깊은 곳

지금껏 보지 못한 초원, 몽골 우르브항가이의 깊은 곳을 찾아 떠났다. 끝없는 지평선과 시리도록 푸른 하늘, 영혼마저 맑아지는 그곳에 촘촘한 발자국을 남기고 왔다.

오후 늦게 칭기즈칸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서둘러 울란바토르를 벗어났다. 해가 지기 전까지 되도록 초원 깊숙이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약 한 시간 반을 달려 지평선 위로 해가 내려앉을 무렵 우브르 항가이로 향하는 도로 옆에 멈추어 섰다. 오후 9시, 우리나라였다면 이미 컴컴한 밤, 하지만 몽골의 해는 아직 지평선을 만나지 못했다. 두고 온 일상으로부터 비행기로 세 시간, 버스로 한 시간 떨어진 그곳은 특별히 이름난 장소는 아니었지만 그 어떤 알려진 곳 보다 드라마틱한 풍경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의 시선은 약속한 듯 먼 지평에 고정되고 걸음은 촘촘한 바느질처럼 초원 위에 발자국을 새겼다.

‘초원은 푸른 바다 같은 하늘이 있어 물이 없어도 목마르지 않을 것 같다’

먹먹한 풍경은 백지를 내밀었다. 입을 다물고 있어도 머리 위로 언어가 생겨나고 여행자는 조용히 가슴에 새긴다.

몽골 여름의 일몰은 10시가 되어서야 시작된다. 해가 지평선에 걸치기 전 먹먹히 초원 위를 떠돌던 영혼을 황급히 거두고 텐트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칠 때 첫 번째 고려하는 것은 바람의 방향, 두 번째는 다음 날 아침 풍경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시원한 풍경은 몽골에서 캠핑을 하는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얼마 되지 않아 별이 올라온다. 몽골에 오면 언제나 별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매년 몽골을 찾으면서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 밤도 별을 기대했지만 밝은 달 때문에 기대했던 은하수는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을 채우기에는 충분했다. 우리는 하늘과 가까운 모래언덕 위로 올라 사진을 담았다. 떠나온 곳은 수십 년 만에 찾아온 무더위로 불면의 밤. 불과 어제의 일이었는데 우두커니 서있으니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차가운 바람이 슬그머니 얼굴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딱 좋은 날씨를 덮고 텐트 안에 드러누웠다. 다음날이면 여행의 목적지 나이망 호수에 도착한다.

나이망 호수는 우브르 항가이 아이막의 깊은 곳에 위치해 있다. 아이막은 우리나라의 경기도, 강원도와 같은 몽골의 가장 큰 행정구역으로 ‘우부르 항가이’ 아이막은 몽골의 21개 아이막 중 몽골 중앙에 위치한 아이막이다. ‘항가이’는 몽골 중심에 우뚝 솟은 산맥의 이름이고 ‘우부르’는 ‘~의 안쪽’라는 뜻으로 ‘우브르 항가이’는 항가이 산맥의 안쪽이라는 뜻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브르 항가이 아이막 오양가 솜의 초원에서 야영을 했다.

컴컴한 새벽녘 무거운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야크들이 지나가고 이른 아침에는 거친 숨을 뱉으며 말 한 무리가 지나갔다. 몽골 자연 캠핑에서는 모든 감각이 활짝 열리고 스펀지처럼 모든 경험을 빨아들인다. 살아있음을 체험한다. 일상에서 얻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비포장로를 달려 항가이의 더 깊은 곳에 그림 같은 푸른 초원 위에 살고 있는 유목민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여행자를 위해 마유주를 내어주고 몽골의 전통음식인 허르헉을 대접하기 위해 양을 잡았다. 허르헉은 유목민이 귀한 손님을 맞을 때 내는 음식으로 통째로 양을 커다란 솥에 넣고 감자, 당근과 돌을 넣은 뒤 2시간 이상 익혀 만드는 요리다. 고기가 익는 동안 주변의 작은 언덕으로 작은 여행도 다녀왔다. 해발 고도가 높은 우브르 항가이 오양가 솜의 풍경은 몽골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아름답다. 풀이 곱고 초원이 예뻐서 일상에서 마음속으로 떠올리는 초원의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목적지 나이망 호수는 8개의 호수가 연결되어 있어 몽골에서도 귀한 풍경을 가진 곳이다. ‘싱글레이디’라는 몽골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이곳은 도로가 험해서 몽골인들도 쉽게 찾기 어려운 곳이라 한다. 나이망 호수에 닿으려면 높은 산을 넘어야 하는데 정상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아름답다.

나이망 호수 가까이 내려와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미국이나 북유럽의 어딘가에 온 듯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지만 이곳에서는 호수가 잘 보이지 않았다. 마땅한 곳을 살피던 중 그룹 베이스캠프에서 멀리 떨어진 언덕에 멋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꽤 멀고 길도 좋지 않아 몇 번 망설였지만 “이곳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잔디와 숲의 경계, 나이망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시원한 뷰를 가진 곳이었다. 주변에는 가족단위 캠퍼들이 조용히 자연을 즐기는 모습이 보였지만 너른 공간이라 멀찍이 떨어져 서로 사생활의 간섭은 없었다. 야영 준비를 마치고 텐트 앞에 의자를 펼쳐 앉았다. 이따금 호수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적당히 시간이 지나면 답장을 전하듯 호수로 바람이 밀려 내려갔다.

느리게 해가 진다. 간단하게 음식을 데우려고 하니 고도가 높아 토치를 사용할 수 없었다. 2~3분 조용한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지켜보던 주변 캠퍼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도와주었다. 꽤나 먼 거리였는데 몽골인들의 시력이 좋다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나 보다. 몽골인들은 어려움에 빠진 사람을 모른 척 지나치는 법이 없다. 인적 드문 초원에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들과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울란바타르에서 온 청년은 식사에 초대했고, 독일인 아티스트와는 서로 명함을 주고받았다.

나이망이라는 지구의 깊숙한 자연 속에서 떠나기 전 상상도 하지 못한 귀한 만남들이었다.

해가 질 무렵 산 위에서 거대한 서큘레이터를 설치해 놓은 것처럼 바람이 불었다. 덕분에 호수 건너편에서 번개를 번쩍이며 두꺼운 비를 뿌리는 먹구름은 더 이상 이쪽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일몰은 볼 수 없었지만 대신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하늘에 별도 기대할 수 없었지만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만한 밤 풍경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호수로 작은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텐트 뒤에 있는 두 개의 나무에 해먹을 걸어 따뜻한 아침햇살을 흠뻑 즐겼다. 나무 귀한 몽골에서 해먹이라니, 흔들흔들하던 10분의 기억이 선명하다. 시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어떤 1분은 평생을 가고 매일 보내는 일상은 한 달 만 지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이망 호수에서 시간을 접고 돌아가는 길. 비포장도로가 험해서 차를 먼저 보내고 정상까지 트래킹을 시작했다. 1시간 천천히 걸어 올라 정상에 닿았다.

두 다리로 걸어 오르며 뒤돌아 바라보는 풍경은 흘린 땀방울만큼 더 아름다웠다.

영화 ‘싱글레이디’에서 울란바토르에 사는 여주인공은 혼자 차를 몰고 초원으로 떠나 길을 잃어버린다. 그녀가 헤매다가 만난 풍경이 사진 속의 나이망 호수다. 설상가상으로 차가 고장 나지만 다행히 근처 유목민의 게르를 발견한다. 물론 게르에는 남자 주인공이 살고 있었다. 도시 여자와 유목민 남자의 만남이 이 풍경 아래 펼쳐진다.

나이망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풍경도 아름답지만 반대편 우리가 달려온 – 아득히 중첩된 낮은 언덕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정없이 흔들리며 달려온 수십 킬로미터의 비포장로가 그저 눈으로 즐기는 풍경보다 특별한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모든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말했다. 8개 호수의 만남도, 함께한 동행도,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웃들도,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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