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부르는 숲, 애팔래치안 트레일
나를 부르는 숲, 애팔래치안 트레일
  • 글 이하늘 | 사진 두두부부
  • 승인 2018.03.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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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km를 두 발로 걸었던 시간

우리 부부와 미국 장거리 트레일의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편(양희종)은 2015년 미국 3대 장거리 트레일 중 하나인 PCT를 걸었고 그 여정을 <4,300Km>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2016년 CDT에 도전했고 절반 지점부터는 나와 함께 걸었다. 이번 AT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부부가 함께 걸은 첫 번째 트레일이자, 남편의 트리플크라운을 위한 마지막 장거리 트레일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길이었다. 길고 긴 3500Km의 여정 중 인상 깊었던 몇 곳을 소개한다.

“3500km를 걸어서 간다고? 대단하다!”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이하 AT)을 걸으며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AT는 미국 동부에 길게 뻗어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연결한 길로 전체 길이가 3502km에 달한다. 이 기나긴 여정은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버지니아, 메리랜드, 웨스트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뉴저지, 뉴욕, 코네티컷,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를 지나 메인주까지 14개 주를 지난다. 사람마다 편차는 있지만 이 길을 모두 걷는데 대개 5~6개월가량 소요된다. 우리 부부는 2017년 4월 27일 스프링어 마운틴Springer Mountain부터 이 길을 걷기 시작해 146일 뒤인 9월 19일에 그 끝 지점인 마운트 카타딘Mount Katahdin에 섰다.

한 폭의 산수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스 내셔널 파크
노스캐롤라이나와 테네시주를 사이에 두고 길게 뻗어있는 이 공원은 미국 국립공원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곳이다. AT를 걷다 보면 약 250km 지점에서 이곳을 만나 112km까지 걸을 수 있어 AT는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스 내셔널 파크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고도가 제법 높고 산세가 험해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때 숨을 가쁘게 내쉬어야 했지만, 경치가 보이는 산 위에 서면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온다. 높은 산이 겹겹이 쌓여 있고 그 산 사이에서 구름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연기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레이트 스모키 마운틴스 내셔널 파크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는 ‘클링만스 돔Clingmans Dome’에 오르면 ‘클링만스돔 타워’가 있는데 주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360도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AT 전체 구간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하이커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랜 시간이 빚어낸 멋진 풍경, 매카피 놉
AT 하이커 중 많은 이들이 ‘가장 멋진 곳’으로 손꼽는 장소가 버지니아에 있는 ‘매카피 놉McAfee Knob’이다. 약간 튀어나와 있는 암석지대라고도 할 수 있는 ‘놉’지형은 AT를 걸으며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시야가 탁 트여 뷰포인트 역할을 한다. 그중에서 제일 멋진 광경으로 손꼽히는 곳은 ‘매카피 놉’으로 웹사이트, 잡지, 브로셔 등 AT를 알리는 여러 매체에서 대표적인 이미지로 사용하기도 하고 AT 하이커의 삶을 그린 영화 <나를 부르는 숲(A Walk in the woods)>의 포스터에도 사용된다. 매카피 놉에 오르는 길은 돌이 많은 흙길이지만, AT하이커 외에도 많은 사람에게 잘 알려진 곳이라 그런지 트레일 정비가 어느 곳보다 잘 돼 있다.

매카피 놉에 다다르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누군가가 칼로 베어놓거나 거인이 ‘꾸욱’ 손으로 누른 것처럼 납작하고 평평한 암석지대가 나타났다. 단순히 바위 한두 개 정도가 아니라 넓고 거대한 암석 여러 개가 다른 산을 향해 쭉 뻗어 있었다. 그 밑은 절벽이어서 튀어나와 있는 바위에 서 있으면 마치 하늘을 가로질러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주위가 탁 트여 있어 270도 서라운드로 주변 경치를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자연이 빚어낸 거대한 바위에 앉아 바라본 경치는 잊을 수가 없다. AT의 절반을 걸으며 우리 부부 역시 매카피 놉을 기억에 남는 장소로 꼽았다.

뉴햄프셔의 자랑, 화이트 마운틴스 내셔널 포레스트
매카피 놉과 더불어 많은 하이커들은 ‘화이트 마운틴스 내셔널 포레스트White mountains National Forest’를 인상적인 구간으로 꼽는다. 뉴햄프셔주의 4분의 1 가량에 걸쳐서 넓게 위치한 화이트 마운틴스 내셔널 포레스트는 맑은 날씨에 그 산군에 올라가면 저 멀리 대서양 바다가 보인다고 해 ‘화이트 마운틴스’로 불린다. 일반적인 AT 구간보다 전반적으로 고도가 높아 이 산을 오르고 내릴 때 무척 힘들었다. 40~50도에 가까운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됐고, 심지어 그 길에 큼직한 돌이 군데군데 쌓여있었다. 그러다 보니 더욱 힘들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구간은 분명 매력적이었다. 나무가 빽빽이 차있던 곳에서 벗어나 사방이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고 햇볕을 쬐면서 걷고 있자니 힘든 것도 잊어버리고 신이 나서 발걸음을 움직였다. 눈앞에 펼쳐진 겹겹이 쌓여있는 산과 푸르른 하늘에 연신 감탄을 자아내면서 말이다.

AT에서 만난 인연들
8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AT는 사람들의 애정과 노력으로 가꿔지고 있었다. AT를 걷는 수많은 하이커는 최대한 자연을 덜 훼손시키기 위해 정해진 길을 걷고 쓰레기도 모두 가져간다. 또 그 길과 추억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AT하이커를 위해 간식이나 음식을 준비해 트레일 입구에서 나눠주기도 한다. 하이커들은 그들을 트레일엔젤Trail Angel이라 부르고, 그들이 준비한 조그마한 정성을 트레일 매직Trail magic이라 하며 유대관계를 다진다. 이러한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장거리 하이킹의 추억은 더욱 풍성해진다.

게다가 우리 부부는 이번 AT를 걸으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그중에서도 평창패럴림픽을 알리는 조그마한 이벤트를 했다. 배낭에 항상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인형을 가지고 다녔고 만나는 하이커들, 외국인 친구들에게 마스코트 스티커나 배지를 나눠주며 우리나라와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대해 알렸다. 또한 하이커들이 길 위에서 먹고 싶어 하는 탄산음료에 ‘see you in PyeongChang 2018’이란 문구를 적어 나눠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우리 부부는 AT를 걸으며 더 튼튼하고 단단해진 체력은 물론이고 길고 긴 산길과 맞닿아 있는 인생에 대해서 배울 수 있었다. 개인으로 또한 부부로서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삶의 여러 가치 중에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도 값진 결과다. 또한 너무 당연하지만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함을 다시 한 번 몸소 체험했다. 이제는 다음번 여정을 준비 중이다. 길 위에서 더욱 성장할 우리를 떠올리며 See you on the trail(길 위에서 만나요).

Mini info
* 남쪽 시종점, 스프링어 마운틴Springer Mountain: 조지아의 애틀란타에서 약 130km. 오래된 역사와 많은 사람들의 도전으로 애틀란타와 스프링어 마운틴을 연결하는 셔틀서비스가 많다. (평균 100~120달러)
* 북쪽 시종점, 마운트 카타Mount Kathadin: 벡스터 스테이크 파크Baxter State park에 속한 마운트 카타딘과 가장 가까운 마을은 밀리노켓millinocket이다. 주변 큰 도시로는 뱅고어Bangor가 있는데 비행기나 버스를 이용해 이곳까지 도착, 머드웨이를 지나 밀리노켓에 도착하면 그 곳에서 트레일헤드까지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하는 몇몇 업체들을 만날 수 있다.
* 셸터Shelter: 나무를 이용해 만들어놓은 개방형 쉼터. AT를 따라 틈틈이 계속 만날 수 있다. 일반적인 트레일에서는 꼭 셸터에서 자거나 텐트를 치지 않아도 되지만, 내셔널파크에서는 셸터에만 머물 수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여 이동거리를 미리 계산해야 한다.
* 화이트 블레이즈White Blaze: AT의 길 안내표지. 손바닥만한 크기의 흰색 페인트칠을 따라 가면된다. 간혹 파란색(블루 블레이즈)를 만나기도 하는데 이는 샘터, 셸터, 우회로 등 갓길을 의미한다.
* 기후: 미국 동부라서 습한 편이다. 매년 차이는 있지만 우리가 걸었던 2017년의 경우 비가 정말 자주 왔었다. 숙영 장비나 의류 등 비에 대한 준비를 하면 좋다.
* 식량보급 및 휴식: 하이커마다 다르지만 우리의 경우 3~5일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가 식량보급과 휴식을 한 뒤 트레일로 복귀했다. AT의 경우 마을과의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 공식홈페이지: Appalanchian Trail Conservancy(www.appalachiantrai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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