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 하나가 인생을 풍요롭게 했죠
사진기 하나가 인생을 풍요롭게 했죠
  • 이지혜 기자 | 사진제공 전명진
  • 승인 2018.08.19 07:00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명진 사진작가

저마다의 인생엔 발자국이 남는다. 그림자가 벗어날 때쯤 보이는 발자국은 선명하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지만, 언제 어디선가 인생에서 각자의 빛을 내뿜는다. 어떤 발자국은 곧기도 하고, 어떤 것은 한 곳에서 뱅뱅 맴돌기도 한다.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 전명진 사진작가의 발자국은 많고, 여러 곳에 있었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오셨네요.
중학교 2학년까지 화가가 꿈이었어요. 산업 디자인을 전공해 그림의 길을 계속 나아가려 했죠. 우주소년단(한국 과학 우주 청소년단) 활동을 했는데, 정말 운 좋게 나사NASA(National Aeronautics & Space Administration: 미국 항공우주국)를 가게 됐어요. 청소년기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죠. 이곳이 내가 갈 곳이다! 싶더군요.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에 가고 싶어 모든 미술 공부를 접고 기계공학을 전공했죠. 하지만 나사에 가는 사람은 하늘이 정하나 봐요. (웃음) 높은 벽에 가로막혀 꿈을 접고 뭘 하나 늦게 방황했어요. 대학교 4학년 겨울 무작정 인도에 갔어요. 마음이 조금 편해지더군요. 여행을 더 하고 싶었어요.

여행하며 사진을 찍으셨나요?
아니요.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 장교 생활을 했어요. 장교 시절 모은 돈으로 제대 후 6일 만에 세계 여행을 떠났어요. 그땐 세계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도 아니었거니와 콘셉트를 잡고 가는 것도 없었죠. 전 한복이 좋아서 한복을 입고 365일간 48개국을 다녔죠. 여행하며 많은 생각을 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 기계과를 졸업해 취업한다 해도 기계부품처럼 살 것 같았죠. 저만의 길을 가고 싶었고, 시스템 밖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도 뚜렷하진 않았죠.

한국으로 돌아온 뒤는요?
막막했죠. 다녀오긴 했는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이름 있는 사람을 찾아다녔어요. 딱히 솔루션을 바란 것도 아니에요. 그저 답답하고 이야기 할 사람이 필요한데, 철학이 있는 분들과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았거든요.(웃음) 조정래 작가님, 앙드레김 선생님, 허영만 작가님 등 다양하게 사회 곳곳에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을 만났어요. 막무가내로 만나고 싶다고 졸랐죠. 지금은 그러라고 해도 못 할 거예요. 그런 와중에 사진으로는 국내에서 최고 명성을 가진 김중만 선생님을 만났어요. 저 같은 이상한 남자애가 와서 주저리주저리 얘길 했는데, 그 얘길 다 들어주셨어요. 3시간동안 수다를 떨고는 안녕히 계세요, 꾸벅 인사를 했더니 저를 불러 세우셨어요. 저 같은 놈이 사진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우연한 기회로 그분 밑에서 5년을 일했어요.

드디어 사진작가의 삶이 시작됐군요.
네. 5년간 김중만 선생님 밑에서 일하며 세계 곳곳을 사진기 들고 다녔어요. 사진이란 매체가 내가 가진 생각을 전달하는 데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며 점점 매력에 빠졌죠.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좋아하는 일을 여행하며 한다는 기쁨이 더욱 컸어요. 선생님께 독립해 5년 전 스튜디오를 마련하며 <탁PD의 여행수다>도 함께 시작했죠.

여행수다 이야길 빼놓을 수 없죠.
탁재형 피디님은 세계여행 시절, 볼리비아에서 만났어요. 당시 촬영을 하고 있기에 그저 구경하고 말았는데, 다음 일정에서 또 만났어요. 술을 한두 잔 기울이며 여행 이야기를 하고 공통점이 많다는 것도 알았죠. 탁 피디님이 여행수다라는 팟캐스트를 시작했을 때, 1회 게스트가 저였어요. 그러곤 진행자가 되어 5년간 여행부문에선 1위를 고수하고 있죠. 처음엔 여행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재밌을까 의아했지만,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의 생생한 이야기가 청취자들에게 와 닿았나 봐요. 참여해준 게스트도 항상 좋아해요. 이렇게 길게 본인의 여행 이야기를 한 곳도 처음이고, 그것을 이렇게 재미있게 들어주는 사람들도 처음이라면서요.

작년 첫 전시회를 열었죠?
김승진 선장님의 ‘대항해시대’에 같이했던 김물길 작가와 음악가 프롬(Fromm)과 함께 첫 전시회를 열었어요. 사진과 음악, 미술을 섞은 전시로 같은 목적지를 다른 시선으로 보자는 의미를 담았었죠. 쿠바로 떠났어요. 다양한 장르가 만나 신선한 자극이 됐어요. 하나의 매체로 차마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다채롭게 표현해 관객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고 평가해요. 조금 더 다듬어서 새롭게 전시회를 열어 볼 계획이에요.

요즘은 전시회만 준비하시나요?
다양한 고민이 있죠. 먹고 사는 것과 예술 작가의 길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죠. 저는 천재는 아니에요. 열심히 할 뿐이죠. 혼자 힘으로 무언가를 보여줄 수 없으면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시회 콘셉트도 그런 의미를 담았고요. 일반 대중이 어떻게 하면 저의 작품을 더 쉽고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니, 언제 또 다른 일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것은 너무나 많아요. 북한도 가고 싶고, 공연과 전시를 아우르는 공간을 꾸며보고 싶어요. 여행에서 겪은 경험들을 살려 성장 소설도 써보고 싶어요. 하지만 사진은 계속 할 거에요. 사진은 저만의 무기이자 영역이에요. 흡입력을 가지고 싶고, 사진은 저에게 그것을 가능하게 해줘요. 어딘가에서 발을 딛고 서 있을 때, 사진기 하나를 들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은 저에게 너무나 달라요.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고 할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0 / 400
홍코입니다 2018-08-22 14:20:07
여행수다 잘 듣고 있습니다. 항상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